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속사정이 궁금하다. 뉴스의 행간을 속 시원히 짚어 줍니다. [Why 뉴스]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통해 들을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김현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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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속담에 우수 경칩에는 얼었던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말이 있다. 우수는 눈이 비로 바뀌고 얼었던 땅이 녹고 따뜻한 봄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절기인 것이다.
추운 겨울 날씨는 봄으로 향하고 있는데 검찰은 여전히 얼어붙어 있다.
검찰은 영화 변호인의 소재가 되었던 '부림사건'과 '강기훈씨 유서대필 사건'에 대한 법원의 무죄 판결에 불복해 상고를 했다. 사과를 하고 상고를 포기할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컸지만 검찰은 기계적으로 상고를 선택한 것이다.
그래서 오늘 Why뉴스)에서는 "검찰은 왜 '유서대필 사건'과 '부림 사건'에 대해 사과하는 대신 상고를 선택했을까?"라는 주제로 그 속사정을 알아보고자 한다.
▶검찰이 상고를 한 이유는 뭐냐?
영화 '변호인' 보도스틸
= 검찰이 상고를 한 이유는 일단 표면적인 이유가 있고 속사정이 있다.
먼저 표면적인 이유는 법원의 재심 판결에 불복하는 것이다.
검찰은 부림사건에 대해서는 "부림사건 피고인에게 적용된 국가보안법 위반과 반공법 위반에 대해 대법원의 판단을 받아보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검찰 관계자는 "다른 부림사건 피고인들이 재심을 청구해 2009년 대법원이 집시법과 계엄법에 대해 면소와 무죄로 각각 판단했으나, 국보법과 반공법에 대해서는 재심사유가 안 된다고 판결했다"면서 "그러나 이번 재심 판결에서는 국보법과 반공법에 대해서도 모두 무죄로 판결한 만큼 대법원에서 이에 대한 최종판단을 받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국보법 위반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있고 특히 검찰 수사단계에서 자백의 임의성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면소와 계엄법 위반 무죄 선고에 대해서는 상고를 포기했다.
▶유서대필 사건에 대한 상고이유는?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의 강기훈 씨. 송은석 기자/자료사진
= 유서대필 사건에 대해서도 검찰이 밝히는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검찰은 "법원에서 김기설씨의 필적으로 인정한 '전대협 노트'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증거관계에서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다시 받기 위해서 라는 것이다.
검찰의 한 고위관계자는 "판결이 확정되고 나서 20년이 지난 뒤 제출된 전대협 노트의 글씨를 김기설씨 글씨라고 인정한 법원의 판단은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에서 상고를 결정했다"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20년 만에 전대협노트가 밑도 끝도 없이 제출됐는데 이것이 김기설씨 것이라는 김 씨의 여자 친구 말을 믿기 어렵다"는 게 상고의 이유라고 덧붙였다.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에 대한 재심 권고 결정의 단초가 된 '전대협 노트'와 '낙서장'은 김씨의 동창 한 모 씨가 보관하고 있던 것으로 진실화해위의 재심권고 근거가 됐고 법원이 감정을 통해 김기설씨의 필적임을 인정했지만 검찰은 이 자료들이 김기설씨 것이라는 법원의 판단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자료들은 진실화해위가 새로운 증거로 채택했고 그 이후 국가기록원에 보관하고 있다.)
상고를 결정한 서울고검 조희진 차장(검사장)은 "과거 대법원 판결에서도 유죄 증거로 채택됐던 국과수 필적 감정 결과의 신빙성을 재심 재판부가 배척하면서 무죄를 선고했기 때문에 다시 한 번 판단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고 검찰의 입장을 밝혔다.
