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부겸을 보면 문재인의 길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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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사진=윤창원 기자)

 

지난해 12월 중순 북한산 비봉 부근 등산로에서 너무도 우연히 문재인 의원을 만났다.

대뜸 ‘내년(2015년) 2월 8일 전당대회에 출마하실 겁니까?’라고 물었다. 문 의원은 바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알려주세요?”라고 의견을 구했다. “기자가 아닌 정국, 야당의 정치 지형을 조금 보고 있는 입장으로서 한 말씀 올린다면 작금의 새정치연합의 당 대표는 죽음의 무덤이라고 봅니다. 누가 당 대표가 되더라도 잘 할 수 없고 상처투성이로 끝날 것입니다. 친노 인사들은 대선 후보를 지낸 의원님께서 출마하셔야 2016년 총선도 이기고 대선 승리도 가능하다고 출마를 종용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자칫 2016년 4월 총선을 치르기도 전에 낙마할지도 모릅니다."라고 말했다.

문 의원은 “그러면 박지원 의원이 당 대표가 되는데 그래선 되겠습니까?”라고 되물었다. ‘그렇다면 박지원 의원의 당 대표를 막기 위해 출마하신다는 얘기인데 박지원 의원이 그렇게 두려우십니까? 후보(문재인 의원)님이 아닌 다른 분을 출마시키거나 다른 후보를 지지하면 되지 않습니까? 전당대회에 출마하시면 당 대표가 될 가능성이 크지만 대통령이 되고 싶으시다면 당 대표 출마를 하지 않아야 한다고 봅니다.’ 문 의원과 기자는 날씨가 추워 더 이상 대화를 나누지 않고 헤어졌다. 그리곤 지금까지 한 번도 전화 통화도, 만나지도 않았다.

기자처럼 문 의원에게 지난 2.8전당대회에 출마하지 말라는 사람들이 있었던 반면에 친노 인사들은 당 대표가 돼서 박근혜 정부의 독주를 막고 총선과 대선 승리의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는 논리를 전개했다.

문 의원은 일각의 만류를 뿌리치고 당 대표 선출을 위한 경선 출마를 선언했고, 정세균 의원은 불출마를 했다. 문재인 대 박지원, 이인영의 대결로 치러진 전당대회에서 문재인 의원은 가까스로 박지원 의원을 누르고 당 대표가 됐다.

문재인호가 출범한지 10개월이 지났다. 문재인 당 대표론의 목표가 이뤄졌는가? 새정치연합 지지자들에게 물어보면 아니라고 대답한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견제도, 야당의 지지율 제고도, 총선 승리 전망도, 문재인 대세론도 굳어졌는가? 답은 아니다. 어느 것도 이룬 것이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오히려 당은 혼란 속으로, 분열 속으로, 내홍 속으로 빠져들며 시름시름하고 있다.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급기야는 ‘문재인만으로론 안 되지만 문재인을 버려서도 안 돼’라는 문재인 대표에겐 최악의 정치 상황이 됐다. ‘문재인 대표로는 총선과 정권 교체가 어렵다’(59.6%)는 17일자 중앙일보 여론조사 결과다. 상처뿐인 영광도 아닌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 수밖에 없는 국면에 처한 것이다.

현장에서는 여론조사 결과보다 더 심하게 문재인 비토론이 나온다는 게 새정치연합 중진 의원들의 설명이다. “서울 종로의 경우 야당 지지자 5명 가운데 4명이 문재인 얼굴로는 선거를 치르지 못한다고 한다. 심지어는 문재인 대표와 사진도 찍지 말라는 험한 말까지 한다”고 한 중진 의원은 설명했다. 경기도의 한 의원도 “문재인 대표 간판으로는 호남표가 움직이지 않을 것이 확실시 된다”고 강조했다. 광주·전남·북은 수도권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지 않다. 유일하게 부산·경남에서만 그래도 문재인 밖에 없지 않느냐는 여론이 우세하다.

