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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는 왜 물만 먹고 갔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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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정의, 나만 지키면 손해 아닌가요?', 김경집 지음

 

동요 '옹달샘'에서 토끼는 왜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갔을까요? 서로 생각이 다를 수 있고 다양하게 표현되기는 하겠지만 아마 가장 많은 대답은 이런 게 아닐까요? "내가 깨끗한 옹달샘에서 세수하면 물이 더러워져서 다른 동물들이 물을 마시지 못하니까요."

여러분도 그렇게 여기나요? 아마 정확하게 일치하지는 않아도 대략 그런 비슷한 대답을 많이 떠올렸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겠지요. "그래. 토끼는 분명 새벽에 일찍 눈 비비고 일어나서 왔으니 대가를 치렀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 즉 세수할 권리를 가졌지만 여러분의 생각처럼 다른 동물들을 생각해 보니 도저히 세수할 수 없다고 여겼을 거야" 그러시면서 이렇게 덧붙일 겁니다.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고 그 권리와 자유를 갖는다. 그러나 나의 행복이 다른 사람의 행복을 함께 크게 하거나 혹은 최소한 다른 사람의 행복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만 그것을 누릴 권리가 있다.” 내 행복은 당연히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의 불행을 토대로 해서 이루어지는 행복이라면 그건 행복일 수 없습니다. 그런 경우 기꺼이 내 행복을 포기하는 것, 그것이 바로 정의입니다." (20~21쪽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먼저)

'정의, 나만 지키면 손해 아닌가요?'의 저자 김경집 교수는 "정의는 일상 속 질문에서 시작되고 함께 힘을 모으는 연대로 실현된다"고 말한다.

저자는 정의란 어른들만의 몫이 아니며, 어린이와 청소년 역시 인격적 존재이며 정의를 배우고 훈련해야 한다고 말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에서 자유와 정의의 문제를 느껴야 하고 다뤄야 하며 행동으로 실천해야 하는지 익히지 않으면 어른이 되어서도 그건 그저 남의 일이기 쉽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자유와 정의는 보장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건 크게 잘못된 생각입니다. (…) 내가 정의를 지켜야 우리 모두의 정의를 지킬 수 있습니다. 우리의 정의가 지켜져야 내게 정의가 돌아옵니다. 결코 나만 지켜서 손해 보는 게 아닙니다."

이 책에서는 정의와 관련한 친근한 일상 속 사례는 물론, 정의 이론에 관해서도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원리로 유명한 함무라비 법부터 고대 아테네의 위대한 정치가이자 '7명의 현인'으로 추앙되는 솔론의 개혁, 동양사상의 뿌리라 할 수 있는 공자와 맹자가 역설한 인의(仁義), 스승과 제자이면서 서로 다른 주장을 펼쳤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와 시민의 덕목, 자유와 의무를 강조한 칸트, 공리주의의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공정한 절차에 관해 역설하며 '무지의 베일'이라는 독특한 전제를 도입한 존 롤스까지, 시대별 인물별 정의 이론에 관해 공들여 안내한다.

'1장 정의, 어렵지 않아요'에서는 '옹달샘', '자전거' 등 친숙한 동요 가사, 공공시설 안내 방송과 안내판, 학교 폭력과 집단 따돌림까지 일상 속 정의의 문제에 관해 짚어본다. 이처럼 정의는 거창한 것도 멀리 있는 것도 아니며, 내가 진정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스스로 판단하고 그것을 선택하는 과정이 바로 정의라고 설명한다.

'2장 정의에 관한 이론들'에서는 정의에 관해 먼저 고민했던 동서양 사상가들의 이론을 짚어본다. 각 시대마다 문화마다 정의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았는지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한다.

'3장 정의가 없는 사회는 미래가 없는 사회'에서는 미래를 위한 정의에 대해 역설하며 사회적인 노력과 연대를 촉구하고 있다. 내가 행복하고 또한 '우리가' 더불어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신중함과 배려, 그리고 공감과 연대가 필요하다. 저자는 정의를 고민하고 대안을 찾는 과정 속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이 인격적으로 살아갈 수 있고, 사회 구성원 모두가 더불어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책 속으로

정의란 그저 좋은 말을 ‘선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선언을 위해 모두의 생각을 모으고 실천하려는 의지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단순히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공부만이 아닙니다. 요즘 시대에 그건 솔직히 학교보다 학원에서 배우는 게 오히려 더 효과적일지 모릅니다. 홈스쿨링의 방법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학교에서 여러분이 체험하고 키워야 할 중요한 가치는 무엇일까요? 그건 바로 연대의 인식과 실천입니다. 청소년기에 그 연대를 훈련하고 익히지 않으면 평생을 홀로 고립된 채 온갖 불이익을 감수하고 살아야 할지 모릅니다.
(p.47 학교는 연대를 훈련하는 곳)

“피해를 입지 않은 사람이 피해자와 똑같이 분노할 수 있을 때 정의는 실현된다.”
얼마나 날카롭고 정확한 지적입니까! 여러분도 학기 초에 폭력과 따돌림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을 때 분노했습니다. 그러나 속으로만 분노했을 뿐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분노하는 것으로 자신은 도덕적이고 정의롭다고 달랬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폭력에 가세하면서 자신을 정당화했고 폭력에 가세하지 않았어도 내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외면했습니다. 솔론의 이 말은 여전히 지금 우리에게 고스란히 적용되며 살아 있는 명제입니다
(pp.68~69 정의를 지키는 건 강자의 몫 _ 솔론의 개혁)

왜 에밀 졸라는 자신과 전혀 관계없는 사람의 무죄를 위해 많은 것을 잃고 전 국민의 증오를 한 몸에 받으면서까지 싸웠을까요? 그것은 정의가 누구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보편의 문제이며 가치라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내 일이 아니라고 외면한다면 그가 살고 있는 세상은 절대로 정의로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에밀 졸라를 미워했고 박해했습니다.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는 선택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에밀 졸라의 필사적인 노력 덕분에 진실이 밝혀졌고 프랑스는 다시 자유, 평등, 박애의 프랑스혁명 정신을 되찾았으며 세계에서 가장 민주적이며 정의로운 국가라는 명예를 얻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 프랑스는 어떠한 경우에도 정의를 훼손하는 일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사회적 합의를 이루었고, 그 점은 국민들에게 한없는 자부심을 주었습니다.
당장의 이익이나 강자의 복수 등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움츠러들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끝내 정의를 외면하면 결코 나도 정의의 보호를 받지 못합니다. 그러니 나만 정의를 따르는 건 결코 손해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나 자신이 정의의 보호를 받게 되는 최선의 지름길입니다. 그러므로 연대가 없다면 정의도 사라진다는 점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p.159 정의, 나만 지키면 손해 아닌가?)

학생이라면 강제로 교복을 입어야 하는 게 정의로운 일일까요? 정의가 너무 값싼(?) 상황에서 제기된다고 느끼나요? 아닙니다. 정의는 모든 문제에서 고려될 사항입니다. 만약 교복을 입는 게 좋다 해도, 그리고 많은 선생님과 학부모가 동의한다 해도 강제될 필연성은 없는 일입니다. 교복을 입기 원하는 사람은 교복을 입고 사복을 입고 싶어 하면 사복을 입게 하면 됩니다. 반드시 똑같은 옷을 입어야 하는 의무가 있는 걸까요?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생각했던 것들도 이렇게 따지고 파고들면 많은 것을 발견하게 되고 문제의 핵심에 접근하게 됩니다. 이게 질문의 힘입니다.
(p.173 정의는 주체적 질문에서 시작되고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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