▶표면적인 이유는 그렇고 실제 이유는 따로 있다는 거냐?= 그렇다. 대략 세 가지 이유로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는 강기훈씨 유서대필 사건이나 부림사건이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강기훈씨 유서대필 사건 당시 수사 관계자들이 공교롭게도 박근혜 대통령 주변에 몰려 있다.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 윤창원 기자/자료사진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김기춘씨는 지금 대통령 비서실장으로서 '기춘 대원군'으로 불리며 권세를 누리고 있다. 당시 정구영 검찰총장은 지난 대선에서 다른 법조인 244명과 함께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를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한 바 있다. 부장검사였던 강신욱 전 대법관은 2007년 박근혜 캠프 법률지원 특보단장을 지냈다.
주임검사였던 신상규 변호사는 검사장으로 승진한 뒤 고검장을 끝으로 변호사 개업을 했으나 지난해부터 대검찰청 사건평정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무죄 판결을 받은 중요 사건에서 검사의 과오를 평가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당시 수사검사였던 곽상도 변호사는 박근혜 정부 인수위원회를 거쳐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냈고 남기춘 변호사는 2012년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회 클린검증제도소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했으며 윤석만 변호사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외곽조직인 대전희망포럼 공동대표를 지냈다.
당시 수사에 관여했던 검찰관계자 대부분이 박근혜 정부에서 잘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황에서 검찰이 상고를 포기하면 당시의 수사 잘못을 인정하는 셈이 되는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이런 이유 때문에 "검찰이 상고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그런 평가가 나오고 있다.
두 번째는 이른바 시간끌기요 폭탄돌리기라는 분석이다.
한 중견법조인은 "검찰이 상고한 것은 시간 끌기요 폭탄돌리기에 다름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무슨 얘기냐 하면 강기훈씨가 간암으로 투병 중인데 얼마 전 암이 재발한 것으로 알려져 상고심이 끝날 때까지 생존해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우려가 나오고 있다. 그러니까 검찰로서는 상고를 해서 시간을 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강기훈의 쾌유와 명예회복을 위한 시민모임'의 김선택 집행위원장은 "상고심은 빨라도 2년 정도 걸릴 것이므로 검찰 앞에 있는 사람들은 2년을 악착같이 버텨야 한다"며 "검찰이 상고를 하는 건 시간을 끌어 면피하려고 하는 것밖에 안 된다"고 비판했다.
시간끌기의 원인 중 하나는 무죄가 확정될 경우 23년간의 고통에 대해 국가를 상대로 배상을 청구할 것이다. 그런데 사건 당사자인 강기훈씨의 신변에 유고가 생긴다면 배상청구도 의미가 사라질 수 있다.
또 다른 시간끌기의 이유 중 하나는 이미 23년 전의 사건인데 자신이 근무할 때 확정판결이 날 경우 잘나가는 선배검사들이 한 일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하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의 대표적인 폭탄돌리기는 참여연대에서 고발했던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편법 증여 사건'인데 5년 이상을 끌었다. 민감한 사안을 기피하는 풍조가 있는 것이다.
세 번째는 검찰내부는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법무부나 검찰 고위관계자들은 아직도 강기훈 유서 대필사건이나 부림사건이 유죄라고 생각하고 있다.
지난 13일 무죄선고가 났을 당시 검찰내부의 의견을 들어보니 "당연히 상고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했고 수사에 관여하거나 같은 부에 근무했던 전직 검찰관계자들도 "당시로서는 유죄가 아닌 것이 이상했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검찰은 재심사건에서는 기계적으로 항소나 상고를 거듭하고 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공안부는 위헌 결정이 난 사건을 제외하고는 증거부족 등으로 재심개시 결정이 내려지면 무조건 항고, 재항고를 하고 판결에 대해서는 항소, 상고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의 한 중견간부는 "검찰에서는 기본적으로 과거사 사건에 대한 재심판결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그런 입장을 보이고 있다"면서 "법적 안정성이 무너져서는 안 된다는 취지"라고 설명을 했다.
