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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 시평집, "오, 매혹적이고 까칠한 시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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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하루의 시'… 희망, 평화, 행복, 그리움을 노래하다

 

한 세월이 있었다
-최승자

한 세월이 있었다
한 사막이 있었다

그 사막 한가운데서 나 혼자였었다
하늘 위로 바람이 불어가고
나는 배고팠고 슬펐다

어디선가 한 강물이 흘러갔고
(그러나 바다는 넘치지 않았고)

어디선가 한 하늘이 흘러갔고
(그러나 시간은 멈추지 않았고)

한 세월이 있었다

한 사막이 있었다

최승자 시인의 이 시에 대해 황인숙 시인의 해설과 감상을 보자. "'한 세월이 있었다'는 영원이니 뭐니 하는 내 말을 낭비로, 사치스럽고 치사스런 객설로 만든다. 목소리는 커녕 작은 기척이라도 내는 게 큰 무례일 듯한 이 '절대고독'의 현장을 나는 막막히 , 또 먹먹히 들여다본다.
"그 사막 한가운데서 나 혼자였었다/하늘 위로 바람이 불어가고/나는 배고팠고 슬펐다."
무한한 공간, 무한한 시간 속에서 화자는 자신이 머물렀던 세월(극히 작은 순간)과 공간(극히 작은 지점)을 대비시키며 제 존재의 하잘것 없음과 왜소함을 극대화시킨다. "배고팠고 슬펐다"니, 몸 가진 존재가 느낄 수 있는 한껏의 외로움을 이보다 더 천진하게, 이보다 더 잘 표현한 말이 있을까?"

신간 '하루의 시'는 국내외 시인들의 시 51편에 황인숙 시인의 해설과 감상이 담겨 있다. 황인숙 시인은 책을 펴내며 소감을 이렇게 말한다. "이미지나 메시지가 명료해서 따로 말을 덧붙이는 게 사족 같았던 시와, 자페적이거난 5차원 세계여서 분명 뭐가 있는데 그게 뭔지 모르겠던 시는 정말이지 나를 힘들게 했는데, 그 곤경을 뚫고 뭐라 뭐라 써낸 뒤의 성취감은 각별했다. 오, 매혹적이고 까칠한 시들이여! 때로는 프로파일러가, 때로는 해몽가가, 때로는 '애니멀 커뮤니케이터'(실례!)가 된 듯했던 안개 낀 밤 시와의 미회였어라."

시인들이 써내려간 다양한 주제는 희망, 평화, 행복, 그리움 등 우리의 삶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와 정확히 일치한다. 시 속의 인물들은 현실 세계의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평화란/어머니와 50의 딸이/손잡고 미는 농협마트의 카트/목욕하기 싫은 8살 난 강아지 녀석이/등을 대고 구르는 여름날의 서늘한 마룻바닥."([조용한 날들]) 이 시에 대한 황인숙 시인의 감상을 보자. "참 좋은 시다. 그림이 확 그려진다. 지구가 농협마트이 카트 바퀴처럼 돌돌돌돌돌 순탄하게 굴러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행복이나 평화는 어떤 조용함이다."

"오개월 걸려 딴 운전면허증에/한 해 농사 품삯으로 산 중고차 끌고 읍내에 나갔던 할매"는 후진하다 도랑에 빠지고 "오매, 오매 소리에 초상 치르는 줄 알고 달려왔던 할배"는 "그리 말 안 듣더니 일낼 줄 알았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다가/풀린 다리 주저앉히고 다행이여, 다행이여/혼잣말"을 내뱉는다.([상강]) 이 시에 대한 황 시인의 감상이다. "농부의 딸이며 그 자신 '건달 농부'인 박경희는 내공이 두툼한 시인이다. 소재를 잡아채는 날렵함과 능청스럽고 '걸판지게'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 충청도 사투리로 들려주는 그 이야기 맛에 정신 팔린 독자가 자칫 간과할 수도 있는 세련된 기교! 간추리자면, 자연스럽고 건강한 야성과 세련된 지성을 겸비한 시인, 박경희!"

"삶이 얼마나 무거워져야 가벼워지는지 모르는/허리 굽은 이"는 저울 위에 고물을 올려놓고, 그 옆 고물상 구석에 붙은 쪽지는 그 자체로 시가 된다. "파지 1kg 50원/신문 1kg 100원/고철 1kg 70원/구리 1kg 1400원/상자 1kg 100원/양은 1kg 800원/스텐 1kg 400원/각종 깡통 1kg 50원/-고물상 주인 백"([삶의 무게])

'하루의 시'는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화가인 이제하의 그림이 어우러져 감성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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