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라 곳간지기들이 선택의 기로에 섰다. 재정 지출을 확대해 경기 부양을 계속할 것인지, 아니면 재정건전성 지키기로 전환해야 할지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나라살림은 적자가 심해지고 국가부채는 빠르게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내년도 예산안은 이런 고민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증세논의도 다시 부상할 전망이다. 2016년 정부 예산안의 내용과 쟁점들을 문답식으로 살펴본다.
Q1. 정부의 내년도 예산안, 빠듯하다 이런 의견들이 많다. 이유는?
= 과거와 비교해 예산 증가율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내년도 지출 예산안은 386조7천억원으로 확정됐다. 올해보다 11조원, 비율로는 3% 정도 증가했다. 지난 2010년 이후 6년만에 증가율이 가장 낮았다. 올해 예산이 지난해보다 20조원, 5.5% 증가했으니까, 이것과 비교해도 확실히 내년도 예산 사정은 좀 빠듯한 수준이다.
(그래픽=스마트영상팀)
그런데 복지예산은 내년에 새롭게 내놓은 것이 많지 않은데도, 자동적으로 7조원 가량 소요가 더 늘어났다. 복지분야 예산만 123조원으로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2%에 육박해 사상 최대다. 또 내년에는 정부가 일자리 예산을 1조8천억원, 전년대비 12.8% 늘려, 특히 청년 고용에 대책을 집중할 예정이다. 북한도발 위협에 대비해 국방예산도 1조5천억원 증액됐다.
Q2. 빠듯하게 예산을 잡았는데도, 돈 쓸 곳은 많아진 상황인데?= 그렇다. 돈 쓸 곳이 많아졌는데 증가율이 3%로 묶이면서 여러 사업 예산이 잘려나갔다. 토목과 건설, 즉 SOC 예산이 1조7천억원 깎였고, 에너지와 자원개발 분야 등을 중심으로 80여개 사업들이 예산이 절반이상 삭감되거나 폐지됐다. 연구개발(R&D)과 산업 분야 예산도 줄었다. 내년도 예산안에서는 우선순위 분야로 돈을 끌어 오기 위해 여기저기 예산을 깎거나 손질한 흔적이 많이 보이는 것도 하나의 특징이다.
일각에서는 R&D나 SOC 등의 분야에서 예산이 줄어들면서, 정부가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투자에 소홀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현대경제연구원 이준협 연구위원은 "전세계 경제가 저성장 기조로 들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경기를 계속 떠받치는 것보다는 성장잠재력 확충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R&D와 산업, SOC 분야 등 투자성 예산이 줄어든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Q3. 그런데 내년에 씀씀이를 크게 못 늘린 이유는 국가채무 때문이라고?
= 그렇다. 내년에 국가채무는 645조원으로 처음으로 600조원을 돌파하게 된다. 그리고 국내총생산 대비 국가채무 비중도 사상 최초로 40%를 넘어설 전망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초기에 "임기동안 국가채무를 30%대 중반 수준에서 관리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그래서 사실 이번 정권에서 40%는 넘어서는 안 되는 일종의 마지노선이었지만, 그것이 이번에 결국 깨지게 됐다.
(그래픽=스마트영상팀)
그래서 경기회복을 위해 씀씀이를 더 늘릴 것이냐 아니면 마지노선을 넘어버린 나라 빚을 먼저 관리할 것이냐. 사실 재정당국은 이 기로에 서있다. 그리고 내년에는 이 중간지점을 선택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다소 빠듯한 3% 정도로 지출예산을 늘리는 것으로 결정이 됐다.
기획재정부는 이것을 두고 "2016년 예산안은 재정건전성을 크게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경제활성화를 위한 재정의 역할을 강화할 수 있는 수준으로 편성했다"고 표현했다. 균형점을 찾은 것이 3%였다는 뜻이다.
Q4. 내년도 예산안에서는 어느정도 쟁점을 비껴나갔지만 문제는 앞으로가 아닌가? 국가채무는 계속 늘어날텐데?= 그렇다.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2015~2019년 재정운용계획'을 봐도, 2019년까지 재량지출을 해마다 0.7%씩 줄여나가더라도 국가채무는 내년에 600조원을 돌파한데 이어, 그 다음 2년 뒤인 2018년에는 다시 700조원을 넘을 걸로 예상된다. 부채가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빨리 늘어나는 상황이다.
사실 지난해와 올해 최경환 경제팀이 재정을 쏟아부었지만, 경제성장률은 4%가 아니라 3%대도 지켜내기 힘든 상황에 봉착해있다. 지금 정부 돈을 좀 쓰더라도 성장률을 높이면 세금이 더 걷혀서, 결국 재정건전성이 좋아진다는 논리가 먹혀들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나라 곳간 열쇠를 들고 있는 곳간지기들, 즉 기획재정부 관료들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근본적으로 재정의 역할은 계속하면서 돈을 더 풀어야 하는지 아니면 이제 거둬들여야하는지, 조만간 선택의 시기가 올 것으로 보인다.
Q5. 그렇다면 증세없이 재정건전성을 확보할 방도는 없는가?= 증세를 빼놓고 몇가지 쓸 수 있는 카드는 있다. 먼저 나라빚을 계속 불어나게 만들고 있는 요인들 중 하나인 세수펑크 문제를 틀어막는 것이다. 내년 예산안에서 총수입 증가율을 2.4%로 매우 보수적으로 잡은 이유다. 그동안 세수전망을 낙관적으로 보고 지출도 좀 넉넉하게 짰다면, 이번에는 아예 수입이 적게 들어올 것이라는 전망 아래 씀씀이를 줄였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이 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2016년 예산안을 설명하고 있다. 왼쪽은 기재부 송언석 예산실장. (사진=기획재정부 제공)
두번째 카드는 재정보다는 통화정책을 건드리는 것이다. 금리를 낮춰서 시중에 돈을 풀면 물가가 올라간다. 물가가 오르면 실질 성장률은 정체되더라도 물가 수준을 반영한 경상성장률이 상승한다. 그러면 경상성장률과 정비례의 관계가 있는 세금 수입이 늘어나 재정건전성도 높아진다는 논리다. 연세대 성태윤 교수는 "아직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이 낮아졌다고 볼 수 없고, 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지출 규모도 충분히 늘어날 필요가 있다"면서 "지금 상황에서는 재정과 함께 통화정책이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미 기준 금리는 1% 초반대로 내려간 상태다. 금리가 0%대로 접근하면, 현재 1100조원이나 깔려있는 가계부채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 미국이 금리 인상을 예고하고 있어서 외국인 자금이 미국으로 대거 빠져나가는 것을 막으려면 섣불리 금리를 낮출 수도 없는 어려운 상황이다.
Q6. 결국 증세 논의가 필요한 상황인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