검찰이 어느 정도 경직돼 있는지는 지난해 서울지검 임은정 검사의 무죄구형 사건에서 잘 드러났다. 임 검사가 무죄를 구형한 사건은 1962년 5.16 군사 쿠데타 세력에 의해 조작된 '통일사회당 사건' 재심사건으로 당사자인 윤길중(2001년 사망) 씨는 사망했고 다른 사건 관련자 5명에 대해서는 무죄가 확정됐다.
그런데 윤길중씨의 재심을 청구한 아들이 소송 진행 중 사망하면서 손녀가 다시 재심을 청구해 판결이 늦어진 것이었는데 이 사건에 대해서도 무죄를 구형하지 못하게 했다가 임 검사가 불복해서 문을 잠그고 무죄를 구형했다가 정직의 중징계를 받았고 지금은 행정소송이 진행 중이다.
이미 관련자들에 대해 모두 무죄가 확정됐는데도 이에 대해 무죄를 구형하지 못하게 할 정도로 경직된 구조인 것이다. 유서대필 사건 수사를 할 때는 거의 매일 브리핑을 하면서 여론재판을 주도하더니 재심개시 결정이 나고 무죄가 선고되자 대법원의 최종판단을 받아봐야 한다며 시간끌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검찰의 상고에 대해 비판여론이 상당한데? = 이런 이유들 때문인지 검찰의 상고에 대해 비판여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20일 <검찰은 '강기훈="" 재심무죄'="" 대법원="" 상고="" 당장="" 취하해야="">라는 제목의 성명에서 "23년간 무고한 고통을 준 것에 사과를 하기는커녕 고통을 연장시켰다"면서 "재심 무죄사건에 대한 무분별한 상고는 검찰권 남용에 해당된다"고 비판했다.
참여연대는 "검찰은 이번 사건을 상고하기 전에도 이미 2013년 11월 재심을 통해 49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은 '차 인민혁명당 사건' 대법원에 상고했고, '울릉도 간첩단 사건' 역시 2014년 2월, 40년 만에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으나 검찰은 상고했으며, '조총련 간첩단 사건' 역시 2010년 6월 재심에서 무죄선고가 났지만 검찰은 이에 불복해 상고해 결국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 확정판결이 났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트위터를 비롯한 SNS에서도 검찰의 상고를 비난하는 글들이 이어지고 있다.
트위터 아이디 @Kd****ng은 "검찰, 유서대필 사건을 대법에 상고. 강기훈씨는 간암 환자인데 판결 끝날 때까지 건강 유지할 수 있을지. 친구의 죽음을 혁명에 이용했다는 누명에 평생 시달린 사람이다. 근데 이걸 상고를 해? 남은 생까지 싹 다 털려고?"라는 글을 올렸고 @bo****an318은 "쓰레기검찰, 부림사건 대법원에 상고, 강기훈, 유서대필사건도 상고, 반성을 모르는 집단들"이라고 했고 @m****j은 "강기훈 무죄! 진실은 승리했다! 검찰은 상고를 포기하라! "하라고 했다.
@so****sa는 "법원이 무죄 판결을 내린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을 대법원에 상고한 검찰이 '1,000만 관객' 영화 <변호인>의 모티브가 됐던 '부림사건'도 대법원에 상고했군요.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고 용서를 빌어도 부족한 대한민국 검찰.. 도대체 제정신입니까?"라고 했고 @si*****nbu는 "'유죄→ 유죄→ 유죄 확정→ 재심 청구→ 재심 개시→ 재심 개시에 대한 즉시항고(검찰)→ 재심 개시 결정→ 무죄' 그런데도 검찰이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을 대법원에 상고. 검사들이 미쳤다"라고 했다.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taekyungh)도 트위터에 "검찰이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결국 상고를 했군요. 뒤집을 가능성 전무한 이 사건 상고 포기하고 강기훈씨에 대신 사과했다면 역사의 아픔을 치유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을텐데 정말 안타깝습니다"라는 트윗을 했고 민주당 대표를 지낸 원혜영 의원(@wonhyeyoung)은 "22년 만에 무죄가 입증된 유서대필사건의 강기훈 씨는 간암 투병중입니다. 반성할 줄 모르는 검찰이 상고를 고려한다네요. 박근혜 대통령! 이 반인륜적 공안조작사건에 책임이 있는 김기춘 씨를 그대로 앉혀두고 비정상의 정상화를 말하는 것은 코미디입니다"라고 했다.
