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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가 이타적 인간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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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협력하는 종:경쟁하는 인간에서 협력하는 인간이 되기까지'

 

인간은 협력적이다. 그러나 우리의 유전자는 리처드 도킨스가 말한 시카고 갱들처럼 이기적이다. 이기적 유전자가 이타적 인간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 우리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127쪽

신간 '협력하는 종'은 인간 사회를 이끄는 이타적 협력의 기원과 진화를 밝힌 책이다. 이 책은 경제학자 새뮤얼 보울스 교수와 허버트 긴티스 교수가 지난 20여 년간 진화생물학과 진화게임이론을 연구하면서 얻은 성과들을 한 데 집대성했다. 저자들은 사람들의 이타적 협력을 지속시키는 것은 ‘사회적 선호’이며, 이것은 오랜 진화의 역사 속에서 형성되었다고 말한다. 사회적 선호란 사람들이 비슷한 심성을 갖는 사람들과 협력하는 기쁨이나, 협력에 대해 느끼는 도덕적 의무감, 또는 협력에 무임승차한 사람들의 죄의식이나 제재를 받을 경우 느끼게 되는 수치심 등의 감정을 이른다.

저자들은 개인들이 이타성과 상호성을 갖는 존재라는 주장을 실험적 연구와 사례 연구 등을 통해서 확증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러고 나서 이기적 행동에만 기초해서는 인간 사회에서의 협력의 존재를 설명할 수 없으며, 협력의 존재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종국적으로는 타인을 고려하는 선호를 전제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이들이 사회적 선호라 부르는 이타성, 상호성 등의 진화를 설명하는 데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바로 ‘유유상종’이다. 저자들은 유유상종의 경향으로부터 포괄적 적합도를 설명하고 다수준 선택이론을 통합적으로 재구성하고 있으며, 이타성의 진화를 제도, 사회화 및 집단 간의 경쟁이라는 인간 사회의 독특함 속에서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이론적, 역사적으로 치밀한 논증을 통해 다루고자 하는 주제에 접근하고 있다. 인간 사회에서 협력의 존재를 이기심이라는 공리에서 출발해서는 결코 설명할 수 없으며, 그러한 시도도 결국엔 타인을 고려하는 선호를 전제할 수밖에 없음을 보이는 과정은 매우 치밀하게 전개된다. 더 나아가, 인간에게 타인을 돕는 성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입증하려는 노력과 이러한 성향이 실제 인간의 역사 속에서 진화해온 역사적 경로를 밝히고자 하는 노력들에 현재 이용 가능한 모든 고고학적, 인류학적 자료들이 총동원되고 있다. 인간의 협력적 진화를 설명하는 다양한 가설들은 이론적 정합성뿐 아니라 실증적 정합성을 갖고 있는가를 중심으로 고찰되고 있으며, 인간의 협력이 진화해오기 위해서 어떠한 환경적, 제도적 여건들이 작용했는지를 모형화하고 설명하는 과정 역시 마찬가지다.

인간이 협력하는 종이 된 건, 초기 인류가 처한 환경적인 재앙이나 다른 집단들과의 분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안이었기 때문이다. 살아가는 데 있어서 집단 구성원들 간 협력은 매우 중요한 요소였으며, 이후 계속되는 역사 속에서 인간은 그와 유사하거나 심지어 더욱더 큰 협력 이득을 가져다주는 새로운 사회적이고 물리적인 환경들을 창출했다. 다시 말해, 그것을 실행하는 집단 성원들에게 고도의 이익을 가져왔기 때문에 인간은 협력적인 종이 된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동료 집단 구성원들끼리의 경쟁에서 사회적 선호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겪게 되는 불이익을 최소화시킬 수 있는 사회 제도를 만들게 되었다. 동시에 그러한 사회적 선호가 가져다준 고도의 협력으로부터 집단적 이득을 얻을 수 있었다. 집단 차원에서의 제도를 통한 사회적 상호작용의 조절은 어떻게 협력적인 종이 등장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개인들의 이타적인 동기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이 사회적 제도들은 인류 역사상 오랜 기간에 걸쳐 어디서나 발견되고, 매우 다양한 환경 아래서 등장하고 또 지속되어왔다. 집단 간 경쟁, 그리고 문화적 전달을 통해 나타나는 제도적 구조의 집단 간 차이야말로 인간 사회에서 협조적 행동의 진화를 설명하는 데 핵심적인 것들이다. 이처럼 문화적으로 전달된 제도적 환경들은, 사람들의 이타적 협력에 기반한 사회적 선호가 진화하는 데 유리한 사회적, 생물학적 조건을 제공했다.

저자는 이 책의 한국어판 서문에서 경제학자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를 지적한다. 그 실수란 바로 경제학자들은 사람들의 본성이 이기적이라고, 적어도 성공한 사람들은 이기적일 거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경제학자들은 가능한 한 경쟁을 촉진하는 것이 경제를 움직이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협력이 더 어려워지는 경우에도 말이다.

