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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육성] "죽은 딸이 거리를 걷고 있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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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범 씨가 인터뷰 도중 담배를 피워물고 있다. (사진=권민철 기자)

 

파괴된 사나이. 세월호 유족 박종범(49) 씨를 인터뷰하고 든 생각이다.

큰 딸(예슬)을 세월호 참사로 잃은 뒤 그는 여전히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술 없이는 잠을 청할 수 없고, 담배 없이는 마음의 안정을 취하기 어렵다.

아이를 보내고 다시 시내버스 운전대를 잡았지만 딸 아이가 차창 밖에 어른거려 결국 사직했다.

그는 지금도 딸 아이의 마지막 모습을 증언해줄 사람을 찾고 있다.

혹시 오늘은 딸의 이름이 언급될까 인터넷과 SNS를 뒤진다.

딸이 그린 그림 한 점, 딸이 그적거린 낙서조각 한 개도 버리지 못했다.

그 것을 그는 '그리움'이라고 표현했다.

그의 남은 세 가족은 지금도 식당에 가면 예슬이의 밥그릇을 따로 챙겨놓는다고 한다.

아직도 딸의 부재를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없어진 가족을 느껴보기 위한 가족 나름의 방식이기도 하다.

▶ 잠은?

- 아직도 술은 안 먹으면 잠을 푹 못 잔다. 난 4시간 이상 못 잔다. 만약에 초저녁에 8시쯤에 잤다 그럼 새벽 2, 3시면 무조건 깬다. 그때부터는 뜬눈으로 새우는 거다 그러니까 일찍 자는 게 두려워. 오히려 그래서 2, 3시쯤에 자야지. 그나마 6시, 8시까지 잘 수가 있다.

▶ 직장은?

- 직장은 11월 15일부로 사직했다.

▶ 어떤 일?

- 저는 시내버스 운전을 했다. 경원여객에서 시내버스 운전을 했는데 근데 사고 나서 와서 아이 장례식을 치루고 복귀를 했다. 복귀를 하니까 회사에서 자체적으로 휴가를 줬다. 한 달 동안 더 쉬어라. 쉬었다가 출근을 해가지고 도저히 안 되겠더라. 일이 안 돼 휴직계를 냈다. 두 달 더 쉬었다. 두 달 쉬고 다시 나왔지 이제 다시 나갔는데도 여전히 힘들더라. 그래서 도저히 안되겠다. 나 더 쉬어야겠다. 휴직계를 냈는데 휴직계를 회사에서 '휴직계보다는 사직하는 게 어떻겠냐' 그래서 사직했다. 내가 왜 또 사직계를 쓸 수밖에 없었냐면 시내버스가 나 혼자만 타고 다니는 게 아니잖나. 승객들을 항상 태우고 다니는 일이다 보니까 위험에 많이 노출돼 있더라. 내 자신이.

▶ 어떤?

- 멍 때린다. 멍 때리고. 예를 든다면 시내버스 노선은 맨 날 다니는 길 아닌가. 내가 맨 날 다니는 길이잖나.

▶ 안산시내?

- 그렇다. 근데 신호대기 중에서 내가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을 모른다. 그런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운전기사가 그것도 시내버스 기사가 그게 말이 되나? 멍 때리고 가다보면 신호대기에서 내가 어디로 가야되지 착각현상이 일어난다. 그래서 한번은 노선을 잘못 간 적도 있다. 좌회전을 가야하는데 직진을 해버린 적이 있다. 승객이 '어, 이거 다른 길로 간다'고 그런 적도 한번 있었다. 그래서 안 되겠더라. 그러다 신호위반도 가끔씩 가다가 빨간불인지 파란불인지 그냥 지나간 적도 있었고. 이게 너무 위험에 노출 되가지고 아, 이러다가 다른 사람도 피해를 볼 수 있겠다. 그래서 나는 휴직계를 냈다. 더 쉬려고 근데 그게 받아지지 않으니까.

▶ 멍 때린다는 게?

- 딴 생각을 하잖나.

▶ 어떤?

- 집중이 안 되는 거다. 운전에만 집중을.

▶ 어떤 생각?

