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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의 극복, '상처 속에서 상처를 상처로서 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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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춤춰라 그리고 이 세계에 오는 아침을 맞이하라', 사사키 아타루 지음

 

사사키 아타루의 저서 '춤춰라 우리의 밤을 그리고 이 세계에 오는 아침을 맞이하라'의 세 번째 꼭지인 '상처 속에서 상처로서 보라, 상처를'은 롤랑 바르트와 디디 위베르만 등을 소환해서 펼쳐나가는 사진론이다. 아울러 상처와 트라우마를 직시하고 끊임없는 '기억 투쟁'을 통해 극복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한 글이다.

유대인 600만 명을 죽음으로 내몬 나치 독일의 만행, 수십만 명의 인명 살상을 낳은 히로시마와 나카사키의 원자폭탄 투하, 일본군의 난징대학살, 크메르 루즈, 폴 포트,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의 원전 사고와 방사능 피해는 용납되거나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럼에도 그런 비극이 현실에서 버젓이 일어난다.

이 세계에 사는 일의 이상함과 의문, 곤혹스러움을 낳는 이런 반문명적 비극들은 되풀이하며 진중한 이들의 의식 속에 기억과 망각 사이에 자리 잡는다. 우리를 무력 속에 빠뜨리고 의식과 삶을 붕괴시키는 사태들에 대응하는 창조적인 방식이 바로 '상처 속에서 상처를 상처로서 보는 것'이다. 진실을 직시하는 것에서 시작해 타인의 트라우마에 관대해지는 것이야말로 트라우마의 연쇄를 끊는 진정으로 희미한 희망이다.

신간 '춤춰라 우리의 밤을 그리고 이 세계에 오는 아침을 맞이하라'는 문헌학과 서양 철학에 정통한 사사키 아타루의 사유가 폭넓게 펼쳐진다. 그 사유는 철학과 번역, 춤, 음악, 회화, 사진, 만화를 아우른다.푸코, 베냐민, 라캉 등의 철학자에서부터 일본의 춤과 예술의 여신인 아메노우즈메, 일본 작가이토 세이코,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 음악가 존 케이지, 마이클 잭슨에 이르기까지.

첫 번째 꼭지 '춤춰라 우리의 밤을 그리고 이 세계에 오는 아침을 맞이하라'는 우리의 풍속법과 비슷한 일본의 풍영법이 현대 민주국가에서 얼마나 부당하고 가소로운 법인지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당시 15만~20만 정도의 시민이 시위를 벌인 사례를 언급하며 춤은 곧 삶임을, 그러므로 신체를 통제하려는 국가의 편협한 꼼수에 맞서 아침이 밝을 때까지 경쾌하게 춤을 즐기자고 독려하는 글이다.

두 번째 꼭지인 '어머니의 혀를 거역하고, 다시-번역· 낭만주의· 횔덜린'은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는 번역론으로, 독일 낭만주의와 횔덜린의 예를 들면서 번역에 얽힌 오해와 이해를 폭넓게 다룬다.

위에서 언급한 세 번째 꼭지에 이어지는 네 번째 꼭지 '이 정온한 도착倒錯에 이르기까지-프랜시스 베이컨을 둘러싸고'는 현대 철학자들이 주목하는 문제적 화가 베이컨의 회화론이다. 베이컨의 독특한 '입-신체' 그림들에 대한 철학적 의미를 중심으로 일본 국립현대미술관 베이컨전 기획자인 호사카 겐지로와 나눈 대담이 실려 있다.

