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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후쿠시마'와 '체르노빌'을 망각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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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의 목소리' 책 표지

 

일찍 찾아온 가을 추위로 난방보일러를 틀었던 지난 주말. 따뜻한 거실에 앉아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논픽션 <체르노빌의 목소리-미래의="" 연대기="">를 읽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 작품이라면 우리가 쉽게 ‘망각’할 뻔했던 원자력발전소의 방사능 재앙을 후대들에게 똑똑히 증언해줄 수 있으리라는 믿음과 확신 때문이었다.

1986년 4월 26일 구 소련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제4호기가 몇 차례 폭발 후 무너졌다. 방사능 유출로 인근에 살던 주민 11만6천여 명이 강제 이주됐다. 사고 당시 피폭된 근로자 31명이 곧바로 숨지고 그 후 5년 간 7천여 명이 서서히 죽어갔다. 그리고 지금까지 2만5천여 명이 시차를 두고 서서히 죽어갔다. 사고 후 29년 6개월의 긴 세월이 흘렀지만 체르노빌은 지금도 방사능이 점령한 도시로 사람이 살 수 없는 낯선 행성 같은 섬이다.

2011년 3월 11일 일본 도호쿠 지방의 대지진과 쓰나미로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에 사고가 났다. 전원이 나가고 냉각 시스템이 파손되면서 핵연료 용융과 수소 폭발이 이어졌다. 다량의 방사성이 누출되면서 후쿠시마 주민 1만6천여 명이 죽음을 피해 고향을 떠났다. 이 가운데 1만2천여 명은 아직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사고 후 2년 6개월이 지난 2013년 9월 도쿄신문이 자체 조사한 결과 방사능에 의해 사망한 사람이 910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4년 7개월이 지난 현재 후쿠시마는 사람이 살 수 없는 유령도시다.

그런데 세계 도처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사고 당시 TV 앞에서 치를 떨며 절감했던 방사능 공포와 인류 재앙을 신기할 만큼 빠르게 ‘망각’하고 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평안을 주려고 ‘망각’을 선물했다지만, 인류의 보존과 평화를 위해 망각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다.

고맙게도 지혜로운 예술인들이 ‘망각’의 마술에 걸려들지 않은 예술작품을 통해 공포의 현장을 수놓듯 기록한다. 무엇이든 ‘망각’하려는 이들에게 과거의 참상을 돌이켜 기억하게 하고, 오늘을 통찰하게 하고, 미래를 준비하게 만든다.

<체르노빌의 목소리="">는 인류가 진보라고 믿는 원자력발전소의 평화적인 핵 이용이 사실은 인류의 종말을 앞당길 수 있는 ‘괴물’로 돌변할 수 있음을 리얼하게 기록했다. 첨단 기술로 통제하며 부리고 있지만, 언제라도 통제 불능의 악마가 될 수 있는 ‘방사능’의 공포와 저주를 방사능에 피폭됐던 체르노빌 주민들의 증언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방사능은 (사람을) 바로 죽이지 않는다. 5년이 지난 후에는 암에 걸려도 아무런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러시아 환경단체가 수집한 통계에 따르면 체르노빌 사건 이후 150만 명이 사망했다. 이에 대해서는 모두 침묵한다.”

알렉시예비치는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고, 냄새도 나지 않는” 방사능 때문에 죽어간 사람들에 대해 무감각해진 혹은 ‘망각’의 마술에 걸려든 국가와 권력 그리고 대중들을 비난한다. 그러면서 방사능에 피폭된 사람들로부터 귀 기울여 들었던 두렵고 눈물겨운 이야기들을 이렇게 전한다.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 곁에 계시는 분이 하나님 한 분인 줄 알았는데, 보이지 않고 냄새도 없고 형체도 없는 방사능이 나타나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니 아마도 악마의 신인가 봅니다.”

우리나라 동해안에 위치한 삼척과 영덕에서는 새로운 원전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이를 둘러싼 찬반 논쟁과 주민투표의 법적 효력 등을 둘러싼 논쟁이 치열하다. 정부는 유치지역 주민들에게 선물할 복지예산을 공개하는 가하면 경제적인 풍요를 가져다줄 청사진도 내놓았다. 원전을 건설하는 것이 희망과 부(富) 그리고 발전을 가져오는 신기루인 양 홍보한다.

그런데 가장 본질적인 질문이 빠져 있다. ‘핵(방사능)’의 본질을 정확히 알리는 자료나 문건이 없다. 군사적 핵이건 평화적 핵이건, 통제 불능의 재앙적 요소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떨어진 핵폭탄과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에서 일어난 원전사고가 동일한 물질에 의한 재난이었다는 것도 알리지 않는다. 오히려 원자폭탄보다 더 무서운 것이 원전 사고로 인한 방사능 유출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진실을 알리고 난 뒤 선택을 묻는 것이 양심적이지 않은가.

다행인 것은 알렉시예비치가 쓴 논픽션 <체르노빌의 목소리="">가 우리 앞에 있다는 것이다. 스웨덴 한림원이 ‘망각’에 맞서 기억하라고 외치는 이 작가에게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여한 의미를 떠올리면서 많은 생각을 했던 주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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