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한국사 8종 검인정 교과서. 금성출판사, 두산동아, 미래엔, 비상교육, 천재교육, 리베르스쿨, 지학사, 교학사. (사진=홍성일 기자/자료사진)
"앞으로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통해 분열된 국론을 통합하고, 우리 아이들에게 대한민국의 자부심과 정통성을 심어줄 수 있도록 각고의 노력을 다해 나갈 것입니다."
재일동포 강종헌(64)씨는 박근혜 대통령의 27일 국회 시정연설을 듣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유신 시절 간첩으로 몰려 13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아픈 과거와 그 이유가 '올바른 역사교과서'에서는 지워질지 모른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1975년 서울대 의대 재학 중 학원침투 간첩단 사건의 주범으로 몰려 사형 선고를 받았던 강씨는 1988년이 돼서야 겨우 풀려났다.
지난 8월 늦게나마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명예를 회복했지만, '의사가 돼 동포들을 돕겠다'는 젊은 시절의 꿈은 모두 물거품이 됐다.
교과서를 통해 대한민국의 자부심을 심겠다는 박 대통령의 바람대로라면 이러한 유신의 악몽이 교과서에 실리기를 기대하기란 쉽지 않은 상황.
강씨는 "정부가 말하는 긍정적인 역사라는 건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자의적 해석일 뿐"이라며 "불리한 사실을 덮고 뭉개는 것은 과학도 역사도 아니고 독재로의 회귀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말한 '긍정 사관' 역시 국정 교과서가 역사를 왜곡할 가능성이 크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앞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지난 22일 최고위원회에서 "지금처럼 과거 지향적, 부정적, 패배주의적인 교과서로는 희망찬 대한민국의 미래를 개척할 수 없다"며 " 올바른 교과서는 우리 정체성, 전통성, 자긍심을 가르치기 위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 "부정적 역사 배우지 말자는 게 오히려 패배주의"
이처럼 '긍정 사관'을 가르치겠다는 정부 여당의 주장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독재나 인권 유린과 같은 어두운 과거를 도려낸 채, 경제 발전과 같은 밝은 부분만 편집해 가르친다면 역사적 사실의 왜곡과 다를 바 없다는 것.
민주화운동청년연합동지회 김성환 회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우리 나라를 좌우 갈등이 첨예했던 갈등 시대로 되돌리려 한다는 느낌이 든다"며 국정 교과서로의 회귀는 역사적 퇴행"이라고 말했다.
이어 "민주화 운동에 몸 담았던 분들 사이에 국정화 교과서에 분개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조만간 공식적으로 국정 교과서 반대 입장을 표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