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촌 김용주는 일제강점기 후반까지 애국·항일운동에 적극적이었다가 태평양전쟁의 전초였던 1941년 이후 변절하여 일본의 대동아공영에 열성적인 친일분자가 됐다. 김무성 현 새누리당 대표의 부친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선친 김용주 전 전남방직(현 ㈜전방) 회장이 지난 1950년 국회에서 재일교포에 대해 "추잡한 행동을 해서 살아온 사람들"이라고 묘사했던 것으로 2일 확인됐다.
당시 주일공사(현 주일대사)였던 김 전 회장은 일본 교포사회에 대해 '밀주(密酒) 유통을 일삼는 암취인(闇取引·불법 상거래시장)', '공산주의자' 등으로 표현하며 일본 내 반한(反韓) 감정의 책임을 교포 탓으로 돌렸다.
반면 일본 정부에 대해서는 "우리가 머리를 숙여야 할" 대상으로 지칭했다.
1961년 참의원에서 한인강제퇴거를 재일교포 탓으로 돌린 반면 일본정부를 두둔해 '친일' 비판을 샀던 전력이 드러난 데 이어, 노골적인 '재일교포 폄하' 사료(史料)가 하나 더 늘어났다.
◇ 김무성 선친(先親) 김용주, "재일교포 대부분 추잡한 범법자"1950년 5월 6·25 전쟁 직전 김 전 회장은 이승만 정부로부터 주일공사에 임명됐다. 전쟁 발발 후 귀국해 국회 보고에 나선 그는 '일본 정세'에 대해 보고했다.
국회 사무처가 보관 중인 1950년 11월11일 '국회 임시회의 속기록'에는 당시 김 전 회장의 발언이 기록돼 있다.
김 전 회장은 재일교포 사회에 대해 "패망해 본시(本時)와 같은 처지에 놓였다"며 "정당한 안전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 5%, 직업을 가졌으나 안전치 않은 사람이 15%, 나머지 80%는 직업도 없고 생활 근거도 없고 '분사리 망서리'하는 동포"라고 묘사했다.
그러면서 그 책임을 '동포 탓'으로 돌렸다.
그는 "그들이(재일교포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 하면 이제까지 시장에서 암취인 생활을 하고 또 폭력이라든지 기타 이 자리에서 말씀드릴 수 없는 그러한 추잡한 행동을 해서 살아온 사람들"이라고 규정했다.
1945년 해방 이후 일본 사회를 통치한 '스캡(SCAP·연합군최고사령부)'이 당초 재일교포에 연합군과 같은 지위를 부여했지만, 교포들이 그 지위를 악용해 밀선(密船), 밀주(密酒) 등 암시장을 운영한 결과 '법률상 일본인'으로 강등됐다고 설명했다.
김 전 회장은 "전후에 좋은 양복을 입고 얼굴이 화색으로 다니는 사람은 다 한국인이고 각 요리점에 가서 매일 잔치로 화려한 유흥을 하는 사람은 대부분이 한국인"이라며 일본사회의 세평(世評)을 그대로 전했다.
재일교포들이 일본내 공산당과 연관돼 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김 전 회장은 "일본 공산당의 약 70%가 우리 교포"라고 단정 지었다. 이어 교포들이 공산화된 이유에 대해 "공산당이 세금 불납과 밀주 등의 문제에서 나서 일본 관청과 싸우기 때문에 우리 교포 대부분이 공산당을 따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 "교포사회 잘못, 한국이 일본에 고개 숙여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자료사진/윤창원 기자)
이런 주장은 결국 교포들이 각종 불법 행위와 공산주의 활동으로 일본 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다는 결론으로 귀결된다.
김 전 회장은 "우리 해안에서 밀선으로 건너가는 학생이 수만에 달한다. 홍수같이 몰려가는 학생 문제라든지 모든 것이 한 가지에서 열 가지 우리가 일본에 머리 숙일 일"이라며 이날 보고를 끝마쳤다.
그는 이날 발언으로부터 1년 뒤인 1951년, 일본이 샌프란시스코 조약으로 국권을 되찾은 뒤 우리 교포의 국적을 박탈한 사건에 대해서도 '교포 사회 탓'으로 돌리게 된다.
재일교포 국적 박탈과 강제 퇴거 등에 대한 그의 '일본 옹호' 발언은 1961년 1월24일 참의원 회의록(노컷뉴스 11월1일자 <김무성 부친="" 1961년="" 의원시절="" '친일="" 발언'="" 확인=""> 기사 참조)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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