- 뭐 아이들 생각이다. 그 애 생각 사건에 대한 생각 이런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되는 거다. 그걸 떨쳐버릴 수 없으니까. 왜 이 녀석이 나하고 통화가 안됐지?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되는 거다. 계속…

그리고 출퇴근 시간 되면 학생들이 또 타잖나? 학생들이 타면 100% 생각이 난다. 아이 생각이. 어! 우리아이도 지금 학교 끝나고 집에 들어갈 시간인데… 어떤 날은 착각이 일어나는 게 어떤 게 있었냐면, 우리 아이 분명히 우리 아이야 우리 아이가 서 있는 거야. 밖에. 그래서 이상하다. 어 제가 왜 저기 있지? 그런데 내 차를 안 탔어. 같이 집에 가는 방향이 아니니까 안탔겠지. 내가 노선이 걔네 학원을 지나간다. 딸내미 다니는 학원을 지나가는데 거기서 걔가 있는 거다. 진짜 있다. 심지어는 '내려서 확인까지 해볼까?' 그 생각도 했었다. 그 정도로 이상한 착시현상도 일어나는 거 같더라고… 근데 아이들이 대부분 머리스타일이나 교복이 비슷하다. 그래서 그랬나? 약간 어둑해져가지고 그래서 그랬나? 내 나름대로 위로를 하는 거지. 아유. 내가 잘못 봤겠지. 우리 아이가 있을 수가 없는 건데 어떻게 저기 있어.

낮에는 손님이 없다. 낮에 일은 한다. 혼자 그러면 이제 선글라스 쓸 수밖에 없는 게 눈물이 난다. 아이 생각나면 그게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버리니까 반복되다보니까 승객들은 모르는 거다. 그래서 그렇게 가다보면 멍 때리는 거다. 딴 생각하게 되고 집중이 안 된다. 일이 안 된다. 그게 내 스스로가 회사에서 그만두게 안했어도, 내가 아마 휴직계를 내고 쉬라했어도, 출근 안했을 거 같다. 그래서 그냥 회사에서 사표 내는 게 어떻겠냐 해서 사표 낸 거다.

▶ 지금 살고 있는 데는?

- 선부동.

▶ 그 집 그대로?

- 아니. 옛날에 살던 데서 이사를 했다. 옆으로 그 집에서는 도저히… 그전에도 이사를 하려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이사를 해야지 했었다.

▶ 근데?

- 사고가 이런 일이 벌어지고 나니까. 도저히 더 이상 못 있겠더라.

▶ 어떤 점에서?

- 아이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그리고 밤이 되면 아이가 학원 갔다 올 시간이 되면 눈에 들어온다. 정확하게 10시 10분이면 애가 집에 왔다. 그러면 그 시간만 되면 저기서 애가 들어와 들어오고 있다. 미치겠는 거다. 못 있는다. 집에 혼자서 못 있어. 혼자 있으면 더 해. 계속 운다. 계속 슬픔에 빠져있어. 나 뿐만 아니라 우리 아이도 마찬가지고 제 엄마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어차피 이사 갈 거면 빨리 가자. 그래서 빨리 이사 간 거다.

(담배를 피우며) 옆집으로 우리 예슬이가 자기 방에다가 지 동생하고 중학교 때 그림을 그려 놓은 게 있다. 되게 크다 한쪽 면만 하겠구나. 그림을 못 떼 왔다 도배하시는 분한테 좀 떼 달라고. 그러니까 이 한 면으로 되어 있어가지고 떼지지가 않는다고 하더라고… 근데 그걸 못 갖고 왔다. 갖고 오고 싶었는데…

▶ 유품이나 이런 건 없나?

- 일부는 태웠고, 일부는 기억저장소에 맡긴 것도 있고 그렇다. 그린 것도 한 개도 안 버렸다. 일기장이라던가. 이런 건.

▶ 집에 그대로 있나?

- 있다.

▶ 단지 그 집은 딸이 보이는 거 같아서?

- 그런 것도 컸고, 거기에 있으면 나는 그렇더라. 아이를 지우려고 버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도저히 내가 내 정신이 아닐 거 같은 생각이 드는 거다. 계속 거기서만 빠져 있을 거 같아서 어차피 이사 가기로 했던 거니까, 이사 가자 그래서 이사 간거다.

▶ 지금 덜하나

- 지금은 좀 낫다. 지금은 좀 낫다. 예전보다 그래도 아직 아이 생각하면 아직도 뭐 집에 혼자 있을 때가 있으면 혼자 있으면 또 찾아보게 된다. 사진도 찾아보게 되고, 난 요 근래 들어 사진을 본다. 그런데 아직도 못 보겠다.

▶ 사진을?

