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가 마련되어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우리 사회에 화합과 소통의 화두를 던진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26일 사상 첫 국가장과 함께 이별을 고하지만 여야 정치권과 청와대는 여전히 불통속에 대립하고 있다.
고인은 지난 1983년 광주민주화 운동 3주년을 즈음해 23일간의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하고 이듬해인 1984년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민주화추진협의회를 만들면서 동서화합을 몸소 실천한 것으로 평가된다.
물론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 내고도 야권 후보 단일화에는 실패하면서 당시 민주정부 수립에 실패해 통합 이미지에 한점 흠으로 남기는 했지만 대통령 재직당시에는 참모진의 '아니오'라는 대답을 기꺼이 수용하고 아랫사람의 실수를 너그럽게 감싸면서 소통의 이미지 까지 갖췄다는 평을 역시 받는다.
특히 2013년 병마에 쓰러진 뒤 '통합'과 '화합'을 마지막 휘호로 남긴 김 전 대통령이 현재 우리 사회에 '통합과 화합,소통'이라는 화두를 던진 데에는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고인이 던진 이 화두에 비해 현재 우리 사회와 정치권은 오히려 극심한 불통과 분열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 불통의 대표적인 사례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대다수 국민들은 물론 여권 내부에서의 반대 기류도 무시한 채 최고 권력자의 일방적인 의지에 따라 추진돼 국론이 두 쪽으로 갈라졌다.
제대로 된 의견수렴 과정도 없이 추진하다보니 국정화 찬성 서명자들을 급조해 교육부에 명단을 제출한 사실까지 폭로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은 '유신으로의 회귀', '친일 독재정권 미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명예회복을 위한 박근혜 대통령의 의지'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개각을 극비리에 하기로 유명했던 YS는 참모들의 의견을 듣고 자신의 결심을 뒤바꾼 사례가 잇따라 소개됐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참모들의 의견을 경청하거나 장관들과 독대했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장관들과 독대하느냐는 질문에 "그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느냐"고 반문하는 상황이다.
박 대통령은 특히 화해와 협력, 소통이 화두로 대두된 YS 조문정국 속에 반대세력을 끝장내겠다는 정국 인식까지 드러냈다.
지난 24일 국무회의를 직접 주재한 자리에서 최근 있었던 민중총궐기에 대해 "이번에야말로 불법과 폭력의 악순환을 끊어내야 한다"며 테러리즘과 연결시켜가면서까지 강경대응을 지시했다.
또 경제활성화 법안 등 처리가 지연되는데 대해선 야권을 향해 "백날 우리 경제를 걱정하면 뭐하느냐", "맨날 앉아서 립서비스만 한다"며 맹렬히 비난했다.
법안 처리를 위해 야당과 물밑 대화의 끈을 놓지 않았던 과거 정부와는 사뭇 대비된다.
여야 정치권도 YS의 유훈격인 화해와 협력, 소통과는 거리가 멀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합의한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는
여권내 반발에 부딪쳐 물거품이 되는 등 양당 지도부가 합의한 사안들이 번번이 당내 강경파들에 의해 백지화되고 있다.
심지어는 양당 지도부끼리도 인신공격성 발언들이 오가고 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를 향해 선거구 획정 협상 등을 겨냥해 "초선이다 보니 정치력에 한계가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고,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는 김무성 대표를 향해 "YS의 정치적 아들이 아니라 유산만 노리는 아들 아닌가"라고 공격했다.
YS가 집권 이후 치러진 1996년 총선에서 패해 곤경에 처한 당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에게 총수회담을 제의해 구제의 손길을 뻗쳐준 것과 대비된다.
대식가였던 김대중 총재는 당시 청와대에서 국수로 점심을 때워 몹시 허기진 상황에서도 출입기자들에게 YS와의 회동 내용을 전하기 위해 직접 깨알같은 메모로 상기된 채 브리핑을 했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생각이 조금만 달라도 비난하고 공격부터 퍼붓고 보는 맹목적 분열 프레임의 고착화가 우리 사회와 정치권의 커다란 문제"라면서 "YS 국가장 이후 우리 사회와 정치권이 극복해야 할 것이 바로 이 맹목적 분열 프레임"이라고 지적했다.
3김 시대 이후 카리스마 있는 리더십이 사라지면서 역시 구심점도 함께 없어져 대통령과 여야 정치권이 갈등하고 여당이건 야당이건 할 것 없이 당내에서 계파간에 다툼을 벌이는 형국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