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진구 구의역에 스크린도어 정비 작업 중 사고로 숨진 김 모(19) 씨를 추모하는 국화꽃과 메시지가 붙어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구의역 사고, 남의 일이 아니다."서울 구의역에서 19살 정비공이 안타깝게 숨진 사고를 계기로 우리 사회에 만연한 청년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고액연봉의 대기업이나 정년이 보장되는 공무원은 고사하고 언제, 어디서 해고통보가 날아올지 모르는 '비정규직' 신분을 벗어나 '정규직'이 되는 것이 청년 비정규직의 유일한 소망이다. CBS노컷뉴스는 그 두 번째 시간으로 민간부문에 만연한 청년 비정규직들의 절규를 들어봤다. [편집자 주]공공기관뿐 아니라 민간기업이나 하청업체에서 근무하는 비정규직 청년들의 현실은 더 열악했다.
꿈을 좇아 일을 시작한 사회초년생들은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는 비정규직의 굴레 앞에서 절망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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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 10시간씩 서서 일하며 화장실도 못 가
수도권의 한 놀이공원에서 3개월째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는 박 모(19) 씨는 뙤약볕에서 하루 평균 11시간씩 음료를 팔고 있다.
하지만 월급은 최저임금 수준인 150만 원가량을 받고 있으며 4대 보험은 꿈도 꾸지 못한다.
영양사가 되는 게 꿈이라며 호기롭게 일을 시작했으나 현실의 벽은 높기만 했다. 박 씨는 "바쁜 카트를 혼자 지키다보니 화장실 가는 것도 쉽지 않다"며 "한 번은 교대자를 기다릴 수 없어 몰래 화장실을 다녀오다 걸려서 크게 혼났다"고 한탄했다.
박씨는 이 때문에 입점 업체 자체가 월 평가에서 점수가 깎여 재계약에 불이익을 받을까 벌벌 떨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하루 10시간 이상 서서 근무하다보니 허리디스크까지 악화됐다. 그는 "최근에는 앉아 있으면 다리까지 저려온다"고 말했다.
아무리 높은 실적을 내도 추가 수당은 없다. 박 씨는 어린이날이었던 지난달 5일에만 음료 1200잔과 간식 200개 정도를 혼자 팔았으나 칭찬 한 마디 들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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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일 하면서 월급은 반토막같은 공간에서 일하고 있는 정규직과의 차별은 더욱 힘이 빠지게 한다.
박 씨는 "정규직과 똑같은 일을 하면서 더 오래 일하는데 월급은 그쪽이 2배 넘게 받는다"며 "정규직은 다양한 수당을 받고 있는데 우린 야근수당 얘기도 꺼내지 못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어 "한 동료는 4년째 일하고 있는데 여전히 주된 업무가 기껏해야 재료를 나르는 정도"라며 "비전도 보이지 않고 하고 있는 일에서 의미를 찾지 못해 조만간 그만둘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놀이공원에서 근무하는 6000여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 중 정직원으로 전환되는 경우는 매년 2명 정도에 불과하다고 노조 측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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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숨 걸고 일하지만 처우는?서울에 살다 지난 3월 경기도 안산으로 넘어와 건설 현장에서 하청 업체 비정규직으로 근무하고 있는 김 모(25) 씨 역시 혹독한 현실 앞에 놓였다.
김 씨는 "20㎏이 넘는 자재를 양손에 들고 다니고, 땡볕에서 하루종일 서있는 경우가 다반사"라며 "기계 소음을 견디는 것도 힘들지만 목재나 시멘트 자재에 붙어있는 먼지가 코나 입에 들어갈 때면 너무 괴롭다"고 말했다.
더 걱정인 건 위험에 내몰려 있다는 점.
그는 이어 "자재를 옮기러 3m 높이의 석고에 종종 올라가는데 옆에 안전봉은 없고 몸에 걸친 안전띠가 전부이다 보니 불안할 때가 많다"며 "임시 계단에 틈이 생기는 경우가 많아 발이 빠져 추락할까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위험을 감수하고 하루 11시간 이상 주말이나 휴일까지 반납하며 일을 계속하고 있으나 선배들을 보면 퇴직금은 꿈도 꾸지 못한다.
김 씨는 그러면서 "하루 종일 고된 노동을 하고 나면 몸이 너무 피로해져 운동이나 공부는 생각도 하지 못한다"며 "일을 마치고 나면 1~2시간 정도는 아예 뻗어버린다"고 덧붙였다.
서울 광진구 구의역에 스크린도어 정비 작업 중 사고로 숨진 김 모(19) 씨를 추모하는 국화꽃이 놓여 있다. 김 씨는 지난 28일 구의역의 고장난 스크린도어를 고치다 승강장에 진입하던 열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여 숨졌다. (사진=박종민 기자)
◇ "아프니까 청춘이라고요? 아프면 환자죠"지난달 서울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안전문)를 수리하던 19세 비정규직 정비공이 숨진 사고를 전해들으면서 김 씨는 더욱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수습기간이라는 이유로 하루 12시간씩 근무하게 하며 석달 동안 월급으로 고작 85만원씩 주던 전 직장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김 씨는 "값싼 임금으로 비정규직을 부려먹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풍조에 힘없는 청년이 사지에 내몰린 것"이라며 "업계에서는 어린시절부터 이렇게 '저항하지 못하는 노동자'를 만들어낸다"고 성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