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의 답을 끊임없이 탐구하는 데 문학의 본령이 있다면, 영화 '조류인간'(감독 신연식, 제작·배급 ㈜루스이소니도스)은 활자가 아닌 영상으로 풀어낸 문학 작품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15년 전 사라진 아내를 찾아다니는 한 소설가의 여정을 쫓으면서, 관객들에게 '그대는 누구이고 무엇을 위해 사는가'라는 물음을 줄기차게 던지는 까닭이다.
유명 소설가 정석(김정석)은 작품 활동도 멈춘 채 15년 동안 사라진 아내의 행방을 쫓고 있다.
그런 정석 앞에 갑자기 나타난 묘령의 여인 소연(소이)은 아내를 찾는 데 길잡이가 되겠다는 제안을 하고, 정석은 비밀을 품은 듯한 소연이 의심스럽지만 동행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정석은 자신과 비슷한 방식으로 가족·연인을 잃은 실종자 가족을 만나게 되고, 모든 사건의 연결고리인 이은호(성홍일)라는 사내의 존재를 알게 된다.
이은호를 쫓기 시작한 정석은 그를 만나기 위해 수상한 관문들을 통과해 나가고, 그 실체에 다가갈수록 사라진 아내를 둘러싼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이 영화는 두 이야기를 번갈아 보여 주며 관객들의 궁금증을 유발한다.
하나는 정석이 아내를 찾아다니면서 겪는 사건들을 아우르는 몹시 세속적인 세상으로 비속어가 섞인 구어체를 사용한다.
나머지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비밀스런 수술을 받으려는, 짐 가방을 든 묘령의 여인(정한비)이 사는 판타지적인 세상인데 대사도 소설에서 튀어나온 듯한 문어체를 쓴다.
영화 속 극명히 대비되는 이 두 세상은 모순과 모순이 부딪혀 둘을 아우를 법한 새로운 결과물을 낳는 방식으로 스크린 밖 현실 세계에 영향을 주려 애쓴다.
영화 '조류인간'의 한 장면. (사진=㈜루스이소니도스 제공)
이 영화를 관통하는 소재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조류인간이다. 인간이 새가 된다는 설정은 작가 헤르만 헤세(1877~1962)의 소설 '데미안' 속 유명한 구절을 떠올리게 만든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곧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된다.'
'살아가는 하루 하루가 지옥이었다'는 소연의 대사는 우리가 발붙이고 사는 이 세상의 참혹함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사람은 원래 이기적인 동물'이라고 배워 온 탓에 우리는 더 나은 인간의 본성을 쉽사리 찾아낼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이 영화는 더 나은 삶을 꿈꾸는 인간에 대한 믿음으로 가득차 있다. 그리고 극 말미 주인공 정석과 그의 아내가 함께 살던 모습을 비추면서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공존하는 것이 얼마나 값진 일인가를 일깨운다.
소설 데미안의 문구처럼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고 만나게 된 소중한 인연이 '나'와 '너'일 테니 말이다.
이는 신연식 감독의 연출의 변에서도 확인된다.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내가 누구인지 나와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잘 모르고 있다. 인간사회에서 일어나는 많은 갈등의 원인은 궁극적으로 정체성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서로가 다른 존재일 수 있다는 점과 내가 어떤 존재인지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간다는 점이 막연한 관념의 기준으로 서로를 판단하게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