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로스쿨생들이여…맘껏 분노하고 행동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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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25개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원장들이 모인 법학전문대학원 협의회(법전협)가 4일 오후 서울 중구 법전협 대회의실에서 긴급총회를 갖고 있다. 이 자리에서는 전날 법무부가 내놓은 사법시험 존치 방침에 대한 반대 입장이 발표된다고 법전협은 밝혔다. (사진=황진환 기자)

 

법전을 들고 변호사시험 공부를 하던 학생들이 분노하기 시작했다. 정부의 사법고시 4년 유예 방침에 정면 반기를 들었다. 집단 자퇴를 결의하고 변호사시험까지 보이콧할지, 말지를 고민중이다.

서울대와 고려대, 연세대에 이어 부산대와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학생들이 집단 자퇴를 결의하는 등 로스쿨학교 대부분(25개 가운데 20곳)으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학사 일정 전면 거부 사태를 빚게 됐다.

로스쿨 교수들은 사법고시 출제 거부를 시사했으며 전국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협의회는 4일 오후 대책회의를 갖고 있다. 학생·교수들의 집단행동이 전국 로스쿨에서 벌어질 조짐이다.

법무부가 화근이었다. 법무부는 3일 2017년에 폐지하기로 약속한 사법고시를 4년 더 존치하겠다고 밝혔다. 충분한 조율을 거쳐 나온 결정이었더라도 법무부는 무능했고 로스쿨생들을 무시했다. 더 나아가 현 법조인들의 대변자 역을 자임하며 로스쿨생들을 도발했다. 그것도 검찰 출신 변호사들의 요구를 들어줬다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됐다. 대다수 법조인이 로스쿨 운영 방식의 공정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었다. 변호사들이 대량 양산된 데 대한 불만의 일환이기도 했다.

법치를 외치는 법무부가 법을 바꾸겠다는 선언을 한 것이다. 정부 불신의 가장 큰 원인은 정부가 상황과 정치, 선거 논리에 따라 거짓말을 하고 오락가락하는 정책을 펴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대한변협호사협회와 국민여론을 거론하며 사시 4년 유예 조치를 내린 것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그렇지 않아도 정부의 정책 발표만 나오면 관련 단체들이 와글와글하는 마당에 로스쿨 학생들의 분노에 기름을 붓고 나온 것이다.

김주현 법무부 차관이 지난 3일 오전 경기도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브리핑룸에서 사법시험 존치 여부에 관한 법무부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 차관은 “2021년(제10회 변호사시험)까지 4년간 사법시험 폐지를 유예하고, 그동안 폐지에 따른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사진=황진환 기자)

 

오죽했으면 대법원까지 “법무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비판 대열에 가세했을까? 법무부는 사시 존치 입장을 밝히기 전에 대법원과 최소한 상의라도 했어야 했다. 일방적 발표였다. 책임을 져야 한다. 전국 6천 명 로스쿨 학생들과 로스쿨을 준비하는 대학생 수만 명에게 정부 불신을 심고 국정혼란을 야기했다. 법무부는 심지어 국민 85.4%가 사시 유지를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로스쿨 학제가 마치 없어져야 할 제도인 것처럼 매도했다. 법무부는 설문 문항에 “사법시험은 누구에게나 응시 기회가 부여되고, 수십 년간 사법연수원과 연계하여 공정한 운영을 통해 객관적 기준으로 법조인을 선발하여 왔다”라는 설명을 붙였다. 공정한 조사가 될 수 없는 조사였으며 처음부터 로스쿨 제도는 잘못된 반면 사시만이 법조인 공정한 선발제도임을 강조한 설문이었다.

로스쿨만 졸업하면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고 곧잘 돈 잘 벌며 검·판사의 직위를 얻을 수 있는 것처럼 알려졌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전국 2천 명의 로스쿨 졸업생들 가운데 1500명만이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고 있으며 낙방생이 해마도 500명씩 적체되면서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50%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로스쿨 졸업생 절반가량은 매년 불합격의 고배를 마신다는 것이다.

로스쿨 학생들의 고민이 아주 깊다고 한다. 변호사 시험에 통과하기도 쉽지 않지만 합격을 하더라도 판.검사 된다는 건 바늘구멍이라는 높은 진입장벽이다. 한해 충원하는 검·판사 240명쯤 가운데 사시 출신을 빼면 로스쿨생의 170명 정도가 서초동의 문턱을 넘는 것으로 전해진다. 10대 로펌에 취직하는 로스쿨 출신 변호사 100명을 포함하면 1500명의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 중 1250명은 작은 법률회사나 개인 변호사실, 아니면 기업체나 공무원으로 발길을 돌려야 한다. 그나마 상당수는 취직도 안 된다. 더욱이 돈은 고위 법조인 출신들이 다 벌고 로스쿨 출신들은 허드렛일 같은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로스쿨 출신 변호사는 “그냥 월급쟁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법무부가 앞장서 사시 존치를 들고 나온 이유를 되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법무부는 정부 기관이지만 검사들의 집합소다. 검사 출신 변호사들이, 로스쿨 제도를 가장 강력하게 반대했고, 지금도 그렇다. 법무부에 근무하는 검사들은 직위가 낮고 높고를 떠나 머지않아 변호사 업계로 발을 들여놔야 한다. 사시 존치와 로스쿨 폄하와 무관치 않다. 대한변협이 사시 존치를 적극 환영하고 나온 것도 현 변호사들의 이익단체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변호사들이 많아지면 그들의 밥벌이 몫이 줄어든다.

