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 백선생' 출연 중인 요리 연구가 백종원. (CJ E&M 제공)
셰프테이너 전성시대에 셰프가 아닌 이가 있다. 백종원 요리 연구가 겸 '더본코리아' 대표이사가 그 주인공. 어릴 땐 '사장'이라는 말이 듣기 좋았다는 백종원에게 요즘 이보다 더 친숙한 명칭이 생겼다. 바로 '백주부'와 '백선생'이다.
정식 셰프는 아니지만 백종원은 엄연히 '쿡방' 열풍의 한가운데 서있다. 남녀노소 따라하기 쉬운 레시피는 그를 독보적인 존재로 만들었다. 여기에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와 진심어린 소통이 감칠맛을 더했다.
백종원은 8일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축현리 '아트월드'에서 열린 tvN '집밥 백선생' 기자간담회에 참석했다. 그가 등장해 자리에 앉자마자 끊임없이 질문이 쏟아졌다. 마칠 시간이 다 되어가는데도 질문이 넘쳐 30분이 더 연장됐다. 백종원의 인기를 온 몸으로 체감한 순간이었다.
지친 기색 없이, 백종원은 취재진의 질문을 받아 능숙하게 답을 요리했다. 솔직하되, 경솔하지 않은 답변들이었다. 재치 있는 대답에 한바탕 웃음이 쏟아진 것도 여러 번이었다. '쿡방'과 사업 그리고 인기. 백종원이 직접 밝힌 그의 소신을 일문일답으로 정리해봤다.
▶ 방송 활동, 솔직히 어떤가?- 거짓말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방송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처음에는 반응을 보면서 즐거웠는데 요즘은 어딜가도 너무 알아보니까 음식 먹으러 못 간다. 제가 원래 만드는 것도, 먹는 것도 좋아한다. 제가 가면 좋아해주시는 식당 주인 분들도 있지만, '쟤가 여기 왜 왔지'라는 눈빛으로 보시는 분들도 있다. 손님들이 날 쳐다보고 있으니 되게 맛있는 표정으로 먹어야 하기도 한다. 저번에는 사인이 민망해서 요청하는 분들과 사진을 찍다가 제주도 가는 비행기를 놓칠 뻔한 적도 있다. 원래 욕하면서 혼자 궁시렁 대는 게 습관인데 표정도 관리하고, 회사 전화 받을 때도 심한 소리 하려면 화장실에 들어가서 한다.
▶ '쿡방'(Cook과 방송의 합성어) 순기능과 역기능은 뭘까.- 요리사 분들이 예능프로그램 나오는 것은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 분들이 많이 활동하셔야 음식이라도 한 번 떠올리고, 요리사의 꿈도 키우고, 요리를 공부하는 분들도 요리사에게도 여러 길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호응이 많으면 논란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요리사 분들이 특별히 잘못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관심이 있어서 대답한 것도 '디스'처럼 돼 버리기도 한다. 저는 회사 사장이니까 방송 영향을 덜 받는데, 요리사 분들은 정말 열심히 하시고 힘드시다. 방송 끝나고 늦게라도 가게 들어가서 점검하고, 메뉴 체크하고, 쉬는 시간에도 메뉴 체크한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만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 본인의 인기는 어디서 왔다고 생각하나.
- 제가 볼 때는 운이 좋았다. 이미 앞서서 요리 프로그램을 하셨던 분들이 많았다. 저도 그런 것을 보며 자랐고. 요즘은 음식에만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이기는 하다. 제가 그분들에게 죄송한 것은 쉽게 (요리를) 하면서 잘하는 사람처럼 포장돼 좋은 이미지가 있다는 점이다.
▶ 그런 방식에 대한 황교익 푸드 칼럼니스트의 비판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뵌 적은 없지만 그 분의 글을 보면 식자재와 관련해 깊이 있게 아신다고 생각한다. 비평가로서 당연히 쓰실 말을 쓰신 거고, '디스'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저는 음식의 맛은 치우치면 안되고, 원재료 맛을 살리고, 제철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읽었다. 그 반대편에 있는 것이 저다. 그래서 제가 대명사처럼 등장한 것 같은데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나쁘지도 않았다.
▶ 쉬운 요리만 하는 이유가 특별히 있나?- 솔직히 '집밥'이라고 하는 것이 죄송하다. '집밥'을 잘하시는 주부님들이 정말 많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은 음식에 대해 문외한인 분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이다. '집밥'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도 메뉴를 대부분 쉽게 만들려고 했던 거다. 저도 사실 제가 추구하고 있는 음식의 덕을 본다. 시간이 없고 그러니까. 제가 음식을 다 할 줄 아는데 일부러 그러는 것으로 보시는 분들도 있다. 물론 같은 음식을 할 때, 다른 재료도 쓸 줄 안다. 그렇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시작 단계를 열어주고 싶어서 이렇게 하는 것이다.
▶ 유쾌한 소통도 인기에 한 몫 하는 것 같다.
- 제가 1년 정도 게임 폐인으로 살 때가 있었다. 게임을 하다 저 때문에 팀이 위기에 빠지게 되면 댓글로 욕을 많이 먹는다. 그래서 '마이 리틀 텔레비전' 댓글을 잘 볼 수 있다. 타자로 안 치고, 말로만 해도 되는 게 신기하다. 가끔 읽기 어려운 욕이 있을 때는 짜증도 나는데 게임 때의 욕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서 남들이 볼 때 멘탈이 강해 보이나 보다. 평소에도 입이 깔끔한 편은 아니다. 이 말투에 욕을 더 많이 한다. 주방에서 일하다 보니 그런 것도 있다.
▶ 요리연구가 입장에서 방송에 출연하는 목적은 뭔가?- 제 2, 제 3의 백종원이 나왔으면 좋겠다. 저처럼 셰프 족보도 없는 사람이 음식에 대해 떠드는 것은 정통성이 없어 보인다. 셰프 분들이 그렇게 쉬운 레시피도 가르쳐 주시면 좋을 것 같다. 아저씨들이 마트에서 장을 보고, 남편이 요리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런 게 전파되고 있다고 느낀다. 예능 프로그램은 음식 관련된 것이 아니면 나가고 싶지 않다. 큰 욕심은 없고, 음식에 관심을 가져주시게 되면 그 때까지만 하려고 한다.
▶ 사업가 입장에서는?- 저도 요즘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다. 제가 운영하는 프랜차이즈에 도움이 되니까 방송에 출연하는 게 아니냐는 시선이 있는데 그럴 땐 벌거벗겨진 느낌이 든다. '그만할까'라는 생각도 해봤다. 실질적으로 시청자들이 호감을 갖고 있으니까, 매장 매출이 영향을 받는 것은 사실이다. 제 진심은, 외식 산업이 발전했으면 하는 거다. 외식 산업이 발전한 나라일수록 음식에 대한 국민의 이해도가 높다. 일본과 중국이 그렇다. 물론 이해도가 높을 수록 외식 산업이 발전하는 것도 맞다. 직접 요리를 해보면 비용이나 노력 면에서 외식 산업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