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인공지능(AI)의 획기적인 발전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프로바둑기사 이세돌 9단과 다섯 차례 대결을 벌여 4대 1로 승리한 바둑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 이야기다. 알파고는 인공지능이라는 존재에 소홀했던 한국 사회를 일깨웠다. 이세돌 9단에게 승리를 거두는 알파고를 보면서 우리는 '터미네이터' '매트릭스' 등 SF영화에서 익히 봐 온 암울한 인류의 미래를 떠올렸을 것이다. 이는 곧 "기계에게는 질 수 없다"는, 두려움에 바탕을 둔 혐오로 표출되는 분위기다. 인류와 인공지능이 공존할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 이세돌 9단과 알파고가 마지막 대국을 벌인 15일, 미래학자 정지훈 경희사이버대 IT디자인융합학부 교수에게 물었다.▶ 알파고는 가치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인공지능의 가치판단이 가져올 미래 모습은.= 가치라는 것 자체가 굉장히 정의하기 힘들다. 알파고의 가치판단 네트워크는 '현재 내가 이 대결에서 얼마나 승리할 수 있는가'다. 반면 인간의 가치판단 기준은 다양하다. 절대적이지 않은 것이 많다. 개개인에 따라서도 다르다. 이러한 인간의 가치판단을 인공지능이 하기는 아직까지 어렵다. 그런 게 가능해지려면 '사회적 인공지능' '강한 인공지능'이 나와야 한다. 확실한 것은 명확한 답이 있는 분야나, 탐색이 가능한 공간에서는 인간을 따라잡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정 분야에 특화된 가치판단인 것이다.
▶ 이세돌 9단과 알파고가 대결을 벌이는 와중에 "기계에게 질 수 없다", 더 나아가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우려에 따른 혐오, 적대적인 흐름이 만들어지는 분위기인데.= 예전에 산업혁명 시절과 비슷해 보인다. 그 시절에도 방적기 같은 게 나왔을 때 그걸 때려부수는 '리다이트운동'이 벌어지지 않았나. 기존에 있었던 것에 변혁이 일어나는 것은 언제나 이와 비슷한 현상을 부를 수밖에 없다. 일자리가 사라지는 만큼 새로 생기기도 할 텐데, 산업혁명에 비해 지금의 변화 속도가 빠르니 사회에서 충격을 완화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약간의 규제, 사회 간접자본을 확충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북유럽의 경우 사회보장제도를 확장하다가 기본소득제 시행에 들어가고 있는 점도 이러한 변화에 대한 대비로 읽을 수 있다. 이렇게 충격 흡수를 잘하면서 육체적·정신적 노동을 하지 않고도 사회를 유지할 수 있다면 인공지능의 발전은 굳이 문제 될 것이 없다. 사회적 합의가 중요하다. 두려워하면 금지하게 되는데, 이 경우는 더 답이 없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사회적으로 다각적인 준비를 해야 하는 이유다.
▶ 사회적 완화 조치가 없을 경우 인공지능이 또 다른 혐오, 차별의 대상이 될 수도 있어 보인다.= 어느 사회, 집단에서도 상당수의 사람이 그러한 심리를 갖게 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그러한 것을 완화시킬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합의가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인공지능의 도입을 막게 되고 활용을 잘 못하는 사회는 마치 산업사회 전환기에 농경을 고수하면서 주도권을 잃어버린 나라와 비슷하다. 중요한 것은 제도의 발전과 함께 이것을 포괄하는 것이다. 산업혁명시대 영국이 발전한 데는 민주화를 수백 년 먼저 진행시킨 제도개혁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를 통해 상업 등이 발달할 수 있는 기틀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전 세계로 퍼져나간 것이다.
미래학자 정지훈 경희사이버대 IT디자인융합학부 교수(사진=정 교수 제공)
▶ 알파고의 승리를 두고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중심주의적 사고가 패배했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철학 사조도 많이 바뀔 것이다. 예를 들어 농경시대는 생산수단이 땅이니까 땅을 확보하는 게 중요했고, 이를 위한 군사력, 왕, 지휘권이 힘을 얻었다. 그래서 철학도 '군주론' 등으로 나아갔다. 그러다 자본주의가 나타나면서 자본을 중심으로 모든 것이 세팅됐는데, 그 반작용으로 인간 소외 현상이 부각되니 공산주의가 나타났다. 지금의 자본주의는 이 두 체제의 장점을 흡수한 수정 자본주의다. 동시에 민주주의가 발달하면서 왕보다는 개개인이 중요하다고 보게 되지 않았나.
