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백화점 고위 임원이 시내 면세점 선정과 관련해 자신들의 점수를 가장 낮게 책정한 보고서를 낸 증권사 애널리스트에게 직접 전화를 걸고, 보고서를 철회하라고 요구해 논란이다. 업계에서는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라며 현대백화점이 시내면세점 이슈에 얼마나 민감한 지 그대로 드러냈다는 평가다.
25일 현대백화점과 토러스투자증권에 따르면 현대백화점 IR담당 부사장은 전날 오후 토러스투자증권의 유통 담당 김모 연구원에게 전화를 걸어 최근 작성한 면세점 입찰 후보자에 대한 평가 보고서에 대해 항의했다.
김 연구원이 작성한 이 보고서는 7개 대기업 면세 후보자를 분석해 점수 순서대로 줄을 세운 것이 특징이다. 관세청이 내놓은 평가기준인 특허보세 구역 관리 역량, 운영인의 경영능력, 주변 환경, 중소기업제품 판매 실적, 이익의 사회 환원 노력 등의 항목을 가지고 나름대로 점수를 산출한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현대백화점의 면세점법인 현대DF를 꼴찌로 세웠다는 점이다. 현대DF는 운영 관광인프라 등 주변 환경요소, 경제사회 발전을 위한 공헌도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SK네트웍스의 반밖에 안되는 점수를 얻었다.
현대DF이 내세운 무역점은 쇼핑과 관광 인프라가 부족하고 이미 인근에 롯데면세점 무역센터점과 롯데월드면세점이 위치해 입지면에서 불리하다는 것이다. 또 현대DF가 유통ㆍ관광 중소기업들과 합작법인이긴 하지만 중소기업의 지분이 1~2%에 그친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나마 기업이익의 사회 환원 및 상생협력 노력 정도에서 1위와 같은 점수를 얻었는데, 최근 면세점 영업이익의 무려 20%를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힌 것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현대백화점은 기본적으로 점수 산출의 근거가 없다는 입장이다. 부사장이 애널리스트에게 직접 전화를 건 것에 대해 고위 관계자는 "7월 중순에 결과가 나오는 상황인데 이런 식으로 줄 세우기 하는 보고서는 본 적이 없다"면서 "법리검토 결과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해당 보고서가 현대DF의 업무를 방해하는 수준이고 따라서 근거를 명확히 하라는 차원에서 항의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지선 회장이 면세점사업을 현대백화점의 신성장동력으로 삼고 팔을 걷어 붙이고 있다는 것은 알려진 일이지만, 경영진이 애널리스트와 직접 접촉해 보고서 내용에 대해 왈가왈부 하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게 업계의 평가다.
한 증권업 관계자는 "보통 주주들로부터 항의 전화라든지를 받는 경우는 많이 있지만, 부사장 급이 나선 경우는 들어보지 못했다"면서 "현대백화점 입장에서 그만큼 민감한 이슈라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현대백화점 측은 관련 논란이 애널리스트에 대한 외압으로 이슈화되자 '해당 부사장이 맡은 업무에서 당연히 제기할 수 있는 문제제기'라며 개인적인 해프닝으로 마무리하는 분위기다. "갑질 논란으로 비화될수록 우리 측이 손해"라는 것이다.
토러스투자증권 측은 "자체적인 검토 결과 보고서 내용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지 않는다"면서 "현대백화점 측으로부터 공식적인 요구가 없는 만큼 특별히 취할 조치는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