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미국의 금리인상 결정을 앞두고 경제 위기설이 확산되고 있다. 중국의 경기둔화가 충격을 주고 있는 가운데 미국이 금리를 인상할 경우 가계부채가 천 백조원이 넘는 우리 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줘 경제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위기설이 과연 근거가 있고 현실화될 가능성이 있는 것인지, 대책은 무엇인지를 3차례에 걸쳐 집중 조명한다. [편집자 주]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지난 6월말 현재 우리나라 전체 가계가 금융권에서 빌린 돈, 가계부채 규모는 1,130조5천억원에 이른다.
금융부채를 가진 가구가 천만 가구(2014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에서는 1090만 가구)라면 한 가구에 평균 1억원 이상의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이는 지난해 말 우리나라 가처분 소득의 1.6배에 이르는 규모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평균인 가처분 소득의 1.3배 수준을 넘어선지 오래다.
가계부채 증가속도도 심각하다.
최근 3년간만 봐도 연간 5~ 6%의 증가율을 지속하고 있다. 이 기간 명목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3%를 훨씬 앞지르고 있다.
최근에는 그 증가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최근 1년 사이에 백조원 가까이 늘었다. 1년 전과 비교하면 무려 9% 이상 증가한 것이다.
이렇게 많이 증가한 주된 요인은 지난해 8월 이후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4 차례 인하해 금리가 계속 내려간 가운데 정부가 부동산 경기를 떠받치기 위해 LTV(주택담보대출비율), 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를 완화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거시적인 가계부채 규제방법은 금리이고 미시적인 관리대책은 LTV, DTI다. 정책을 쓸 때 하나만 써야 되는데 둘 다 완화해서 가계부채가 급증한 것”이라고 말했다.
◇ 정부의 대책 발표 이후에도 가계부채 증가속도 꺾이지 않아정부도 가계부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지난 7월 22일 원리금 분할상환 관행 정착과 금융회사의 상환능력 심사방식 개선 등의 내용을 담은 가계부채 종합관리방안을 마련해 시행 중이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가계부채증가 속도는 꺽이지 않는 양상이다.
신한과 국민 등 주요 시중은행 6곳의 지난달 주택담보대출은 한달 전보다 6조원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LTV 등 규제완화로 대출이 급등했던 지난해 8월보다도 40% 가까이 늘어난 수치이다.
부동산 (사진=자료사진)
전세난이 심화되면서 주택매매가격이 크게 오른데다 가계부채 종합관리대책이 실행되는 2016년 전에 대출을 받으려는 수요가 늘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문제는 가계부채 규모가 이처럼 엄청나고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 발 금리인상의 파도가 곧 들이닥친다는 점이다.
◇금리 0.25%만 올라도 이자부담 2조원 늘어물론 미국이 금리인상을 한다고 해도 한국은행이 곧바로 금리를 인상하지 않을 수도 있다.
과거 사례를 보면 그럴 가능성이 아주 높다.
여기에 최근 수출이 부진하고 내수경기도 살아나지 않는 상황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늦출 수는 없는 일.
금리차로 인한 자본유출을 막기 위해서는 일정한 시차를 두고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릴 수 밖에 없다는 것은 과거 사례에서도 여실히 볼 수 있다.
금리가 올랐을 때의 충격은 엄청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25% 포인트만 올려도 현재 7,8백조에 이르는 변동금리 대출금의 이자부담은 연간 1조 7500억에서 2조원에 이르게 된다.
정희수 하나금융경영연구소 개인금융팀장은 “미국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상각 처리를 해서 가계부채를 떨고 갔는데 우리나라는 하나도 안 줄였다. 그 때 못 떨어낸 게 규모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 경기도 안 좋은데 금리가 0.5% 포인트 이상 올라가면 상당한 충격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정희수 팀장은 이어 “가계부채는 소액으로 쪼개져 위험이 분산되지만 규모가 너무 커졌다. 가계가 감당을 못하면 금융권 부실로 이어지고 심하면 유동성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저축은행 등 제2 금융권 대출이 많은데 위기가 와서 제2 금융권부터 위험하게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최윤식 한국뉴욕주립대학교 미래연구원장은 미국금리는 장기적으로는 3, 4년에 걸쳐 3.75%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이에 맞춰 결국은 기준금리를 올릴 수 밖에 없게 되고 그럴 경우 가계의 이자부담은 지금의 3, 4배로 폭발적으로 늘게 되고, 이런 상태가 4, 5년 계속되면 이를 감당 못하고 무너지는 가계가 속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150만 한계가구의 부채 4백조원부채를 감당하기에 취약한 가구는 얼마나 될까.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 상의 한계가구와 부실위험가구로 분류한 가구가 여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한계가구는 금융자산이 없고 처분가능소득 대비 원리금상환부담 비율이 40%가 넘는 가구로, 150만가구(2014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기준, 전체 금융부채가구의 13.8%)에 이르고 이들이 보유한 금융부채 규모는 4백조원나 되는 것으로 한국은행은 보고 있다.