마찬가지로 미래에는 자본, 노동의 중요성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기계가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기계와 인간이 거의 동등하게, 하나의 시스템으로 같이 움직인다는 주의가 나올 수 있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트랜스 휴머니즘'인데 인간과 기계가 공생하면서, 심지어 인간이 기계와 비슷하게 통합돼야 한다고 말하는 학자들도 있다. 반대로 '인간이 뭐냐'는 물음에 따라 인간만이 지닌 것을 부각시키는 운동이 나타날 수도 있는데 '신인본주의'를 말한다. 더 나아가서는 인간도 자연의 일부인데 자본주의 탄생 이후 자연을 얼마나 많이 파괴했냐는 반성에 따라 '자연주의'가 나올 수도 있다. 이렇듯 철학 사조, 가치 판단의 기준도 많이 바뀔 것으로 본다.
▶ 알파고를 만든 구글에서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이 주목받고 있는데, '포스트 휴먼' ' 특이점' 등 그가 펼치는 사상의 핵심은 무엇인가.= 레이 커즈와일이 얘기했던 내용은 앞에서 말한 세 개의 철학 사조 중 트랜스 휴머니즘이라고 보면 된다. 기술의 발전을 통해 인간이 해결하지 못한 것들이 해결될 것이고, 그러니 기술의 발전을 막아서는 안 되고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는 말이다. 기계에 대한 우려들에 대해서는 결국 문명 아래 기계가 들어가 있고, 인간도 문명의 시스템 안에 있으니 인간과 기계가 결합해 하나의 새로운 종으로 진화한다는 것이 레이 커즈와일의 주장이다.
알파고를 개발한 데미스 하사비스가 최근 한 인터뷰들을 곰곰이 되짚어 보면 트랜스 휴머니즘적 시각이 굉장히 많이 나타난다. 인간이 인간 자체의 힘으로 인류가 멸망할 수 있는 부분을 극복하지 못할 테니, 이를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는 기술과 인공지능의 힘을 빌려 진화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인터뷰 곳곳에 숨어 있다. 하사비스 역시 트랜스 휴머니즘적 시각과 철학을 갖고 있다고 본다. 그에 비해 인간 삶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도 부각될 것이다. 마치 노자, 장자 같은 사상가의 느낌으로 기술에서 떨어져 인간 본연의 무엇을 찾자고 나올 텐데, 자본주의가 만들어진 이후 50여 년 뒤에 공산주의가 탄생한 것과 비슷한 흐름일 것이다.
▶ "우리가 모르는 환경에서 어느 순간 인공지능이 자율성을 갖게 될 테니, 먼저 인공지능에게 인간에 대한 우호성을 심어 줘야 한다"는 말을 했다. '나'와 다른 존재와의 공존 측면에서 인류와 인공지능의 상생을 위한 시작점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일단 인간들부터 자성해야 할 것 같다. 지금까지는 경쟁을 통해 남을 밟고 일어서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해 왔다. 계속적인 성장을 위해 끊임없이 탐욕을 추구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 오지 않았나. 결국 인간이 탐욕의 동물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면서 그것을 끊임없이 추구할 수 있도록 면죄부를 준 것이 현대식 자본주의 논리다. 우리는 그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 왔다. 그러다보니 자연도 훼손하고, 자원도 낭비하는 등 우리가 상생과 관련한 부분에 있어서 많은 것을 놓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상생, 공생과 관련해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시각이 중요할 것이다. 기술 개발도 이러한 맥락에서 진행된다면 코드 하나를 짜더라도 만드는 사람들의 의도가 스며들 수밖에 없다. 기계를 만들어서 이익 추구를 위해 무조건 이기겠다고 코딩을 하면 위험하다. 바둑의 경우에서도 기계로 하여금 인간들에게 실례가 되지 않도록 하는 식으로 새심한 배려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 자체가 우리 자신뿐 아니라 사회, 더 넓게는 자연·지구와 상생하고 공생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자세가 먼저 필요해 보인다.
