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적신 비 때문이었을까.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제5번 e단조, Op. 64는 이날의 분위기와 잘 어울렸다.
15일 오후 5시 연세대백주년기념관에서 ‘차이코프스키 탄생 176주년 기념 갈라콘서트’가 열렸다.
CBS가 마련하고, 러시아 첼랴빈스크 국립오페라발레극장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자리였다.
차이코프스키 탄생 176주년 기념 갈라콘서트. (사진=포토민트 장철웅)
차이코프스키는 한국인에게 매우 익숙한 러시아 작곡가이다. 클래식에 문외한이라 하더라도 그의 이름 또는 작품(백조의호수, 호두까기인형 등)을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교향곡 제5번은 국내 오케스트라도 자주 연주하는 레퍼토리 중 하나인데, 한국인의 정서와도 잘 맞는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매우 감성적인 곡이다.
베토벤의 5번 교향곡 ‘운명’처럼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5번도 운명 교향곡으로 여겨진다. 이는 작품 1주제가 우울한 운명의 발자취를 암시하는 탓이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주제가 장조로 바뀌면서 비애는 제거되고 승리의 장엄함이 곡 전반을 감싼다.
공연장까지 가는 길, 비바람과 막히는 차 때문에 고생을 하다 이 음악을 들으면서 풀려버린 기분이 마지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5번의 주제 같았다.
이날 지휘를 맡은 에프게니 볼린스키 예술감독과 러시아 첼랴빈스크 국립오페라발레극장 오케스트라는 1악장부터 4악장까지 쉼 없이 40여 분을 묶어서 연주했다.
이 음악은 늘 각 장을 나누어 듣거나, 아니면 1, 2악장과 3, 4악장씩 묶어서 들었는데, 전체를 묶어 듣는 것은 색다른 느낌을 안겼다.
1악장의 감미로운 애수와 2악장의 칸타빌레 후 3악장이 관객을 한숨 돌리게 했고, 이어 피날레인 4악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몸이 떨릴 정도의 호흡으로 연주됐다.
팀파니의 연주는 장엄하고 격렬한 진군을 연상케 했고, 현악이 두툼하게 흐름을 쌓아올리면 그 위에 금관이 튀지 않게 올라섰다. 박진감 넘치는 음악은 잠시도 시선을 떼기 어려웠다.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러시아 첼랴빈스크 국립오페라발레극장 오케스트라였지만, 러시아의 숨은 보석이라는 평가답게 매우 훌륭한 연주였다.
예술감독 겸 수석지휘자 에프게니 볼린스키. (사진=포토민트 장철웅)
특히 오케스트라를 통솔하는 지휘자 에프게니 볼린스키는 리드미컬하면서도 마치 춤을 추는 듯한 지휘법으로 시각적인 즐거움을 안겼다.
제법 몸집이 있는 그는 과하게 표현해 ‘온 몸을 다해’ 지휘했는데, 자신이 뻗을 수 있는 데까지 오른손과 왼손을 뻗고, 때에 따라 까치발을 서거나 동동 굴리는 모습이 열정적이면서도 음악과 조화로웠다. 특히 4악장에서 감정선이 클라이막스까지 오르는 데 도움이 됐다.
이어진 2부에서는 로미오와 줄리엣 환상 서곡, 차이코프스키 발레 모음곡 등을 연주했는데, 지휘자 에프게니 볼린스키의 지휘는 이때에도 빛이 났다.
다양한 곡을 선보여야 했던 시간인 만큼, 각 음악을 마칠 때마다 청중이 지루하지 않게 시선을 마주치며 박수를 유도하는 여유를 보였다.
(사진=포토민트 장철웅)
앙코르 때는 직접 준비한 한국어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말을 전한 뒤 아리랑을 비롯해 한국 가곡을 연주해 보였고, 이에 청중은 보다 큰 박수와 환호로 화답했다.
‘차이코프스키 탄생 176주년 기념 갈라콘서트’는 16일 저녁 8시 연세대백주년기념관, 17일 저녁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도 이어진다.
특히 17일에는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가 협연한다. 그는 2004년 칼 닐센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19세 나이로 한국인 최초 우승을 했고, 2005년에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입상을 통해 그 음악성과 기량을 검증받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세계적인 연주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