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로몬은 쓸모있는 것만을 '즐겨찾기' 하는 사람들을 칭하는 '신조어' 입니다. 풍부한 맥락과 깊이있는 뉴스를 공유할게요. '쓸모 없는 뉴스'는 가라! [편집자 주]
후보직에서 사퇴한 천성관 서울중앙지검장이 17일 오전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에서 비공개 퇴임식을 마치고 청사를 나서며 차에 오르고 있다. 한재호기자
'스폰서 검사'를 막아라. 2일 국회에서 합의된 일명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은 애초 검찰 등 공직자들의 금품수수를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 고안됐습니다.
△ 천성관에서 시작된 '스폰서 검사'2009년 7월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당시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가 지인과의 부적절한 관계가 드러나 낙마하는 일이 있었죠. 그때 CBS노컷뉴스는 '스폰서 검사'라는 조어를 만들어 검증에 앞장섰는데요, 이듬해 더 큰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2010년 4월 MBC PD수첩은 부산 지역 건설업자의 제보를 근거로 전현직 검사 수십명이 금품과 룸살롱 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검찰은 전문가가 참여하는 진상규명위원회를 꾸려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지만 단 한 명도 재판에 넘기지 못했습니다.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가 아니냐는 국민적 공분이 거세게 일었고, 9번째 특별검사가 도입됐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혐의는 공소시효를 넘긴 뒤였습니다. '몸통'이었던 대검찰청 감찰부장이 기소됐지만 재판에서는 무죄 판결이 나왔습니다.
'스폰서 검사' 의혹을 수사해온 특검팀이 28일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한 가운데 검사 향응 수수 의혹을 최초 보도한 MBC PD수첩의 최승호 PD가 물을 마시는 민경식 특별검사를 바라보고 있다. 오대일기자
△ '대가성'ㆍ'직무관련성' 입증 안 되면 무죄바로 '대가성'과 '직무관련성'이 있어야 뇌물로 인정되는 형법 조항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직무와 관련해 '떡값'이나 촌지를 받아도 그 대가로 수사 상의 편의 등을 제공했다는 사실이 인정돼야 처벌이 가능합니다.
수백만원 어치의 술값과 향응, 골프 접대 등을 받아도 대가성이 인정되지 않으면 형사처벌을 피할 수 있는 거죠. 이러다 보니 오히려 접대문화가 광범위하게 형성되고 나아가 관행화됩니다.
저 사람이 나중에 나를 도와줄 수 있으니 평소에 친분을 쌓고 꾸준히 관리해야 되는 겁니다. 값비싼 저녁식사와 술자리, 골프 접대, 용돈, 명절 떡값, 휴가비, 전별금 등 명목도 다양한 각종 접대가 이뤄지죠.
'그랜저 검사'까지 등장해 정치권이 떠들썩하자 결국 대법관 출신의 김영란 국민권익위원장은 2011년 6월 국무회의에서 '공직자 청탁수수 및 사익추구 금지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때만 해도 아이디어 수준에 불과하던 '김영란법'이 2012년 8월 정식으로 입법예고되는 단계에 이른 데는 검찰의 공(?)이 역시 가장 큽니다. 2011년 11월 일명 '벤츠 검사' 사건이 또 불거진 탓입니다.
△ '벤츠 검사' 사건에서도 수천만원대 금품이 '사랑의 정표'로 30대 여검사가 내연 관계인 변호사로부터 벤츠 승용차와 법인카드를 받고 사건을 맡고 있는 다른 검사에게 청탁한 일로 기소된 사건입니다.
이 검사는 40평 아파트 전세금과 3000만원 짜리 다이아몬드 반지, 2650만원 짜리 까르띠에 시계 등을 선물받고 수시로 현금을 송금받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검사마저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습니다. 1심은 징역 3년에 추징금 4462만원을 선고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검사가 청탁받은 시점은 2010년 9월인데 벤츠를 받은 시점은 2008년 2월로 청탁 대가로 승용차를 받았다고 볼 수 없다"고 무죄 판결했습니다.
재판부는 특히 "사랑의 정표로 벤츠 승용차를 받은 것 같다"며 "신용카드 역시 내연 관계에 따른 경제적 지원 방법으로 사용했지, 대가성으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대가성'이 인정되지 않으면서 무죄 판결로 이어진 겁니다.
△ 부작용 우려에도 우리사회 투명성 제고하는 '위대한 도약' 평가김영란법은 2012년 8월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이라는 이름으로 입법예고됐고, 부처 간 조율을 거쳐 이듬해 8월 국회에 제출됐습니다. 무려 1년 6개월 만에 어렵사리 국회를 통과하게 된 것이죠.
일부 정치인과 언론이 주장하는 것처럼 아쉬운 점도 분명 있습니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 언론사 기자 등이 규율 대상에 포함되면서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을 상대로 법을 악용할 우려가 제기됩니다.
아울러 위헌 소지를 줄이기 위해 가족의 범위를 대폭 축소한 것도 입법 취지에 어긋나 보입니다. 정옥근 전 해군참모총장처럼 아들이나 다른 가족이 대신 금품을 받아챙기는 일을 김영란법으로는 막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허점이 있다고 해서 김영란법 자체를 깎아내릴 수는 없습니다. 김영란법은 공직 부패를 막고 우리 사회의 투명성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는 혁신적인 법이기 때문입니다.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공직자 등은 어떠한 명목으로도 동일인으로부터 1회에 100만원 또는 1년에 3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받을 수 없게 됩니다. 대가성과 직무연관성을 따질 필요도 없이 말이죠. 단 100만원 이하는 직무연관성이 인정돼야 최대 5배의 과태료를 물어내게 됩니다.
대한변호사협회 대변인 출신의 최진녕 변호사는 이날 "1차적 승자는 (공직자와 언론인 등을 잠재적인 수사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검찰이지만 최후의 승자는 국민이 될 것"이라며 "오늘은 한국 역사에 부패척결과 투명사회 실현을 향한 위대한 도약의 날로 기억될 것이라 믿는다"고 평가했습니다.
△ 공직자 뿐 아니라 금품 제공한 사람도 똑같이 처벌
참여연대 소속 관계자가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김영란법 국회통과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박종민기자
국회에서 1년 6개월을 끄는 사이 언론들은 여러 차례 김영란법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했고, 박근혜 대통령도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공직사회의 부패를 막기 위한 국회의 후속 입법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국민 대다수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70%가 찬성 의견을 보내는 등 김영란법의 조속한 통과를 원했습니다. 공직 사회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을 보여주는 결과입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놓치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심지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여당 간사조차 법안 통과를 앞둔 이날까지 이 조항이 존재하는지 여부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바로 금품을 받은 공직자뿐만 아니라 금품을 제공한 사람도 똑같이 처벌받는다는 점입니다. 공직자들이 어떠한 명목으로도 금품을 받을 수 없다는 건 공직자들에게 어떤 명목으로도 금품을 제공해선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수백만원 상당의 금품ㆍ향응은 물론이요, 앞으로 대통령령으로 정해질 금액(현재는 3만원인데 5만원 안팎으로 예상됩니다) 이상의 저녁식사나 선물도 모두 금지되고 명절 떡값이나 휴가비 등의 명목으로도 돈을 주고받을 수 없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