새정치민주연합 김부겸 전의원 (사진=황진환 기자)

 

대구의 김부겸 전 의원에게 문재인 대표에 대해 어떤 여론이냐고 물어봤다. “물어보나마나다. 아예 관심도 없는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문재인 당 대표론은 성공하지 못했다는 표현이 적확할 것이다. 지난해 말부터 올 2월 8일까지 문재인 당 대표론을 주창한 현 주류(친노·486운동권 주축)의 판단은 틀렸다. 정국 전망에 대한 혜안도, 안목도 없었다. 대신 친노 중심의 당을 만들겠다는 ‘사욕’이 앞섰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지난해 7·30재보궐 선거를 패배했다며 김한길·안철수 공동 대표를 퇴진시키고 지난해 9월 세월호 협상을 잘못했다며 박영선 당시 원내대표를 내친 현재의 당 주류는 이제 비주류와 당의 정치적 기반인 호남으로부터 버림받을 위기에 직면했다. 말로는, 앞에서는 프랑스의 톨레랑스(관용)을 배워야 한다고 외치면서도 정작 경쟁관계이거나 의견이 다르면 적대시하는 그들만의 습성과 관성이 오늘의 야당을, 문재인 대표를 초라하게 만들고 있지 않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세상사는 끊임없이 유전한다”는 존 로크의 통치학이 던지는 명언이다.

문재인 대표에겐 원하든, 원하지 않든 결단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측근 일각에서 제기하는 문·안·박(문재인·안철수·박원순) 연대기구 구성이든, 당 대표 사퇴든 어떤 결정이든 내려야 한다. 그냥 지나갈 수 없다.

박지원 의원이나 ‘통합 행동’은 적절할 선에서 문 대표와 타협을 할 수 있지만 안철수 전 대표는 예상외로 단호하다. 안 대표는 지난 4일 박영선 의원의 대구 북콘서트에서 단호한 어조로 “이대로는 절대로 물러나지 않습니다. 두고 보십시오”라고 단언했다. 문·안·박 연대에 대해선 "세 사람이 손잡고 사진 찍으면 국민들 마음이 돌아서느냐"며 일축했다. 안철수 전 대표 측의 한 관계자는 “안 전 대표를 우습게 알면 안 된다”면서 “곧게 산 사람답게 한 번 결정하면 앞뒤를 안 보고 달릴 수 있다”고 말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단이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시점은 예산안 통과 기일인 12월 2일 이전일 수도 있고 이후일 수도 있으나 이후가 될 개연성이 크다. 따라서 12월이 문재인 대표에겐 최대의 정치적 시련기가 될 것이다.

돌파가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문재인 대표 얼굴로는 선거를 치를 수 없다는데야 배겨날 재간이 없지 않은가. 버틸 동력도 많이 떨어졌다. 당 대표 직후 30%에 근접하던 지지율도 10%대 초반까지 밀렸다. 올라갈 가망도 별로 없어 보인다.

주류 측에서는 문재인이 무너지면 누가 있느냐고 항변한다. 문재인 중심의 시각이다. 다른 싹들이 나온다. 모든 계파와 지지자들을 만족시킬 만한 지도자감은 없으나 선거를 치를 수 있는 지도자는 여러 명 있다. 카리스마 강한 걸출한 스타 지도자가 있으면 좋으련만 없다면 집단 지성으로 해결할 수도 있다.

길은 하나다. 멀리 뛰기 위해 한 발 후퇴하는 것이다. 개구리가 움츠리는 건 높이, 멀리뛰기 위해서다. 전략적 후퇴다. 현재의 난국을 정공법이 아닌 꼼수성 방안으로 돌파하면 내일이 보이질 않지만 내려놓는 감동의 정치력을 보이면 시간이 지나면 국민은 그를 찾는다. 한국 국민의 속성이기도 하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정치인들이 보여준 지혜로운 길이자 선택이었다.

김부겸의 길을 가면 된다. 문재인 대표를 진정으로 아끼거든, 차기를 고려하거든 측근들이 먼저 문 대표가 내려놓도록 도와야 한다. 마지막 남은 자존심과 정치적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도...그게 문재인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길인지도 모른다.

<그때는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른다="">고. 지금은 고통스럽지만 그토록 힘들었던 오늘이 그토록 갈망했던 내일로 귀결이 나는 게 정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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