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누구나 추억의 '노량진 육교'를 하나쯤 갖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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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동작구청 홈페이지)

 

'노량진 학원가'는 슬픔과 기쁨이 뒤섞인 '추억의 공장' 같다. 짧게는 6개월, 길게는 5~6년을 공부한 뒤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합격한 고시생과 취업준비생들은 저마다 한편의 드라마와 같은 추억을 갖고 이곳을 떠난다. 낯선 고시촌과 학원을 오가며 보냈던 시간들이 울퉁불퉁한 모과 같은 애환을 빚었기 때문이다. 그 애환의 상징물로 자리 잡은 것은 '노량진 육교'였다. 낡고 빛바랜 이 육교는 학원가 고시생들에게 용기를 주기도 했지만 때로는 절망에 빠지게도 했던 애증의 육교였다.

'노량진 육교'를 걸어가면서 눈물을 흘렸거나, 환호성을 질렀던 불합격과 합격 고시생 모두에게 육교는 친구였다. 남에게는 차마 털어놓을 수 없는 속마음을 알아주는 유일한 상대이기도 했다. 철근콘크리트로 만든 무기질 구조물이지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365일 한결같은 모습으로 버티고 서서, 고시생들이 털어놓는 가슴 아픈 사연도 들어주고 설레는 마음으로 속삭이는 희망 어린 꿈도 들어주었다.

이곳을 거쳐 간 전국의 수많은 고시생들은 자신이 겪은 '노량진 육교'에서의 이런저런 애환을 들려주며 추억한다.

"세끼는 모두 밥으로 드시고요, 간식은 되도록이면 과일 드세요. 노량진역에서 수산시장 쪽으로 보면 H마트가 있는데 이곳 과일이 싸요. 가끔씩 단백질 섭취를 위해서 O치킨에서 사람들이랑 치킨도 먹으면 좋아요. 테이크아웃이면 5천원이고 안에 들어가면 6천원이에요. 그리고 인터넷을 잠시 공짜로 사용하고 싶다면 맥도널드 큰길가에서 노량진 육교 쪽으로 걸어오면 S몰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서 인터넷 공짜로 쓸 수 있어요."

"성인이 되가지고 부모님한테 손 벌려야 한다는 것이 웬만해서는 쉽지 않거든요. 자기 자신이 처량해 보이기도 하고, 한번 손 벌리기 시작하면 계속 이어질텐데 라는 생각 때문에 가슴이 아팠어요."

"어려웠던 점이라면 건강관리에요. 고시원에서의 생활 중에 하루 한 끼는 라면을 먹었어요. 처음엔 학원 선생님들이 제 건강 물어보면 "남는 게 체력밖에 없어요"라고 말 할 정도였는데 나중에 위가 헐어 수업시간에 쓰러질 뻔한 적도 있어요."

"새벽 5시에 학원에 와서 새벽특강 자리를 잡고 영어단어 공부를 7시 반까지 했어요. 그리고 새벽특강 듣고 오전 이론수업 듣고, 오후 문제풀이하고 저녁을 사 먹고 고시원으로 돌아오면 8시가 돼요. 잠들기 전까지 다시 공부를 해요."

"저를 끝까지 믿어주셨던 부모님과 제가 힘들 때 큰 위로가 되었던 H에게 마음 속 깊이 감사드려요. 그리고 10년 지기 친구이자 노량진에서 같이 공부한 멋진 W도 마무리 잘 해서 곧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추억의 노량진 육교'를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은 젊은 날의 애환이 서려 있는 육교가 생각날 때면 미소를 지을 것이다. 다들 잠든 밤 '노량진 육교'에 올라 한강과 63빌딩을 바라보면서, 치열하고 막막한 현실과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눈물 흘리던 날들을 떠올리면서 지금 자신의 자리에 감사해 할 것이다.

'노량진 육교'와는 무관한 사람들이라고 그런 추억이 없을까. 사람들은 누구나 '추억의 노량진 육교'와 같은 기쁨과 슬픔의 변주곡이 들려오는 장소를 만들고 싶어 하고, 하나씩 간직하고 있다. 청춘의 아픔은 세월이 흐르면서 행복으로 변신하는 마술과 같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어떤 '노량진 육교'를 지니고 있는가.

'노량진 육교'는 10월 18일 완공된 지 35년 만에 철거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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