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은 알리고 싸움은 말려라", "병은 자랑하고 돈은 감춰라"는 옛말이 있다. 닥치고 병은 알리는 게 좋다는 말이다.
전례없는 메르스 전염 국가위기속에서 이 격언의 가치를 다시 한번 돌아본다. 대부분 질병은 자랑한다고 할 정도로 드러내야 한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다. 질병을 알려야 우선적 치료가 수반되는 건 당연하다.
평택 성모병원에 이어 '2차파동'의 진원지가 된 서울삼성병원의 메르스 감염사태도 '쉬쉬'하는 비밀주의가 가장 큰 화근으로 지적되고 있다. 병원은 감염자가 와도 몰랐고 감염이 확산됐지만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고 '뭉개기'에 급급했다.
삼성병원의 메르스 감염은 14번 환자(35)가 5월 27일 응급실에 오면서 부터다. 14번 환자는 30일 확정 판정을 받았다. 문제의 주택조합 총회에 참석했던 35번 환자(삼성병원 의사)는 14번 환자가 있는 응급실에 들렀다가 감염 됐다.
35번 환자는 6월 1일 확정판정을 받았다(본인은 6월 2일 통보받았다고 주장). 1일이든 2일이든 의사인 35번 환자가 14번 환자로 인해 메르스 감염이 됐기 때문에 삼성병원은 즉각 '비상조치'를 내렸어야 했다.
하지만 삼성병원이 어떤 조치를 취했는 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특히 삼성 서울병원이 평택 성모병원에서 슈퍼감염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왜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는 지 미스터리다.
삼성병원이 '선제적 조치'를 취하지 않은 사이 메르스 감염은 속수무책으로 번졌다. 닷새 뒤인 6월 6일에는 57번 환자(서울 중구청 공무원, 57)가 확진 판정을 받았다. 57번 환자는 입원·가료중인 어머니 문병을 다녀 온 뒤였다.
삼성병원은 정부가 14번 환자의 정확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해 일어난 '사달'이라고 억울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차적 책임은 정부가 동선 정보를 제대로 주지 않은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삼성병원 설명을 십분 이해해도 메르스 전염이 병원내에서 삽시간에 번지는 과정에서 무사안일한 일처리는 비판 받아야 한다. 아마도 '일류병원'으로 메르스 전염을 자체 진압할 수 있다는 '오만'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된다.
정부가 메르스의 첫 확진환자가 나오거나 거쳐 간 병원 24곳에 이어 5곳을 추가로 공개한 8일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에서 한 병원 관계자가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
삼성병원이 '행정력'을 우습게 여기는 관행 또한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서울시는 35번 환자의 주택총회와 심포지엄 참석을 계기로 관련자 동선정보를 제공해줄 것을 삼성병원에 요구했다. 박원순 시장이 직접 나섰다.
박 시장은 8일 삼성 서울병원을 직접 방문하겠다고 통보했다. 서울시가 삼성서울병원을 우려하는 것은 병원 감염이 지역사회로 전염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고 최고의 처방은 투명성이라고 압박한 직후였다.
서울시장 방문에 부담을 느꼈는지 송재훈 삼성서울병원장이 8일 오전 서울시로 박 시장을 찾와 왔다. 비공개 면담에서 박 시장은 조속한 정보공개를 다시 한번 촉구했다.
하지만 송 원장은 "이미 정보자료를 질병관리본부에 보고했다"고 말했지만 배석했던 질병본부 관계자는 "자세한 내용이 없다"고 부인했다. 이에 박시장은 "삼성이 알아서 하겠지만 할 수 없는 일을 도와주기 위해 정보공개를 해달라는 것"이라고 질책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