사실 인간의 유전자는 이기적이다. 사람들 중에는 언제나 이기적인 사람이 있기 마련이며, 이따금씩 이들은 다른 사람들의 협력에 무임승차를 하곤 한다. 하지만 대략 5만 년 전부터 우리의 선조들은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식량을 독점하거나 배우자를 얻을 기회를 독차지하려는 사람이 있으면 서로 힘을 합쳐 그를 징계했다. 그리고 정보와 생활필수품들을 공유하는 방법과 어느 누구도 자신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으며, 그 결과 이기적인 행위가 별다른 이득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점 또한 알게 되었다. 그렇게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과거 집단들 간에 분쟁이 자주 일어났고, 그 분쟁에서 이기적인 사람들이 많은 집단일수록 이기거나 살아남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저자는 오래전 우리 선조들에게 유효했던 방식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주장한다. 이를테면 현재 자본주의 경제에서 기업 혹은 조직은 구성원들이 기업의 목표를 위해서 ‘협력’하도록 운영될 수 있을 때라야 다른 기업과의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해 시민들이 전혀 도덕 감정이 없고 이기적이라는 전제하에서 수립한 정책들은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바로 그 정책들로 인해 사람들이 덜 윤리적으로 행동하고 덜 협력적으로 행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먼 인류의 선조들이 직면했던 사회적인 삶과 생활의 유지라는 근본적 과제는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이타적 협력은 사회경제적 삶이 원활하게 이뤄지기 위한 핵심적인 요건인 것이다. 5만 년 전 아프리카로부터의 대이동에 참여했던 소규모 수렵채집 집단들이 살았던 환경보다, 재화뿐 아니라 폭력과 정보 그리고 바이러스와 배출 가스까지 여러 가지 위협들이 더 많아진 지금, 인간의 협력과 생존을 보장하기 위한 사회적 선호는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저자는 어떻게 경쟁이 성공의 열쇠가 되는지를 설파하는 주류 경제학자들의 논조를 경계하며, 현대 기업과 현대 국가의 경우도 어떻게 조직원들의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지에 따라 그 조직의 성공 여부를 가늠될 수 있다고 설파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효용 가치를 우선시하는 주류 경제학의 입장과는 다른, ‘공공’과 ‘정의’가 중요한 요소임을 주장하는 비주류 경제학자의 담대하고도 뛰어난 결과이자 성과다. 또한 경제학을 넘어서 사회학, 심리학, 생물학 등 여러 분과를 넘나들며 ‘인간 본성’을 탐구해낸 유의미한 시도이자 업적이기도 하다.

두 저자는 이타성 및 상호성의 진화라는 주제를 사회과학 분야와 자연과학 분야를 아울러 반드시 다뤄야 하는 주제로 발전시키는 데 큰 공헌을 했다. 이들의 선구적인 노력이 경제학뿐 아니라 사회과학 전반의 외연을 넓히고, 생물학과의 통섭적 연구의 틀을 마련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이들의 그간의 노력에 대한 결정판이다.

책 속으로

협력에 관한 가장 간단하면서도 많은 실험 및 증거들에 의해 지지받고 있는 설명은, 사람들이 비슷한 심성을 갖는 사람들과 협력하는 것에서 기쁨을 얻거나 또는 그렇게 하는 것에 대해 도덕적 의무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또한 사람은 타인의 협력에 무임승차해 이로부터 이득을 취하는 사람들을 처벌함으로써 기뻐하거나, 그렇게 하는 것을 도덕적인 의무로 여긴다. 무임승차자들은 때때로 죄의식을 느끼며, 타인들에 의해 제재를 받을 경우 수치심을 느끼기도 한다. 우리는 이러한 감정들을 모두 묶어 사회적 선호(social preference)라 부른다. -25쪽

침팬지 역시 승자에게 주어지는 영역 및 번식상 이점을 얻기 위해 무리 집단들 간에 벌어지는 치열한 경쟁에 참가한다. 미어캣이나 불개미 같은 종들의 경우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자신만의 물리적이고 사회적 환경을 건설한다는 점에서도 인간은 유일한 존재는 아니다. 비버들은 댐을 만들고, 새들은 둥우리를 지으며, 굴파기 동물들은 지하 세계를 건설한다. 그렇다면 왜 침팬지나 사자, 또는 미어캣이 아니라 오직 인간만이 예외적으로 독특한 협력의 형태를 발전시켰을까? -29쪽

우리는 협력하려는 성향이나 배반자를 처벌하려는 성향을 가리켜 강한 상호성(strong reciprocity)이라고 부른다. 이 두 가지야말로 인간 사회에서 대규모 협력을 가능케 하는 핵심적인 요소다. -349쪽

인간이 협력적인 종이 된 이유는 인간의 특유한 생활 방식이 집단 내 협력을 통해 그 구성원들이 매우 큰 이익을 누릴 수 있게 해줬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동물과는 달리 인간의 경우 인지적 및 언어적 능력을 비롯한 여러 능력들이 발달했는데, 이러한 능력들은 이타적 협력의 확산에 유리한 사회적 작용의 구조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449쪽

제도를 만들고 학습된 행위를 문화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인간 특유의 능력 덕분에 사회적 선호가 확산될 수 있었다. 인류의 선조들이 상호 학습하며 정보를 전달하는 능력을 이용해 창출해낸 제도적 문화적 환경에서는, 이타적 협력자들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감소하고 무임승차에 따른 비용은 증가했다. 이처럼 사회적으로 형성된 환경 중 중요한 것을 꼽으라면 다음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생사를 건 집단 간 치열한 경쟁이 매우 빈번하게 일어나는 개체군의 구조, 둘째, 식량이나 정보의 공유와 같은 집단 내 균등화 관습, 그리고 셋째, 사회적으로 이로운 선호가 내면화되도록 발달된 제도들이 그것이다. -4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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