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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로몬]'리퍼트 공격' 김기종, 1988년 '우리마당 습격'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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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로몬은 쓸모있는 것만을 '즐겨찾기' 하는 사람들을 칭하는 '신조어' 입니다. 풍부한 맥락과 깊이있는 뉴스를 공유할게요. '쓸모 없는 뉴스'는 가라! [편집자 주]

1988년 8월 18일 한겨레신문. 우리마당 홈페이지 갈무리.

 

제24회 서울 올림픽 개막을 한달 여 앞둔 지난 1988년 8월 17일 새벽 4시. 서울 창천동 신촌역 근처에 있는 재야 문화운동단체 우리마당 사무실에 괴한 4명이 침입했습니다.

짧은 머리에 흰색 운동화를 맞춰신은 이들은 자물쇠를 부수고 사무실에 들어가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미리 준비한 각목으로 사무실에서 자고 있던 대학생 박모 씨를 마구잡이로 때렸습니다. 심지어 다른 여성회원은 성폭행한 뒤 달아났습니다.

바로 1980년대 후반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우리마당 습격사건'입니다. 이 사건 열흘 전인 8월 6일에는 중앙일보 자매지였던 중앙경제신문의 오홍근 사회부장이 테러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말 그대로 '백색테러'가 난무하는 '공포의 시대'였죠.

1984년 김기종 대표에 의해 창립된 우리마당은 다양한 문화활동을 벌이던 재야단체였습니다. 특히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는 남북공동개최를 주장하는 한편, 문익환 목사 등과 함께 통일통화 큰잔치를 준비하기도 했습니다.

이 습격사건은 정황상 재야 문화운동에 대한 탄압 등 특정 목적을 지닌 범행일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괴한들은 사무실의 서류와 유인물을 뒤지다가 캠코더만 들고 달아났습니다. 카세트나 다른 물품은 건드리지도 않았죠. 또 1명이 현장을 지휘하고 1명이 밖에서 망을 봤는데 1, 2층의 주점을 지나쳐 3층 사무실을 범행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단순 강도범의 소행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캠코더가 없어진 점을 들며 단순 절도범에 의한 우발적 범행임을 강조했습니다. 주변 불량배와 동일수법 전과자들만 쫓다가 사건 초기 한 달을 허비합니다.

이런 사이 '오홍근 테러' 사건의 범인은 검거됩니다. 육군정보부대 소속의 현역군인 4명이었습니다. 군인이 언론사 부장을 테러한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당시는 '공포의 시대'였습니다.

1988년 10월 1일 한겨레신문

 

김대중 총재가 이끄는 평화민주당은 9월 30일 시민의 제보를 근거로 오홍근 테러를 일으킨 정보사 소속의 다른 팀이 우리마당 사건을 저질렀다고 폭로했습니다. 실행팀과 지휘체계까지 포함된 중대한 내용이었습니다. 26년 만에 부활한 국정감사에서도 우리마당 사건은 큰 쟁점이 됐습니다.

그러나 국가안전기획부와 군은 연루 의혹을 완강히 부인했고, 사건은 묻히고 맙니다. 이듬해 3월 경찰이 서대문구 대현파출소에 설치돼 있던 수사본부를 해체하면서 이 사건은 영구미제로 남았습니다.

그러던 2004년 북파공작원 출신 이종일 씨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80년대 정치테러의 민낯을 폭로했습니다. 김영삼, 문익환 등 야당 정치인과 재야인사의 테러에 북파공작원이 동원됐으며 우리마당 사건도 북파공작원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이었습니다.

반향은 없었습니다. 밝혀진 것은 전혀 없었고, 사건은 또 조용히 잊혀갔습니다.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민화협 초청 특별강연회에서 마크 리퍼트 주한미국대사를 흉기로 습격한 우리마당 김기종 대표가 종로경찰서에서 적십자병원으로 이송되며 "전쟁 훈련 반대"를 외치고 있다. 윤성호기자

 

김기종 대표는 2007년 청와대 앞에서 우리마당 습격사건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다 분신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전신 20%에 3도 화상을 입는 등 심하게 다친 김 대표는 여러 차례 수술을 받으며 가까스로 소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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