특히 로스쿨 입학의 필수 관문인 법학전문대학적성시험(LEET)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어림잡아 수만 명에 이른다. 인문계 대학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로스쿨을 지망한다고 한다. 취직이 너무 안 된 나머지 돌파구로 로스쿨 문을 두드린다는 것이다. 그들은 말한다. “리트 시험지를 보기나 하고 그런 소리를 하느냐”고... 사법시험을 통해 변호사 자격증을 갖고 있거나, 현직 검·판사들은 100점 맞기도 어려운 고난도 시험으로 정평이 나있다.

또 집이 살만하다고, 부자라고 해서 로스쿨생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로스쿨생들이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거나 고관대작의 자녀들이라는 소문도 일방적이라고 항변한다. 집이 빈한한 학생들도 많으며 장학금 수혜 폭이 크다고 한다.

로스쿨 학비가 연간 2천만 원이나 되기 때문에 부잣집 아들이 아니고선 로스쿨에 진학할 수 없다는 일정한 편견에 의해 로스쿨생들을 금수저 계급자들로 매도하는 경향이 난무한다. 로스쿨 졸업생들은 국내 대학에 등록금을 내기라도 한다. 반면 미국이나 일본, 홍콩, 중국, 영국 등 해외에서 대학을 다니며 적게는 5천 만원에서 많게는 1억원의 돈을 매년 그들 나라에 바치고, 취직은 한국에서 하는 중산층 이상 가정의 자녀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에게 ‘금수저’라는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 실제로 국회의원과 장차관, 고위직 공무원, 전현직 법조인 자녀들의 유학자가 얼마나 많은지를 헤아려보시라.

사시가 ‘희망의 사다리’ 역할을 하는 것은 일견 타당하다. 가난한 학생들이 사법고시를 통해 출세를 할 수 있는 통로가 된다는 것은 지난 1950-1990년대까지는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엔 많이 달라졌다. 오히려 부자 동네인 서울 강남 출신들이 사법고시에 더 많이 합격했다. 대원외고 등 특목고 출신들도 많아졌다. 지난 2011-2013년 사시 출신 변호사들의 출신지를 살펴 보니 서울 강남 출신은 18%인데 반해 강남 출신 로스쿨학생들은 16%에 불과했다. 사법고시가 개천에서 용 나게 한다는 말은 옛말이라는 방증이다.

이미 대한민국은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기업 사건은 대형 로펌들이, 검찰과 법원의 고위직 출신 변호사들이 다 수임해버려 로스쿨 졸업생들이, 경험도 일천한 사법고시 출신들이 그런 고액 사건을 맡을 수 없다. 황교안 총리나 안대희 전 총리 후보자가 연간 10억원 이상의 변호사 수임료를 받은 것은 검찰 고위직이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로스쿨 졸업생들에겐 딴 나라 얘기처럼 들린다.

대한민국이 전례없이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사회가 된 사실이 젊은이들을 아프게 한다. 비정규직과 청년 실업률이 단적인 예다. 젊은이들이 마이클 샌들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와 피케티 교수의 <21세기 자본>이라는 책에 열광했으나 얻는 것도 달라진 것도 없다. 고위 공직자들과 정치인들은 말의 성찬만 벌였지 반영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런 책이 많이 팔리더라도(백만 부씩 팔렸음) 공정사회 실현은 요원하다는 것이다. 실제적 정의와 공정사회는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취업문이 넓혀질 가망도 없다. 부의 대물림과 쏠림 현상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또한 기성세대의 장벽은 얼마나 두터운가? 청춘들의 아버지와 삼촌 세대들이 기성 제도와 질서를 움켜쥐고 똬리를 틀고 있다. 도전해도 무너뜨리기가 간단하지 않다.

정부의 사시 4년 연장론도 기존의 사법질서와 체제를 공고히 하겠다는 기성세대의 가치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러니 맘껏 분노하라. 그리고 행동하라. 울지 않는 아이에겐 젖을 주지 않는 법이다. 부모도 그럴진대 정부와 국회의원들은 특히 그렇다. ‘가지지 않는 자가 가진 최대의 무기는 데모밖에 없다’, ‘그렇게 해야 너희들 맘을 안다’라는 말이 들릴 것이다. 그렇지만 법치 세상을 꿈꾸는 청춘들인 만큼 법 테두리 내에서라는 현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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