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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은 되고, 자영업자는 안된다?...발권력 주장의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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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 조사에서 지난해 폐업한 자영업자는 8만9천여명으로 5년 만에 최대였다. 특히 나홀로 자영업자는 12만명이 줄었다. 동네 수퍼 등 영세 자영업자의 폐업율이 그만큼 높다는 것이다.

서울시 조사에서는 미용실과 커피전문점 10곳 중 1곳이 1년 이내 문을 닫고, 치킨집, 호프집, 커피전문점 10곳 중 4곳은 3년을 못버티고 폐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조조정과 퇴직한 베이버부머들로 자영업은 포화상태에 이르렀고 치열한 경쟁에 장기불황까지 겹쳐 폐업이 급증하는 것이다.

하지만 생계를 위해 퇴직금과 은행융자로 자영업에 뛰어들었으나 사업이 망해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이들이 정부에 의지할 수 있는 사회적 구제는 없다.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조선, 해운 업종의 구조조정과 관련해 은행이 떠안고 있는 부실채권은 30조원에 이른다. 외환위기 이후 15년 만에 최대 규모다. 이 중 70%가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수출입 은행의 몫이다. 이들 업체에 빌려주고 사실상 떼인 돈이 21조원을 넘는다는 것이다.

자영업자들이 그렇듯 대기업도 경쟁이 격화되고 경기가 나쁘면 경영이 어려워질 수 있고, 흥하든 망하든 기업이 알아서 할 문제다.

그런데 국민의 세금인 공적자금이 투입된 기업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혈세가 허투로 사용되지 않도록 철저한 자구노력을 통해 경영을 정상화하고, 공적자금을 되갚아야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공적자금을 투입한 국책은행 또한 돈이 제대로 사용되는지 엄격한 관리를 통해 경영 정상화와 함께 공적자금 회수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이번 구조조정의 핵심 대상 기업인 대우조선해양에는 지난해 4조2천억 원의 공적 자금이 투입됐다. 지금까지 수출입은행과 산업은행이 이 회사에 투입한 돈만 13조 원에 이른다.

엄청난 규모의 공적자금을 받아 근근히 연명하는 기업이지만 지난해 하반기 직원 한사람 당 900만 원의 성과급을 지급했다. 또 생산직 직원에게는 무사고 달성 격려금으로 1인당 100만 원씩을 지급해 모럴헤저드라는 비판을 받았다.

엉터리 회계로 적자를 흑자로 둔갑시키는 황당한 일도 벌어졌다.

대우조선의 대주주인 산은과 최대 채권은행인 수은의 행태는 더 한심하다. 두 은행의 퇴직 임원 60여 명은 대우조선에 낙하산으로 내려가 억대의 연봉과 차량을 지원받고 있다.

쌓이는 부실채권으로 재정건전성은 악화되고, 적자에 허덕이면서도 산은과 수은의 평균 연봉은 9천435만 원과 9천240만 원으로 321개 공공기관 중 10위권 안팎이다.

지난해 산업은행은 1조 8천951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고, 수출입은행은 216억원의 장부상 흑자를 냈다. 그러나 부실채권에 대한 대손충당금을 제대로 쌓았다면 산은의 적자 규모는 더 커지고, 수은도 큰 폭의 적자로 돌아설 수밖에 없다.

산은의 대손충당금 적립률은 78.6%, 수은은 79.8%다. 시중은행 평균인 143%에 크게 못미친다. 부채에 비해 충당금 규모가 너무 작다보니 대우조선 채권이 부실처리되면 국책은행의 재무건전성은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될 수밖에 없다.

정부가 국책은행 자본을 확충하려는 것도, 이 돈으로 대우조선 등에 물려 있는 국책은행의 부실채권을 털어내기 위한 것이다.

'동의받지 않은 세금'인 발권력은 국민 전체에 부담으로 돌아간다. 발권력을 동원한 국책은행 자본확충 방안은 결국 국민이 동의하지 않은 세금을 이용해 부실기업과 이들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국책은행들을 지원하자는 것이다.

발권력을 포함한 통화정책은 보편적이고 중립적이어야 한다. 특별한 상황, 비상시가 아닌 이상 특정 기업과 은행에 특혜성 지원을 해서는 안된다. 국민이 동의하지 않는 한 국민의 공동의 자산인 발권력을 특정 집단에 인위적으로 배분할 권한은 없다.

부실기업과 국책은행 지원에 발권력을 동원해야 한다면 폐업으로 인해 극빈층으로 내몰리는 한해 수만명의 자영업자들에겐 왜 지원하지 못하는지 답해야 한다.

더구나 지원하려는 대상이 도덕적 해이로 국민의 지탄을 받는 상황이라면 재정으로 하건, 발권력으로 하건 더더욱 지원할 명분이 없다.

자본확충의 방법을 거론하기에 앞서 부실 관리에 대한 문책과 국민이 수긍할 수 있는 자구노력, 고통분담이 선행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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