부실위험가구는 한국은행이 채무상환능력을 종합적으로 보기 위해 만든 가계부실위험지수로 추산할 때 112만 가구(전체 금융부채가구의 10.3%)에 이르고 이들 가구가 보유한 143조원이 위험부채로 분류됐다.
분류기준은 다르지만 백만이 넘는 가구가 금리가 빠르게 올라갈 때 부채상환에 취약하고 장기간 지속되면 부실위험이 높다고 할 수 있다.
◇ “가계부채는 경제위기로 가는 도화선”
(이미지=스마트이미지 제공)
부채로 무너지는 가계가 속출하면 우리 경제에 어떤 상황이 빚어질까.
최윤식 원장은 “가계부채는 그 자체로 시한폭탄이 아니라 경제위기로 가는 도화선”이라고 주장한다.
우리 경제의 가장 취약한 부분인 가계가 이자부담을 견뎌내지 못하고 무너지게 되면 부동산 침체, 소비위축, 기업경쟁력 약화, 실물경제 악화, 제2 금융권 부실 심화 등으로 전선이 확대되고 한국의 신용도가 떨어지면서 외국자본이 빠져나가는 위기사태까지 빚어질 수 있다고 본다.
이것은 우리가 그 동안 구조조정 노력을 하지 않은 만큼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최윤식원장은 강조한다.
“우리가 저출산 고령화, 수출경쟁력 둔화, 노동유연성 미확보 등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성장을 위해 경제시스템을 업그레이드했어야 했는데 하지 못했다. 미국 금리인상으로 가계부채라는 도화선에 불이 붙으면서 그 동안 잠복돼 있는 문제가 도미노 식으로 폭발할 가능성이 높다.”
◇“경제위기론 현실화될 가능성 높지 않다”는 의견도가계부채문제가 경제위기를 불러올 것이라는 시나리오는 충격적이지만 여러 전제조건이 들어 맞아야 가능하다.
미국이 3,4년에 걸쳐 기준금리를 4% 가까이 많이 올리고, 한국은행이 시차를 두고 기준금리를 그 이상 올린 상태에서 상당기간 갈 때 비로소 가능하다.
이 점에서 경제위기론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견해도 있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많이 올리지 못할 것이고 한국은행도 가계의 어려움을 무시하고 기준금리를 쉽게 올리지는 못할 것이라고 보는 전문가도 많다.
가계부채의 내용을 봐도 시스템붕괴를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고 이들은 주장한다.
임일섭 우리금융경영연구소 금융연구실장은 “가계부채에 관심을 갖는 것은 부실해지면 금융기관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하기 때문인데, 가계대출의 상당부분은 주택담보대출이고 차입자가 대부분 중산층 레벨이다. 물론 어려운 분들도 있지만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기 때문에 거시경제적인 위험은 크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임일섭 실장은 더 나아가 “위기를 말하는 사람 말 듣고 아끼고 집을 팔면 안 일어날 나쁜 일도 발생한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행동하면 안 올 불황도 온다. 이것이 케인즈가 말하는 '절약의 역설'이다. 현 시점에서 위기론을 말하는 것은 틀린 것일 뿐만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계부채, 금융권 부실 불러올 수 있어금리가 올랐을 경우 가계부채가 경제시스템 붕괴까지는 아니더라도 금융권 부실을 불러 올 수 있다.
NICE 신용평가 조사결과 지난 6월말 현재 여러 금융기관에 채무를 갖고 있는 다중채무자 가운데 50대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이 44.7%로, 지난해 말보다 2% 포인트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