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부 세종청사 공무원들은 연금개혁과 관피아 논란, 부처 간 협업 등 다른 어느 때 보다도 해결해야 할 골칫거리가 많다.
특히나, 이런 일들이 우선 당장 발등에 떨어진 일상의 업무인데다 자신들의 퇴직 후 미래가 걸려 있다 보니 초미의 관심 사안이 됐다.
결국, 공무원들은 위만 바라보는 처지가 됐다. 새로운 총리와 장관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상황 변화가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총리 인선과 개각에 대해 세종청사 공무원들은 기대 반 우려 반이다. 새누리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정부 조직마저 장악하면서, 정치적 충돌을 피할 수 없게 됐다는 판단이다.
한마디로 피곤해 졌다는 분위기다.
이완구 신임 국무총리(가운데)가 지난 17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제43대 국무총리 취임식에 참석해 긴장된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황진환기자
◇ 총리와 부총리 3명 공통점은?…새누리당 원내대표 출신
이완구 총리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준이 우여곡절 끝에 통과됐다. 이에 따라, 세종청사에는 총리 1명과 부총리 2명이 새누리당 원내대표 출신이라는 진기록이 세워졌다.
5선인 황우여 교육부장관 겸 사회부총리가 가장 먼저 원내대표를 지냈고, 3선인 최경환 기재부장관 겸 경제부총리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그리고 역시 3선인 이완구 총리가 뒤를 이어 원내대표를 역임했다.
하지만, 정부 조직법상 직제는 원내대표 막내인 이 총리가 가장 윗자리에 올랐다.
정부 세종청사의 공직사회는 신임 이 총리와 기존 2명의 부총리가 어떤 관계를 유지할지 벌써부터 숙덕공론이 한창이다.
이완구 총리와 최경환 경제부총리, 황우여 교육부총리를 두고 ‘호각지세’, ‘용쟁호투’, ‘물과 기름’ 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 한 지붕 세 가장…화합할 수 있나?사실, 정홍원 전 총리의 경우 정치인 출신이 아닌데다 관리형 총리로써 부처 업무에 크게 개입하지 않았다는 게 정설이다. 특히, 지난해 4월 세월호 참사로 사퇴 의사를 밝힌 이후 힘이 급격히 빠졌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사진=윤창원 기자)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7월 취임한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최 노믹스’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내며 사실상의 총리역할을 하고 있다는 뒷말이 무성했다.
최 부총리는 취임 이후 기재부의 조직을 확대하고, 예산 편성권을 바탕으로 정부 인사권마저 휘두르며 관피아 소용돌이 속에서도 기재부를 무풍지대로 만들었다.
추경호 제1차관은 장관급인 총리실 국무조정실장으로 발탁됐고, 이석준 제2차관은 미래부 제1차관으로, 복권위원회 남봉현 사무처장은 해수부 기조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심지어, 최 부총리의 기재부는 국토부 영역인 주택정책뿐 아니라, 총리실 국무조정실 소관인 규제개혁 업무까지 관여하며 막강한 힘을 휘둘렀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여당 원내대표 출신에 인사 청문회 과정에서 지옥의 문턱까지 다녀왔던 이완구 총리가 어떤 방식으로 든 자기 목소리를 낼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이 총리는 취임사에서 “무엇보다 먼저 경제 살리기에 온몸을 바치겠다”며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 정부의 모든 역량을 최우선적으로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공직의 마지막 자리라는 각오로 헌법과 법률에 규정된 국무총리로서의 권한과 책임을 다하는데 저의 신명을 바치겠다”며 책임총리 역할을 재확인했다.
실세 중에 실세라고 하는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대립각을 세울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해지는 대목이다.
황우여 교육부 장관 (자료사진)
여기에, 황우여 교육부장관 겸 사회부총리도 정치적 배경이나 정부 조직 내 역할 면에서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지금까지는 황 부총리가 사회적 이슈가 없어 침묵하는 입장이었지만, 내년 총선을 앞두고 대입선발과 취학 전 무상교육 등 굵직굵직한 사안이 불거질 경우 목소리를 높일 것으로 교육부 직원들은 전망하고 있다.
더구나 이들 3명은 박근혜 대통령의 신임도 두텁다는 점에서 한 치의 양보 없는 치열한 힘겨루기가 전개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 세종청사 공직사회, 전전긍긍…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질까?우선 당장 다음 주에 열릴 것으로 보이는 '국무총리.부총리협의회'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 협의회는 부처 간 협업과 소통이 미흡하다는 지적에 따라 지난해 말부터 격주에 한 번씩 열리고 있다. 설 연휴가 끝나고 이 총리와 최 부총리, 황 부총리가 한자리에 모일 것으로 보인다.
이를 두고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새누리당 원내대책 회의’라는 비아냥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국회의원 경력이나 새누리당 내 서열, 나이 등에서 황 부총리가 가장 앞서지만 이 총리에게 현안을 보고하고 협의해야 하는 어색한 상황이 연출되게 됐다.
이창원 한성대 교수는 “굉장히 곤란하고 난처한 관계가 됐다”며 “현명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이번 인사가 정부에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