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보톡스'로 불리는 미용성형의 대명사인 보툴리눔 톡신 제제가 치료제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대개 미간 주름을 개선하고 사각턱을 갸름하게 만드는 미용 목적으로 쓰였던 보툴리눔 톡신이 척수손상 환자의 통증을 완화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오는 등 관련 연구개발에도 속도가 붙고 있다.
16일 제약 및 의료계에 따르면 보툴리눔 톡신 A형 제제가 척수손상 환자에게서 나타나는 만성 신경병성 통증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국내 연구 논문이 발표됐다.
정명은 가톨릭대학교 성바오로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연구팀은 척수손상에 따른 신경병성 통증 환자 40명에게 보툴리눔톡신 A형 제제를 통증 부위에 직접 투여한 결과 유의미한 수준의 진통 효과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이 환자들에게 보툴리눔 톡신을 투여한 뒤 4주, 8주로 나눠 통증의 주관적 느낌을 수치화한 '맥길 통증 지수'(McGill Pain Index)를 비교한 결과 각각 20% 이상의 통증이 완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정 교수는 "척수손상에 따른 신경병성 통증 완화에 보툴리눔 톡신이 효과가 있다는 연구는 전 세계에서 이번이 처음"이라며 "최근 보툴리눔 톡신의 통증 경감 효과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새로운 치료 가능성을 확인한 셈"이라고 말했다.
척수손상은 척추 속에 들어있는 신경줄기인 척수가 사고나 질병으로 손상되는 질환이다. 환자의 절반 이상이 난치성 신경병성 통증에 시달리며 쉽게 치료되지 않고 만성화된다.
이번 연구결과는 미국신경학회 학술지 '신경학회보'(Annals of Neurology) 4월호에 게재됐다.
통증 완화뿐 아니라 보툴리눔 톡신이 다른 질환에도 적용될 수 있을지에 대한 연구도 활발한 편이다.
보툴리눔 톡신이 가진 '신경독소'의 성질을 이용해 근육의 과도한 수축으로 발생하는 질환을 치료하려는 것이다. 근육은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이 많이 분비될수록 강하게 수축하는데 보툴리눔 톡신은 체내에서 아세틸콜린의 분비를 방해하는 성질이 있다.
최근에는 서울성모병원의 박휴정(통증센터)·장기육(순환기내과) 교수팀이 난치성 고혈압을 앓고 있는 20세 남성환자에게 보톡스를 이용한 신경차단술을 시행해 혈압을 조절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박 교수는 "이번 연구결과로 보톡스를 이용한 신경차단술을 난치성 고혈압의 새로운 치료법으로 고려할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제약업체 중에서는 앨러간의 '보톡스'가 국내에서 만성 편두통과 과민성 방광증후군 치료제로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았다.
국내 업체도 연구를 지속하는 추세다.
국내 최초 보툴리눔 톡신 A형 제제를 개발한 메디톡스[086900]는 정 교수의 논문을 통해 '메디톡신'의 진통 효과를 확인한 만큼 적응증 확대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강구할 방침이다.
대웅제약 역시 자체 개발한 보툴리눔 톡신 제제 '나보타'가 눈꺼풀 떨림 증상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임상 2상 시험을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