(사진=한국기원 제공)
▶ 알파고로 인해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자 정부가 최근 'AI 산업 활성화 대책'을 내놨다. 국내 인공지능의 발전 수준, 철학적 고민은 어느 단계에 와 있나.= 굉장히 소모적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사실 아직도 개발 독재시대의 중공업을 부흥시키던 시각에서 못 벗어나는 것 같다. 예전에는 자본이 있으면 빨리 따라잡을 수 있는 영역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오랜 투자를 통해 만들어지는 것들이 대다수다. 특히 인공지능은 정부에서 돈을 퍼붓는다고 되는 분야가 아니다. 혁신자들이 혁신을 꾸준히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변화가 나타나는 형국이다.
정부가 인공지능에 관심을 두는 것은 나쁜 게 아닌데, 그 방식을 옛날 중공업, 중화학식으로 하기보다는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 연구하면서 결과물을 내놓는 과정을 통해 따라잡아야 한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이 분야에 접근해 고민을 나누면서 작업을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 미국에서는 이미 2012년부터 법학회에서 인공지능의 윤리적인 활용을 고민하고 있으며 구글 측도 이 점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고 들었는데.
= 인공지능을 만드는 사람들이 이 점을 더 깊이 생각한다. 그러니 알파고의 개발자 데미스 하사비스도 구글에 윤리적 보드를 설치해 달라고 얘기하지 않았나. 인공지능 개발자의 입장은 "연구를 보호하려는 입장이 굉장히 강할 수밖에 없으니 내가 문제가 있다면 너희들이 제동을 걸어달라"는 것이다.
미국의 유명인들이나 벤처기업 창업자들도 돈을 들여 그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고, 고민들을 나누고 있다. 사회 발전에 따라 지식인이라면 누구나 해야 할 고민들을 단계에 맞춰서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우리나라 상황과 같은 소모적인 인식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다. 일반적인 사람들 사이에서는 인공지능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가 많이 나올 것이다. 사회적으로도 논란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 과정 없이 인식의 발전은 있을 수 없다.
▶ 의학박사인 걸로 아는데, 미래학으로까지 연구 분야를 넓힌 이유는.= 의학을 하기는 했지만, 중학교 때부터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하면서 관련 책도 쓰고 기고도 했다. 어릴 때부터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둔 것이 제 특징이다. 의학을 공부한 뒤 진지하게 고민을 해봤다.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데 있어서 내가 정말 잘하는 것은 이것저것 다하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학문의 영역을 넓히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미래에 관한 시각도 갖게 됐다. 깊이 파서 뭔가 하나를 하는 건 제 적성과 맞지 않다. 넓게 이것저것 하는 것은 누구보다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여기서 제가 만들어낼 수 있는 가치도 클 것으로 봤다.
▶ 미래학의 사회적 가치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 미래학이 학문의 영역인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학문의 정의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부합하지 않는 부분이 많다. 기본적으로 답을 낼 수 없는 것을 연구하는 분야니 증명을 할 수 없다. 그렇기에 기존의 학문적 틀로 봤을 때는 잘못된 부분도 많다. 전 세계에서 미래학 학위를 주는 곳이 몇 곳 안 된다. 저도 미래학 학위를 받은 것은 아니기에 미래학자라고 말하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보다는 미래 시나리오를 쓰는 '미래작가'라는 표현을 더 선호한다. 제 경우 기술과 관련한 과학 베이스가 굉장히 강하기 때문에 과학과 기술이 미래 사회에 미칠 영향, 그리고 과학과 기술이 우리 사회와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에 관심을 두고 접근하고 있다. 미래학회를 가도 굉장히 많은 부류로 나뉜다. 사회학을 바탕으로 연구하는 사람들, 환경 쪽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미래학자, 미래작가가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닥칠 부정적인 부분들을 대비할 수 있다는 위기관리 측면이다. 긍정적인 시나리오를 줄 때에는 긍정적인 시나리오를 보고서 그 방향으로 가겠다고 움직이는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
▶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을 보면서 든 생각은.= 사실 이 변화가 나타난지는 꽤 됐다. 2011년 '왓슨'이라는 슈퍼컴퓨터가 퀴즈쇼에서 인간을 이겼던 게 사실은 굉장히 중요한 시작점이라고 생각한다. 2012년에는 소위 인공지능 학습법인 '딥러닝'이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그 덕에 기존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문제들을 풀어내는 근거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구글,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대기업들은 미래에 인공지능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뛰어들었고, 그로부터 4년 뒤인 지금 알파고가 등장했다고 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