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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훈을 '악마'로 내몰았던 검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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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도 지금도 책임지지 않는 검찰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불리는 유서대필 사건의 강기훈씨가 14일 대법원에서 사건발생 24년만에 무죄가 확정됐다. 대법원이 자살방조 혐의로 기소된 강씨의 재심사건에서 검찰의 상고를 기각하고 무죄를 선고한 원심한 확정한 가운데 새정치민주연합 임수경 의원과 강기훈의 쾌유와 명예회복을 위한 시민모임 등이 대법원 판결 직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 으로 불리던 '유서대필 사건'의 주인공 강기훈씨의 무죄가 사건 발생 24년만에 확정됐다. 대법원이 자살방조 혐의로 기소된 강씨의 재심사건에서 검찰의 상고를 기각하고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한 것이다.

강기훈씨는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동료였던 김기설씨가 1991년 5월 노태우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분신했을 때 유서를 대신 써주고 자살을 방조한 혐의로 기소돼 1992년 징역 3년 형이 확정돼 복역했다.

문제는 검찰이다. 1991년은 명지대생 강경대 군이 시위도중 진압경찰의 쇠파이프에 맞아 사망한 뒤 잇따른 분신과 투신 사건의 와중에 검찰은 유서대필 사건을 들고 나왔다.

당시 전재기 서울지검장은 강기훈을 "교활한 인물"이라며 "이 사회에는 천사와 악마가 공존하고 있다, 검찰은 국가 최고 권력 집행기관의 자격으로 이런 '악마'를 응징하는 데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경대군 사망사건으로 노태우 정권이 위기에 처하자 공안정국 조성을 위해 검찰이 '권력의 시녀'를 자처했던 것이다.

 

1991년 사건이 발생했을 때 수사에 관여한 검사는 9명이다. 강신욱 당시 서울지검 강력부장이 수사를 지휘했고, 주임검사는 신상규 전 광주고검장이다. 안종택, 박경순, 윤석만, 임철, 송명석, 남기춘, 곽상도 검사가 수사팀에 소속돼 있었다. 서울지검장은 전재기, 검찰총장은 정구영, 법무부 장관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다.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사진=윤성호 기자/자료사진)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김기춘씨는 박근혜 정부 청와대 비서실장으로서 '기춘 대원군'으로 불리며 권세를 누렸고, 당시 정구영 검찰총장은 지난 대선에서 다른 법조인 244명과 함께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를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한 바 있다. 강신욱 당시 부장검사는 이후 대법관까지 지낸 뒤 2007년 박근혜 대선캠프에서 법률지원특보단장을 맡기도 했다.

주임검사였던 신상규 변호사는 검사장으로 승진한 뒤 고검장을 끝으로 변호사 개업을 했으나 지난해부터 대검찰청 사건평정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무죄 판결을 받은 중요 사건에서 검사의 과오를 평가하는 역할을 맡았다.

곽상도 전 청와대 민정수석 (자료사진)

 

당시 수사검사였던 곽상도 변호사는 박근혜 정부 인수위원회를 거쳐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냈고 남기춘 변호사는 2012년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회 클린검증제도소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했으며 윤석만 변호사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외곽조직인 대전희망포럼 공동대표를 지냈고 2012년 총선에서 대전 지역 새누리당 예비후보로 출마하기도 했다. 임철 검사는 2008년 총선 당시 대구 지역에서 한나라당에 공천을 신청했다.

공안몰이에 앞장섰던 검사들이 승승장구한 것이다.

문제는 검찰이 23년만에 재심사건에서 무죄가 선고됐는데도 상고를 했다는 점이다. 검찰이 상고를 결정하는 과정은 무죄사건을 평정하는 대검찰청 사건평정위원회 위원장을 당시 주임검사였던 신상규 변호사가 맡고 있었다는 점이다.

검찰이 밝힌 유서대필 사건에 대한 상고이유는 "법원에서 김기설씨의 필적으로 인정한 '전대협 노트'를 인정할 수 없다"는 간단한 이유였다. 지금도 강기훈씨의 유서대필을 확신한다는 얘기다.

당시 검찰의 한 고위관계자는 "판결이 확정되고 나서 20년이 지난 뒤 제출된 전대협 노트의 글씨를 김기설씨 글씨라고 인정한 법원의 판단은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에서 상고를 결정했다"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20년 만에 전대협노트가 밑도 끝도 없이 제출됐는데 이것이 김기설씨 것이라는 김 씨의 여자 친구 말을 믿기 어렵다"는 게 상고의 이유라고 덧붙였다.

1991년 당시 고 김기설 씨가 남긴 유서와 강기훈 씨의 자술서.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에 대한 재심 권고 결정의 단초가 된 '전대협 노트'와 '낙서장'은 김씨의 동창 한모 씨가 보관하고 있던 것으로 진실화해위의 재심권고 근거가 됐고 법원이 감정을 통해 김기설씨의 필적임을 인정했지만 검찰은 이 자료들이 김기설씨 것이라는 법원의 판단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자료들은 진실화해위가 새로운 증거로 채택했고 그 이후 국가기록원에 보관하고 있다.)

상고를 결정한 서울고검 조희진 차장(검사장)은 "과거 대법원 판결에서도 유죄 증거로 채택됐던 국과수 필적 감정 결과의 신빙성을 재심 재판부가 배척하면서 무죄를 선고했기 때문에 다시 한 번 판단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고 검찰의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이는 표면적인 이유였고 실제이유는 따로 있다는 것이 검찰 안팎의 평가다.

첫 번째는 강기훈씨 유서대필 사건 당시 수사 관계자들이 공교롭게도 박근혜 대통령 주변에서 현직으로 활동하거나 활동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이 상고를 포기하면 당시의 수사 잘못을 인정하는 셈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상고를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평가다.

또 강기훈씨가 간암으로 투병 중인데 항소심이 있기 얼마 전 암이 재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검찰이 의도적으로 시간을 끌기 위해 상고를 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상고심이 1년 3개월만에 강기훈씨가 생존시에 이뤄져 다행이지 상고심이 늦어졌다면 사후에 판결이 났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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