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국무총리 직무대행과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 등이 7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메르스 확진 환자 발생·방문한 병원 24곳 명단을 공개하고 메르스 대응 조치 등을 발표한 뒤 고개를 숙이고 있다. 윤창원기자
메르스 관련 '의료기관 명단 비공개' 방침을 고수하던 보건당국이 첫 환자 발생 18일 만에 '뒷북 공개'하고 나선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 때문으로 7일 확인됐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지시한 이후로도 나흘이 지난 시점이어서, 정부의 총체적 부실 및 늑장 대응이 연일 도마에 오르고 있다.
국무총리 직무대행인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이날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갖고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전문가들의 입을 통해 공개하도록 관리하겠다"며 이같은 결정 과정을 밝혔다.
정부는 이날 메르스 확산 차단을 위해 확진 환자가 나온 병원 6곳과 경유한 18곳까지 모두 24곳의 명단을 공개했다. 아울러 앞으로 환자가 발생하거나 경유한 병원도 모두 공개하기로 했다.
이같은 입장 변화에 대해 최 부총리는 "사실 지난 3일 대통령 주재 회의에서 '이 부분은 국민들한테 있는 사실을 그대로 알려서 그에 따르는 조치를 우리가 철저하게 취하는 게 맞겠다'는 지시가 있었다"고 털어놨다.
최 부총리의 해명대로라면, 박 대통령의 이런 지시는 첫 환자 발생 2주만에 나온 것이다. 지시가 있던 3일엔 메르스 관련 첫 사망자와 3차 감염자가 속출하고 격리자도 1300명을 훌쩍 넘어 폭증하던 시점이다.
대통령의 지시 시점도 시점이지만, 정부가 지시 나흘 만에 공개한 이유에도 의문이 쏠린다. 최 부총리는 "관련 준비를 갖추고 명단을 공개해야 했다"며 "2~3일 동안의 준비 작업을 거쳐서 이날 비로소 명단을 공개하게 됐다"고 해명했다.
정부는 지금껏 국민들의 '스스로 지킬 권리'를 위해 의료기관을 공개하라는 시민사회의 압력에도 "사회 혼란이 우려된다"며 비공개 원칙을 고수해왔다.
36명의 환자가 감염돼 3명이 숨진 '1차 진원지' 경기도 평택성모병원의 이름도 국내 발병 17일만인 지난 5일에야 공개했다.
반면 지금까지 17명의 감염자와 1명의 사망자를 낳은 삼성서울병원은 철저히 비공개를 유지해왔다. 국내 최초 환자(68)가 지난달 20일 첫 확진 판정을 받은 곳도 삼성서울병원이다.
보건복지부 중앙메르스대책본부 권준욱 기획총괄반장은 전날 브리핑에서도 "D병원은 유행을 다시 파생시켜서 다른 의료기관에 전파될 수 있는 지점"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첫 번째 유행곡선에 이어 두 번째 유행곡선이 나타난 곳은 당연히 공개대상으로 판단한다"며, 제한적으로 삼성서울병원의 이름을 공개할 방침임을 시사한 바 있다.
그랬던 정부가 하룻만에 갑자기 확진환자 발생 병원은 물론, 경유한 병원까지 모두 공개하게 된 것도 석연치만은 않은 대목이다.
최 부총리는 '뒷북 공개' 지적에 대해서는 "초기 단계엔 병원내 감염을 철저히 하면 수습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며 정부 오판을 거듭 시인했다.
다만 "병원을 거쳐간 수많은 사람들에 대해 관리할 준비태세를 충분히 갖춰야 혼란이 줄어들 수 있다"며 "정보공개에 따른 부작용과 관련해 많은 고민을 했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병원 공개를 가장 극렬하게 반대해온 보건복지부 문형표 장관도 이날 "집중적인 환자 발생의 경로가 보이기 때문에 대책을 세우기 위해 공개했다"고 해명했다.
이런 해명을 곧이곧대로 믿거나, 제대로 대처했다고 평가하는 국민이 얼마나 있을지는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