- 사진 중에 하나가 지금 벽에 있는 사진이 있는데, 그 사진보면 얘가 살아있는 거 같다.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 들어 진짜 힘들더라. 애들 엄마한테 저거 좀 치우자 그랬어. 안치운거지 동생 때문에… 이상하게 그 사진만 보면 애가 살아 있는 거야. 애가 살아 움직이는 거 같은 느낌이 그런 사진이 하나있다. 지금은 그런 게 좀 괜찮아 진거 같다. 근데 한잔 먹고 들어가면 안 돼. 한잔 먹고 보면 그냥 바로 슬픔모드. 그 분이 오시더라고. 그 분이 내 맘속으로 와서 안 되겠더라. 아빠들이라고 해서 내 감정을 내 스스로가 조절을 못하는 거다. 조절이 안 되는 거다. 그런 게 있더라.

▶ 언제 딸이 사무치나?

- 밖에 나가 외식 할 때, 그럴 때면 한자리가 빈다. 한자리가 비면 생각난다. 우린 그래서 나가면 예슬이 숟가락, 젓가락 놓고 앞 접시를 하나 놓는다. 그리고 음식을 덜어놓는다. 예슬이 옆에 있다 단지 현물만 없는 것이다 같이 있다고 생각을 하자. 그렇게 한다. 요즘은 그러니까 좀 낫더라. '예슬아, 술도 한잔 먹어.' 소주도 한잔 따라주고 나올 때 까지 그대로 나두고 온다. 그냥 있다고 생각을 하자. 그게 편하더라고. 그러니 제 엄마도 좋데. 그래, 맞아. 괜찮다고 지 동생도 그렇고 여전히 네 명이 가는 거다. 세 명이 아니고 여전히 네 명이 가서 자리에 앉아있지만 않은 거지.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 우리는 솔직한 얘기하면 아직도 우리는 그게 믿어지지 않는다. 아직도 아이가 멀리 여행을 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직도 인정하고 싶지 않다. 아직도…

▶ 시신은 봤나

- 봤다. 내 손으로 확인을 하고 내 손으로 염을 한 걸 발인을 하고 화장터까지 내 손을 썼다. 그런데도 안 믿겨지는데. 그래서 더 그날에 있었던 일을 같이 있었던 아이들 얘기를 더 듣고 싶은 것도 있다. 더 알고 싶고 자꾸 알고 우리도 받아드려야지 받아드릴 건 받아드려야 하니까. 우린 아직도 사망신고도 안했다. 못하겠더라고 안 할 거야. 언제까지 갈지는 몰라도 뭔가 우리 가슴속에서 답답한 걸 벗어나야 하지 않겠나? 그건 국가에서 가르쳐줘야 하는 거잖아. 그런 걸 아직까지 안 가르쳐 주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버리지도 못하고 있는 거지. 계속 갖고 있을 수밖에 없는 거지. 주변사람들이 그런다. 이제는 보내줘야 하는 거 아닌가. 딸내미 친구들도 딸내미 좀 보내주라고. 뭘 보내줘? 뭘 보내줄 마음에 준비가 한 개도 안 돼 있는데 어떻게 보내 주냐고. 내가 보내준다고 안 보내 준다고 가고 안가는 건 아니잖나? 뭐 밝혀진 게 있어야지 뭘 보내든지 할 거 아니야.

▶ 나머지 가족들도 보살필 책임도 있고 다른 가족들 걱정도 되겠다

- 솔직히 된다. 근데 걱정은 되고 제 엄마가 그런 얘기를 하기는 한다. 사실 계속 이렇게 갈 수 없지 않느냐. 당연하다. 생계를 위해서 가야되는데. 이제 진짜 뭔 일 어떻게 해야 될지 일에 대한 욕심도 안생기고 그렇더라. 고민 중이다. 근데 또 이 4.16 이후로 바뀐 게 뭐냐면 제가 효자는 아니었지만 나름 장남이다 보니까 부모님들 챙긴다. 그것도 하기 싫어지더라. 심지어는 우리 형제들이 '형, 왜 전화를 안 하느냐' 누나들도 '전화 좀 자주 해라' 하고 싶지가 않다. 부모님들한테 물론 생각난다. '잘 계시나?' 전화하고 싶다. 예전처럼… 근데 예전에는 진짜 하루가 멀다하고 안부전화를 드리고 그랬는데 그게 하기가 싫어진다. 처음에는 '아, 씨팔 내 자식도 없는데 부모? 부모도 내가 힘들어 하는 거 보면 우리 부모님도 더 싫어하고 아파할거야' 그래서 전화를 많이 피했다. 근데 지금도 그 생각은 있지만 전화하기가 예전만큼 쉽지가 않더라. 부모님들한테 이러면 안 되는데. 그게 지금 빨리 정리 좀 해야 될 거 같은데 우리 부모님도 섭섭할 거 같아. 아들한테 이 새끼 전화도 안하고. 지금 거의 통화한지 한 달이 됐을 거다. 근데 예전처럼 하고 싶은 생각이 안 들어.

