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것 같던 그때를 기억한다면...' 한화는 지난 시즌 뒤 김성근 감독이 부임하면서 마무리 훈련과 스프링캠프를 통해 이른바 '지옥의 펑고'를 받는 등 혹독한 수비 훈련을 실시했다. 그러나 시즌 막판 승부처에서 결정적 수비 실책으로 무너져 가을야구 진출 가능성이 희박해지고 있다. 사진은 조인성(왼쪽)과 김회성의 지난해 마무리 훈련 때 펑고를 받는 모습.(자료사진=한화)
지난해 한화는 실책 1위였다. 128경기 113개, 경기당 거의 1개 꼴이었다. 수비율도 9할7푼7리, 9개 구단 중 최저였다. 중요한 고비에서 수비로 무너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올 시즌 전 한화는 수비 보강에 역점을 뒀다. 김성근 감독은 지난해 10월 취임식에서 "야수들이 공을 잡으러 가는지 쫓으러 다니는지 알 수가 없었다"며 약점을 지적했다. 이어 주장 김태균에 대해 "3루에서 반 죽었다"는 말로 죽음의 마무리 훈련을 예고했다.
김 감독의 말대로 한화 선수들은 일본 마무리 훈련에서 초주검이 됐다. 김 감독의 이른바 '지옥의 펑고'에 하나둘 나가떨어졌고 강도높은 수비 훈련은 스프링캠프, 나아가 시즌 중에도 이뤄졌다.
최근 6년 동안 5번, 지난해까지 3년 연속 꼴찌였던 성적에 보살이 됐던 팬들은 이런 변화에 반색하며 기대감을 키웠다. 코치진은 물론 김 감독이 직접 팔을 걷어붙치고 나선 펑고는 한화 반등의 예고처럼 신선한 화제를 몰고 왔다.
▲'아! 권용관' 7회 통한의 실책하지만 '2015 타이어뱅크 KBO 리그' 막판 한화의 발목을 잡고 있는 건 역설적이게도 수비다. 무엇보다 가을야구를 위한 중대 고비에서 잇따라 치명적인 실책이 나왔다. 타구와 함께 눈앞에 둔 승리까지 놓치면서 엄청난 패배의 타격을 입었다.
한화는 16일 광주-KIA 챔피언스 필드에서 열린 KIA 원정에서 3-4 뼈아픈 역전패를 안았다. 이날 이겼으면 6위로 올라설 수 있었으나 지면서 8위로 추락했다.
이날 나온 단 1개의 실책이 빌미가 됐다. 3-2로 앞선 7회말 2사 1, 3루에서 나온 에러로 통한의 동점을 허용했다. 필승 계투 권혁은 상대 신종길을 내야 땅볼로 유도했다. 하지만 달려오면서 잡으려던 베테랑 유격수 권용관이 타구를 흘리고 말았다. 그 사이 3루 주자 김민우가 홈을 밟았다. 이닝을 마무리할 상황이 3-3 동점으로 변한 것.
'왜 하필 이때...' 한화 유격수 권용관이 16일 KIA 원정에서 7회말 2사 1, 3루 수비 때 신종길의 땅볼 타구를 놓치는 모습.(사진=SPOTV 중계화면 캡처)
분위기를 가져온 KIA는 8회말 기어이 역전을 만들었다. 선두 타자 김주찬이 권혁에게 3루타를 뽑아내며 기회를 만들었다. 여기에는 한화 중견수 이용규가 우중간 타구를 잡으려고 몸을 던졌다가 포구에 실패, 공이 흘러간 장면이 있었다.
물론 박빙의 승부였던 만큼 이용규가 승부를 걸었지만 결론적으로 안전하게 단타 처리를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실책으로 기록되지 않았지만 단숨에 득점권 주자가 생기는 위험을 감수하기에는 부담이 컸다. 권혁은 후속 브렛 필에게 희생타를 맞고 결승점을 내줬다. 리그 최다 13패째.
결국 한화는 3-4로 지면서 SK에 7위 자리를 내주고 0.5경기 차 8위로 밀렸다. 아쉬운 수비 2개가 두고두고 후회로 남을 경기였다.
▲8일 잠실 참사 후유증, 5연패 수렁사실 한화의 수비 참사는 지난 8일 LG와 잠실 원정이 최악이었다. 9회 3점 차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연장 12회 끝내기 패배를 안은 원인이 바로 실책이었다.
