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서울 김포공항에서 사설 비행교육원 '한라스카이'의 항공면허교육용 경비행기가 추락해 탑승자 2명 모두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국토교통부 산하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는 비행기가 이륙한 지 수분만에 추락한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이번 사고로 '한라스카이'뿐만 아니라 사설 비행교육원에 대한 안전 문제와 교육의 질 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국내 조종사 부족하다'는 반쪽 진실…'레드오션' 된 비행기 조종사
최근 몇년간 국내 항공기 조종사들이 중국을 비롯한 해외로 대거 빠져나가면서 조종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취업난에 허덕이는 청년들은 비행 자격증만 따면 국내외 항공사에 취직할 수 있다는 '장밋빛' 희망 속에 자격증 시험으로 몰리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 부족한 조종사는 수년간 경력이 쌓인 기장급 조종사에 국한되는 것으로, 경력이 짧은 부기장급 조종사들은 이미 수천명에 달하는 실정이다.
4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부기장급 조종사 수는 꾸준히 증가했다.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부기장급 조종사 자격증을 딴 사람만 3262명.
실제로 이 기간 비행기 조종사를 양성하는 사설 교육원 수도 급속히 증가했다.
2010년 이전까지만 해도 5곳에 불과했던 사설 교육원은 현재 16곳으로 5년 사이 3배 넘게 늘어났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수년 전부터 중국 민간항공사에서 국내 기장급 조종사들에게 고액의 연봉을 제시하며 스카우트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청년실업난이 심각한 상황에서 '10년 뒤 나도 저렇지 않을까'하는 심리가 작용해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 '사설 학원의 정체'는 '항공기사용사업자'…관련 법·제도 '전무'
하지만 법과 제도는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사설 비행교육원들은 법적으로 '전문교육기관'이 아닌 '항공기사용사업자'로 분류돼 있다.
전문교육기관은 교육이나 훈련, 시험 방식 등이 제도적으로 명시돼 있는 반면 항공기사용사업자는 그렇지 않다.
사설 비행교육원에서 어떤 형태로 어떤 내용을 가르치든 이를 규제하거나 관리하는 법적 근거가 없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100만원을 받아놓고, 10만원어치 교육만 해도 정부 당국이 손쓸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비행 교육과 관련한 안전점검이나 절차 등에 대해서도 법적으로 관리하거나 확인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
국토부는 한국항공대 등 전문교육기관에 대한 안전점검 및 안전교육을 실시할 의무가 있지만 사설 업체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개입할 근거가 없다.
이와 관련해 국토부 관계자는 "비행 교육체계를 일원화시켜 정부가 직접 관리감독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 '뜨면 합격한다'…조종사 되기 어렵다는 것도 옛말?
비행 조종사 시험이 쉬워졌다는 지적도 일고 있어서, 최근 학생들 사이 일명 '뜨합'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뜨합'은 '뜨면 합격한다'의 준말이다.
A 교육원 관계자는 심지어 "시험 감독관에 따라 (구술시험을) 안보는 사람도 있다"며 "시험관마다 다르기 때문에 복불복이라고 할 수 있다"고 전했다.
시험감독관은 관련법이 규정한 출제 범위 내에서 재량껏 난이도를 조절해 질문할 수 있다.
B 교육원 관계자는 "예전에는 항공대학 교수들이 직접 구술면접을 보면서 수시간씩 강도높은 질문을 하곤 했는데, 2~3년 전부터 은퇴한 기장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면서 "기장들이 교육원에서 비행공부하는 학생들의 편의를 봐주는 경향이 있다"고 귀띔했다.
이어 "쉬워진 만큼 학생들 사이에서 '뭐하러 공부 열심히 하느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항공기 조종사의 꿈을 쫒는 청년들과 사설 비행교육원의 수가 늘어나는 현실에 발맞춰 법과 제도를 하루 빨리 손질해 '제2의 한라스카이'를 막아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