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풍경. (윤성호 기자/자료사진)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가 제안한 독일식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한국정치의 고질적인 병폐인 지역주의 완화효과가 뚜렷한 것으로 나타났다.
새누리당은 서울과 수도권, 호남에서 약진하며 전체 비례대표 의석 중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고, 새정치민주연합은 영남에서, 통합진보당은 수도권에서 정당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확보하지 못했던 의석을 확보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국회 입법조사처 김종갑 입법조사관이 2012년 19대 총선 결과를 바탕으로 한 시뮬레이션(모의실험) 결과 지역구 의원과 비례대표 의원 비율을 3 대 1(의석수 336석으로 확대)로 하건 2대 1(369석으로 확대)로 하건 새누리당은 과반에 육박하거나 과반을 넘는 1당을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해도 새누리, 과반 의석 확보한 1당
우선 독일식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19대 총선(300석) 득표율에 적용해보면 당시 157석(합당한 자유선진당 5석 포함)을 얻은 새누리당은 의석수를 369석으로 늘려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적용할 때 29석이 늘어난 186석을 얻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례대표 확대로 늘어난 의석(69석) 중 절반 가까이를 확보하면서 과반(185석)을 넘는 '1당'이 되는 것이다.
이는 새누리당이 자체분석한 결과와는 약간 다른 것으로 새누리당은 총 371석을 (지역구 246석 비례대표 125석)을 기준으로 선진당 확보의석을 포함해 총 183석을 확보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당시 127석을 얻은 새정치민주연합(당시 민주통합당)은 143석으로 16석 늘고, 13석을 얻은 통합진보당은 40석을 확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권역별 비례대표는 특히 정치권의 폐단인 지역주의 완화에 크게 기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호남과 제주지역에서 단 한건의 의석도 얻지 못했지만 야당 혁신위 안을 적용할 경우 호남지역에서 5석을 얻는 것으로 나타났고, 서울과 수도권에서는 각각 18석과 19석의 의석을 추가로 확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총선에서 강원지역에서 단 한건의 의석도 확보하지 못하고, 영남지역에서 단 3석의 의석밖에 확보하지 못한 새정치민주연합 역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할 경우 경기도와 인천, 강원지역에서 12석, 부산과 울산, 경남지역에서 15석을 확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뮬레이션을 실시한 김종갑 입법조사관은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지역주의 완화효과를 보일 수 있어 우리 선거제도의 대안적인 모델로 검토해볼 수 있다"며 "현재 비례의석수(54석)로도 지역구도 완화효과는 있지만 비례의석을 지역구 의석수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늘려야 지역정당체제를 허무는 해법으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비례의석을 늘리기 위해서는 지역구의석을 줄이거나 총의석을 늘려야 한다"며 "어느 쪽이든 모두 현실적으로 실현되기 어려운 문제기 때문에 국민적 여론수렴과 동의가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 사표 완화 효과도…새누리 "지역주의 완화 효과 인정하지만"유권자의 표심, 다시 말하면 정당지지도를 정확히 반영할 수 있다는 장점도 야권과 전문가들이 비례대표제 도입을 주장하는 이유다.
최다득표자 1인만 당선되는 현행 선거구제에서 반영되지 못하는 사표(Wasted Vote)를 더 많이 반영하기 때문이다.
지난 총선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은 부산 중구동구와 북구강서갑, 대구수성구갑에서 각각 39.2%, 47.6%, 40.42%를 득표했지만 새누리당보다 5~9% 적게 득표했기 때문에 의석을 얻지 못했다. 이들 지역구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을 지지한 40%가 넘는 국민의 지지도는 쓰레기통에 버려진 것이다.
그러나 독일식 권역별 비례대표를 적용하게 되면 일단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수를 배정하고, 각 당이 지역구 의원을 먼저 배분받은 뒤 남은 득표만큼 비례대표를 적용하기 때문에 사표가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공중으로 사라지는 민의(民意)가 줄어드는 것이다.
반면 새누리당은 1표 이상을 더 확보했다는 이유로 실제 지지율보다 많은 일종의 '공짜 의석'을 더 많이 얻어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새누리당도 독일식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에 따른 지역주의 완화 및 사표 완화 효과를 잘 알고 있다.
이장우 대변인은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으로 지역주의가 완화될 수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수도권과 충청, 호남 지역에서 득표율이 조금 변할 뿐 크게 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의미를 축소했다.
최근 여론조사 업체 미럴미터가 비례대표 확대에 대한 여론조사를 진행한 결과 확대 찬성이 57%로 집계된 것에 대해서는 "정치개혁특별위원회 논의 과정에서 검토될 것"이라며 확답을 피했다.
정문헌 의원도 개인적인 의견을 전제로 "권역별 비례대표가 좋은 안(案)임은 틀림없다"면서도 "내각제와 궁합이 맞는 제도"라고 주장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의 긍정적인 효과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이 극렬하게 반대하고 있는 것은 선거제도 개편으로 지역주의 구도가 깨질 경우 안정적으로 과반의석을 확보해 정국을 주도하는 현재의 지위가 불안해질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있다.
오피니언라이브 윤희웅 여론분석센터장은 "현재 영남지역에서 야당 지지율은 40% 안팎의 높은 수준이지만 호남지역에서 여당 지지율은 20%에 미치지 못해 지역주의 구도가 깨질 경우 여당이 불리하다는 계산"이라며 "안정적으로 과반의석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표 대결 등으로 밀어붙이는 기존의 전략을 사용할 수 없다는 점 등도 새누리당이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꺼리는 이유"라고 분석했다.
윤 센터장은 "사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례대표는 다수대표제에 비해서 진일보한 선거제도임에 틀림없다"면서도 "비례대표제 후보 선정 과정에서 밀실, 계파공천이 이뤄진 측면이 있고, 지역구 의원들에 비해 비례대표 의원들이 상대적으로 느슨한 감시와 통제를 받았다는 점 등은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 과정에서 고려돼야 할 점"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