당시 한화는 7-4로 앞선 9회말 1사 2루에서 필승조 박정진이 상대 양석환으로부터 내야 뜬공을 유도해냈다. 잡았으면 아웃 카운트 1개만 남는 상황. 그러나 1루수 권용관이 타구를 놓치면서 1사 1, 2루가 됐다. 더욱이 9회말에 앞서 3루를 보던 권용관을 1루로 수비 위치를 변경한 가운데 나온 실책이라 더 아쉬웠다.
흔들린 박정진은 이후 박용택에게 1타점 적시타를 맞았다. 이어진 2사 1, 2루에서 볼넷 3개와 폭투 1개로 7-7 동점을 허용하고 말았다. 결국 한화는 연장 12회 끝에 7-8로 분패했다.
'왜 하필 그때 교체를...' 지난 8일 LG와 잠실 경기에서 1루수 권용관이 9회말 1사 2루 때 양석환의 뜬공을 놓치는 모습.(사진=MBC 스포츠플러스 중계화면 캡처)
특히 이날은 에이스 에스밀 로저스가 등판하고도 어이없이 진 경기였다. 그 후유증을 이기지 못한 한화는 이후 5연패 수렁에 빠졌다. 5위였던 순위도 8위까지 내려갔다.
사실 한화는 16일 KIA전을 이겼다면 3연승에 성공, 5연패 충격을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아픈 기억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다시 수비 때문에 경기를 망치게 된 것이다. 이날 경기의 중요성을 감안하면 그 후유증을 다시 극복할 수 있을지가 미지수다. 이날 패배로 한화는 5위 롯데와 승차가 2.5경기로 벌어졌다.
▲실책-수비율 8위, 도루저지율 최하위한화는 올해도 어느새 실책이 최하위권이다. 132경기 102개로 지난해보다는 나아졌지만 10개 구단 중 3번째로 많다. 케이티, 넥센(131경기 103개)보다 1개 적다. 수비율도 .980으로 케이티, 넥센(.979)에만 간신히 앞선다.
그나마 케이티는 신생팀이기에 어느 정도 이해할 만한 이유가 있다. 넥센은 엄청난 방망이의 힘으로 실책을 상쇄하는 팀이다. 넥센은 그래도 정규리그 3위를 달리며 3년 연속 가을야구를 예약했다. 한화와는 상황이 다르다.
그러나 한화는 마운드와 타선의 약점을 메워야 할 수비가 오히려 발목을 잡는 모양새다. 특히 지옥 같았던 수비 훈련을 감안하면 그 성과가 크지 않은 셈이다. 하루 아침에 갖춰질 기본기가 아니다. 지난달 23일 광주 원정에서도 한화는 결정적 실책 2개를 범하며 KIA에 지는 등 후반기 수비가 흔들리고 있다.
'역전극의 계기' KIA 김민우가 16일 한화와 홈 경기에서 7회말 2루 도루에 성공하는 모습.(광주=KIA 타이거즈)
여기에 또 다른 중요한 수비 지표인 도루 저지율이 최하위다. 단순히 포수의 송구 능력만이 아니라 물론 투수진의 견제 능력, 나아가 내야진 전체의 짜임새를 가늠할 척도다. 한화는 28%로 LG(29%)와 함께 10개 구단 중 유이한 20%대다. 도루 허용도 156개로 가장 많다.
16일 경기에서도 한화는 승부처에서 2번의 도루를 허용했다. 7회말 볼넷으로 출루한 KIA 선두 타자 김민우가 1사에서 백용환 타석에서 두 번이나 베이스를 훔쳤다. 왼손 투수 권혁임에도 김민우는 2루를 찍었고, 내친 김에 3루 도루까지 성공했다. 이 2번의 도루가 있었기에 권용관의 실책 때 홈을 밟을 수 있었던 것이다.
최근 한화가 겪은 잇딴 대참사에는 권용관의 결정적인 실책이 있었다. 그러나 프로 입단 21년 차 베테랑으로서 올 시즌 유격수는 물론 1, 3루를 가리지 않고 맡아온 공로를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다. 다만 시즌 막판 불혹의 나이에 심신이 지친 가운데 집중력이 떨어진 점은 팬들에게 아쉬움과 함께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지난 시즌 뒤 맹렬한 수비 훈련으로 환골탈태를 선언했던 한화. 과연 남은 정규리그에서 달라진 점을 입증하며 가을야구로 결실을 맺을지, 끝내 수비의 연옥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기본 부족을 뼈저리게 곱씹으며 씁쓸하게 마무리 훈련에 들어갈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