▶ 다른 형제들도 마찬가진가?

- 네. 난 내가 형제들한테 먼저 전화하는 거 하고 싶지도 않고. 그게 뭔지 아나? 내 자신도 지금 가고 싶은 생각이 차여 있기 때문에 내가 내 아이를 못 구했잖아? 부모는 이 죄책감이 있다. 나름 죄책감이 있어서 그날 사고 현장에 가서 내가 바다에 뛰어들지도 못했다. 겁이 나더라. 무섭고 물이… 난 원래 물을 좋아하는 편이었는데 뛰어들지도 못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제 엄마도 그런 생각이 있는 거 같더라. 그래서 그런 생각 갖지 말라고 했는데 이제 가고 싶은 거야. 난들 아프면 어때? 나도 살만큼 살았는데 우리보다 더 못한 아이들도 저렇게 허무하게 가버렸는데. 사는 의미가 지금 뭐 있어. 이런 생각이 드는 거다. 트라우마라고 얘기를 하는 것도 같은데 몰라 그런 게 지배적으로 있다. 마음 속에 좀 위험할 수도 있는데, 그러다보니 조금 아프다고 병원에 가기도 싫고 쓰러질 정도가 아니면 병원에도 가기 싫고. 어디 뭐 진찰을 받아야겠다? 뭐 성하겠나? 속이… 내시경도 이제 2년마다 한 번씩 하잖나? 에이 아직까지는… 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 그렇게 삶의 의욕이 없으면 남은 딸 아이한테도…

- 또 하나 말씀드릴까? 만약에 제가 먼저 간다면 제 엄마는 있잖나? 제 엄마만 있으면 되지 뭘… 근데 어설픈 행동은 하지 않을 거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 진실을 밝혀야지 그때 되면 모를까. 아직은 그런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고 그런 일이 없어야지. 저는 지금 이런 얘기 처음 하는 거다. 어디 가서 이런 얘기 한적 없다. 난 애들 엄마 앞에서는 무지 강한 사람이다. 내가 오히려 다독거려주지. 애들 엄마 이렇게 힘들어 하면. 애들 엄마도 그런다. 자기도 농담 삼아 하는 말이 혹시 내가 아파서 병원가게 되면 어디가 나쁘다 해도 절대로 수술하지 마라. 수술하면 안 된다. 왜? 수술을 뭐 하러 하녜. 그냥 놔두라고 이 사람이… 그럼 나는 어떻하라고? 농담 삼아서 나는 어떻하라고.

▶ 그게 무슨 말이냐?

- 어디 병이 있다 그러면 더 이상 수술해서 치료하지 말란 얘기다.

▶ 왜?

- 모르겠다. 치료하고 싶은 생각이 없단다. 농담 삼아 얘기를 한다. 자기 스스로 갈순 없으니 그렇게라도 빨리 가면 가겠단 얘기지. 뭐. 가고 싶단 얘기지. 지금 우리 부모님들이 목숨만 살아있지. 이게 산 목숨들이 아니잖나. 이게 사는 건가. 이게?

▶ 지금 경제적으로 어렵나?

- 많이 쪼들린다. 아직까지는 버틴다. 왜냐면 그 대출을 받았다. 회사를 그만두면서 또 안 먹을 수는 없지 않나. 그래서 대출을 좀 받아 놨다. 그걸로 버티는 거다. 그걸로 버티고 제 엄마가 조금씩 버니까. 그걸로 생활을 하는 거다.

▶ 혹시 계획은?

- 없다. 없고 단지 그냥 이것이 해결이 되면 진상규명 밝혀지면 외국으로 가고 싶은 마음은 없고 솔직한 얘기로 외국에 나가서 살 자신도 없고 그냥 조용한데로 가고 싶다. 시골로 가고 싶다. 나 혼자 가서 시골로 가고 싶다. 시골로 가서 그냥 조용하게 있고 싶다. 그러면서 이런 사회활동 할 거다. 사회활동을 해야 할 거 같아. 안하면 안 될 거 같아. 이거 뭐 100% 우리가 진실규명 선체인양을 요구하고 있지만 진실규명이 얼마나 되겠나. 50%만 되도 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데 바뀔 때 까지 난 사회활동을 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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