(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음주운전 단속을 피해 달아나다 낭떠러지에서 추락해 하반신이 마비된 30대 남성이 안전표지판을 설치하지 않은 지방자치단체 등으로부터 억대의 손해배상금을 받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5부(이흥권 부장판사)는 A(33)씨가 인천 부평구와 B항공직업전문학교 등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부평구와 B교는 공동으로 4억 40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고 19일 밝혔다.
A씨가 기구한 운명을 맞이한 것은 2013년 3월 19일 자정 무렵이었다. 술을 마신 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무심결에 운전대를 잡은 A씨는 인천 부평구의 B교 인근 도로를 지나고 있었다.
순간 A씨를 화들짝 놀라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음주운전 단속 중인 경찰이었다. A씨는 행여 단속에 걸릴까봐 두려운 나머지 B교 앞에 급하게 차량을 세운 뒤 건물 모퉁이 쪽으로 달음박질을 쳤다.
하지만, 건물 주변에 이른 A씨는 60cm 높이의 경계석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불행히도 경계석 너머는 평지가 아닌 9m 높이의 낭떠러지였다. A씨는 이 추락 사고로 인해 하반신이 마비되는 중상을 입었다.
원래 인공폭포와 인공연못이 있던 자리였지만, 2012년 12월 '인공조형물이 노후해 붕괴될 위험이 있고 주변 경관을 해친다'는 민원이 제기되자 부평구가 해당 조형물을 철거해버렸다.
병원에 실려간 A씨는 허망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혈중알콜농도를 측정했더니 음주운전 처벌 기준에 못 미치는 0.028%였던 것이다. 현행법상 혈중알코올농도가 0.05% 이상일 경우에만 형사입건 대상이다.
A씨는 "부평구가 낭떠러지 추락을 예방할 수 있는 안전조치 의무를 소홀히 했고, B교와 B교의 건물주는 안전성을 갖추지 못한 설치·보존상 하자의 책임이 있다"며 세 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재판부는 도주한 A씨에게 중대한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부평구 등의 손해배상 책임을 면제해줄 정도는 아니라며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건축법 시행령에 따라 120cm 높이의 난간을 설치해야 함에도 부평구가 60cm 경계석을 남겨두는 것 외에는 아무런 안전시설을 설치하지 않았다"며 "추락 사고 등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도록 안전시설을 설치할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어 "B교 건물은 통상 갖춰야 할 안전성을 갖추지 못한 설치·보존상 하자가 있는 만큼 B교에게 손해배상 책임이 있으며, 건물 점유자인 B교가 책임을 부담하는 이상 건물 소유주는 배상 책임이 없다"고 덧붙였다.
다만, 재판부는 "A씨가 음주단속을 하는 경찰을 발견하고는 놀라서 음주단속을 피하기 위해 차량을 방치하고 도주하는 과정에서 낭떠러지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추락한 만큼 중대한 잘못이 있다"면서 "피고들의 책임을 30%로 제한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