베이컨은 신체를 기괴하게 일그러지고 뭉개지고 비틀린 살덩어리로 표현한다. 가죽이 벗겨진 채 죽은 짐승의 시뻘건 고기로 그려낸 ‘신체들’은 매우 그로데스크하다. 아타루는 베이컨의 "깨물고, 씹고, 빨고, 핥고, 물어뜯어서 피범벅이 된 듯한 그의 작품 속 신체들", 특히 시뻘건 살덩어리로 뭉개진 입과 입술 그림들을 "성스러운 이성을, 오욕을, 일체의 것을 태연히 포용하는, 이른바 구강적"인 것으로 본다. 아타루는 베이컨이 단순히 신체를 왜곡한 게 아니라 "먹고, 트림하고, 게우고, 욕지거리하고, 맛난 술을 마시고, 애무하고 노래"하는 입을 의도나 가공 없이 있는 그대로 표현한 것으로 평가하며 그의 '날카로운 지성'을 상찬한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동안에도 우리는 조금씩 늙고 썩고 있습니다. 한순간도 정지할 수 없습니다. 심장도 뛰고 혈액도 흐르며 모든 기관은 재질과 함께 점점 늙고 썩고 문드러집니다. 살덩이가 붙은 송장(屍肉)이 됩니다. 무생물이어도 사태는 하등 다르지 않다는 것은 아시죠. 사진으로 찍은 모습은 정지해 있는 듯이 보입니다. 하지만 실은 한순간도 정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카메라 또한 정지하지 않습니다. 셔터를 눌렀다 떼는 시간, 노출시간이 0이 되는 것은 구조상 말이 안 됩니다. 카메라는 노출시간 동안 지속되는 상태를 찍습니다.

다시 말해 사진이란 시간예술입니다. 정지화면을 찍기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사진이 정지화면으로 보인다면 부단한 운동의 근원에 있는 현실을 왜곡하고 변형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진은 변형입니다. 그 사실을 깨닫기 전에는 어떠한 시각표현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베이컨은 초상화를 그릴 때 면전에서 직접 그리기보다는 사진을 선호해서 다양한 사진을 능수능란하게 이용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현실을 그대로 찍는 것'과 '현실을 변형해서 현실에 접근하는 것'은 모순일 수밖에 없습니다. 필연적으로 그렇게 됩니다. 역시나 더할 나위 없이 날카로운 그의 지성이 느껴지지 않습니까?"(158~159쪽)

다섯 번째 꼭지인 '신비에서 기적으로-소설가 이토 세이코의 고난'은 아타루와 공저로 책을 낸 바 있는 이토 세이코에 대한 작가론이다.

"동일본대지진을 계기로 소설가 이토 세이코는 오랜 유배에서 귀환했다. 이미 기술했다시피 재해를 둘러싼 말들이 현실을 왜곡시켜 일말의 구원 가능성마저 차단하려고 할 때였다. 자선기금 모금을 위해 쓴 소설로 아무리 무력하게 끝날지라도 현실에 변화를 주고자 그는 재차 각성했다. 일단은 현실의 인간인 타인을 상대로 즉석에서 한 편씩 차례로 엮고 상대방의 허구를 자신의 허구로 비집고 들어가서 비틀어 재해석하고 각색했다.

이토 씨는 집필을 마칠 때까지 그 상대인 사사키 아타루와의 대담을 거절한다. 하긴 '파도 위의 장수풍뎅이', '풍성하게 열린 재'의 작가인 점을 고려하면 허구의 영향력이 미칠 상대가 실재하든 말든 뭐 그리 대수겠는가. 아무튼 21년의 세월이 지나서 돌연 신비를 기적이라고 바꿔 말하는 이야기를 마지막에 두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 손가락을 믿습니다." 손가락을 믿기로 한 것인가? 가능할까."(205~206쪽)

마지막 여섯 번째 꼭지인 '라임스타 우타마루의 위크엔드 셔플'은 일본의 유명한 래퍼이자 라디오 진행자인 우타마루의 'TBS 라디오 프로그램 봄 추천도서 특집'으로 진행된 대담이다. 국내에도 소개된 바 있는 '체르노빌: 금지구역'을 비롯해 사카구치 안고 원작, 곤도 요우코 그림의 '전쟁과 한 여자'라는 만화와 아타루의 신작 소설 '밤을 빨아들여서 밤보다 어두운'이 소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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