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사진.
부산의 한 중학교에서 사제 관계로 인연을 맺은 A군은 25살의 건장한 청년이 되어 은사인 박모(45.여)씨 앞에 나타났다.
잊지 않고 자신을 찾아온 제자가 반갑고 대견했던 박씨는 A군에게 저녁을 사주며 대학 생활을 응원했다.
웃으며 헤어진 A군이 다급한 목소리로 박씨에게 전화를 걸어온 건 그로부터 한 달 뒤.
"일본으로 졸업 여행을 가는데 엄마로부터 돈을 못 받았어요. 선생님이 먼저 보내주시면 다음주 월요일에 바로 보내드릴게요."
박씨는 아무런 의심 없이 A군에게 30만원을 송금했다. 그러나 그 전화가 A군과의 마지막 통화였다.
수년 전 일이지만 아직도 울먹이며 그 때를 떠올리던 박씨는 "차라리 3천만원을 가져갔으면 이렇게 비참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나와의 추억이 그것밖에 안 되는 것 같아 너무 속상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이후 자신의 휴대전화에 저장돼 있던 제자 300명의 전화번호 대부분을 삭제했다.
5월 스승의 날을 맞아 시·도교육청의 '스승 찾기' 서비스 사용자가 급증하고 있지만 정작 교사들은 제자들의 '관심'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일부 제자들이 옛 스승을 찾아가 돈을 빌리거나 영업 활동에 이용하는 등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14일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지난해 2월부터 지난달까지 교육청의 '스승찾기' 서비스 이용 건수는 모두 7천 820건.
특히 스승의 날이 포함된 지난해 5월 서비스 이용 건수는 2007건으로 전달 283건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그러나 퇴직 등의 이유로 연락이 되지 않는 교원 4천 301명을 제외한 3천 519명 중, 제자들의 스승 찾기에 거부의사를 밝힌 교사는 11.4%(404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사 10명 중 1명이 자신을 찾는 제자들에게 연락처를 주지 않았다는 것.
교사들은 "옛 선생님을 그리워해 연락을 하는 제자들보다는 자신들의 돈벌이 수단이나 쌓여있던 악감정을 푸는 데 스승찾기 서비스를 악용하는 사례가 많다"고 입을 모았다.
수도권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한 교사는 "졸업 후에도 연락이 없던 제자가 갑자기 전화가 와서 만나보니 펀드 가입을 권유했다"며 "이후에도 그 제자에게 관련 스팸 문자를 계속 받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교사는 스승찾기를 통해 연락이 된 제자에게 "당신의 행동을 잊지 않고 두고 보겠다"며 폭언과 협박을 듣기도 했다.
이처럼 피해 사례가 늘어나자 일부 교육청에서는 사실상 스승찾기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실정이다.
경기도의 경우, 2013년 기준 경기도 전현직 교원 10만 3020명 중 스승찾기 서비스에 자신의 정보를 등록하지 않은 교원은 80%가 넘는 8만 5900여명에 이른다.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선생님 찾기를 빙자해 돈을 빌리는 사람부터 막말과 폭언을 하는 제자까지 있다보니 정보공개에 동의하는 교원은 손에 꼽을 정도"라며 "스승의 날의 씁쓸한 단면"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