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 기자들의 취재 뒷 얘기를 가감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
박원순 서울시장(왼쪽)과 유정복 인천시장 (사진=자료사진)
전국 시도지사협의회는 지난 16일 강릉에서 제33차 정기총회를 열어 유정복 인천시장을 9대 협의회장으로 합의추대했다.
전국 시도지사협의회는 시·도 간의 교류와 협력을 증진하기 위해 지난 1999년 전국 광역단체장들을 회원으로 설립됐다.
협의체에 불과하지만 여야로 갈린 정치지형에서 협의회장은 청와대와 정부에 대한 대표창구로서 상징성이 높은 자리다.
협의회는 설립 이후 16년 동안 9명의 협의회장을 배출했다. 지난 1999년 초대 협의회장인 고건 서울시장 이후 주로 여당 소속 광역단체장이 협의회장을 맡아왔다.
야당 소속 협의회장도 세 차례 있었다. 김진선 강원지사가 참여정부 시절이던 2006년 선출돼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뒤 2008년까지 재임했다.
박준영 전남지사가 이명박 정부 말기에 전국 시도지사협의회장을 맡았고 직전 8대 회장인 이시종 충북지사도 야당 소속이다.
전국 시도지사협의회장은 일반적으로 합의추대로 선출해왔다. 주로 해당 광역단체에 국가적 현안사업이 있는 경우 합의로 해당 단체장을 추대했다.
그러나 이번 협의회장의 경우, 경선까지 가는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인 박원순 서울시장과 새누리당 소속 유정복 인천시장이 서로 회장직을 맡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결국, 지난 9월 총회는 경선까지 가는 상황에 이르렀다. 결과는 8대8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이번 33회 총회로 미뤄졌다.
전국 17개 광역단체장 가운데 새누리당 소속은 8명,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이 9명이다.
시도지사들은 조정을 통해 합의를 끌어내려 했지만 두 시장 모두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다, 박원순 시장이 16일 강릉 전국체전을 겸한 정기총회를 앞두고 결단을 내렸다. 박 시장으로서는 2006년 이후 10년만에 서울시장이 전국 시도지사협의회장을 찾아오는 기회였지만 통크게 양보하기로 결정했다.
여당 소속 협의회장이 아무래도 지방자치 현안에 대해 청와대나 정부와 원만한 대화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대승적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박원순 서울시장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박원순 시장의 한 측근은 "무엇보다 협의회장직을 놓고 시도지사들 사이에 경선이 이루어지고 신경전이 벌어지는 상황에 박 시장이 몹시 불편해했다"고 전했다.
신임 협의회장인 유정복 인천시장이 박근혜 대통령과 잘 통하는 친박 핵심인사라는 점도 박 시장측은 감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박원순 시장의 이같은 양보 뒤에 개운치않은 뒷얘기들이 흘러나오고 있다.
바로 청와대의 입김설이다. 청와대측이 박근혜 대통령의 복심(腹心)이라고 할 수 있는 유정복 인천시장의 협의회장 만들기를 위해 몇몇 시도지사들에게 이른바 ‘작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측이 정기총회를 앞두고 야당 소속 몇몇 지사에게 박원순 시장에게 출마포기를 종용해주고 경선이 이루어질 경우 유정복 시장 지지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산과 정책 등에서 정부 지원이 필요한 야당 소속 광역단체장으로서는 거부하기 어려운 요청이다.
청와대의 요청이 단순한 회유가 아닌 압력으로 느껴질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청와대가 야당 소속 광역단체장들을 상대로 이같은 작업을 벌였다면 여당 소속 단체장들은 불을 보듯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유정복 인천시장은 지난 16일 정기총회 직전까지 박원순 시장의 양보 움직임을 모르고 있었다. 당연히 또 한번 표 대결을 벌일 각오를 하고 강릉에 도착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