▶검찰내부에서도 비판여론이 일고 있다는데?= 그렇다. 검찰 내부에서도 강기훈씨 유서대필사건에 대한 상고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검찰의 검사장급 간부는 법률가 개인적인 의견임을 전제로 "상고에 반대한다"면서 "만약이라도 상고하는 중 강기훈씨가 사망하거나 하면 재심의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검사는 "오히려 사과를 해도 모자랄 텐데 다시 상고를 한다는 건 도대체 이해하기 어렵다는 어렵다"고 말했다.
검찰에 근무했던 사람이라고 소개한 한훈희씨 (@hanhoonhi)는 트위터에 "강기훈씨 유서대필 사건이 23년 만에 무죄가 선고되었는데 검찰이 상고하겠답니다김기춘 비서실장이 시켰는지 아니면 그 사람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그런 결정을 했는지 모르지만 참 뻔뻔합니다ᆞ검찰에 근무했던 사람으로서 너무 심한 자괴감이 듭니다"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ᆞ
▶당사자인 강기훈씨는 검찰의 상고에 대해 어떤 입장인가?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의 강기훈 씨. 송은석 기자/자료사진
= 강기훈씨와 20일 밤 늦게 통화했는데 "별로 관심도 없고 할 말도 없다"라고 말했다.
강기훈씨는 지난 13일 재심판결에서 무죄가 선고된 직후 통화에서는 "검찰은 아마 관례대로 상고를 할 것"이라면서 "검찰의 그 상고가 한 사람을 잡을 수 있다는 생각은 왜 안하는지 모르겠다"는 심경을 밝혔다.
강기훈씨의 변호인은 검찰의 상고에 대해 "유감"이라며 "대법원이 이른 시일 내에 판단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런 일이 없어야 하겠지만 만약에 상고심 진행되는 중에 강기훈씨 신변에 문제가
생긴다면 어떻게 되느냐?= 사실 대법원의 상고심이 그렇게 빨리 결정되는 경우가 별로 없다. 따라서 그럴 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강기훈씨가 확정판결이 나기 전 유고가 발생한다면 재판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 재심을 청구한 당사자가 소송도중 사망하거나 할 경우 공소기각이 된다. 따라서 강기훈씨를 대신해서 친권자가 재심 청구를 해야 하고 서울고등법원에서 재심을 한 뒤 다시 대법원에 상고하는 그런 절차를 밟아야 한다.
앞서 설명한 임은정 검사의 '무죄구형 사건'이 그 사례다. 국회부의장까지 지낸 윤길중 씨 '통일사회당 사건'의 경우 윤길중씨 아들이 재심을 청구했다가 소송이 진행 중 사망하자 공소기각이 됐고 다시 손녀가 재심을 청구해서 다른 사건관계인들보다 무죄 확정이 2년이 늦어졌다.
▶검찰이 사과를 하고 상고를 포기할 수는 없는 거냐?= 지난주 방송에서 언급을 했는데 검찰은 사과에 매우 인색하다. 잘못을 저지를 때는 정말 신속하게 행동하지만 잘못을 바로잡을 때는 고려하는 것도 많고 생각도 많고 그렇다.
여전히 국민보다는 조직보호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군과 경찰 등이 과거사위원회를 만들어 지난 역사의 잘못을 바로잡으려 할 때도 검찰은 동참하지 않았다. 정의의 마지막 수호자라고 주장하면서도 인권보호 보다는 조직논리와 안정성을 앞세울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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