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산업이 3년 연속 관객 1억 명을 넘어서며 최고의 호황입니다. 그렇다면 한국 영화는 지금 안녕할까요? 그렇지 못합니다. 관객들은 잔뜩 화가 나 있고 좌절한 영화 제작자들도 울분을 삼키고 있습니다. CBS 노컷뉴스가 화려함 속에 감춰진 한국 영화의 불편한 민낯을 연속 보도합니다. [편집자 주][글 싣는 순서]
① 누구를 위한 영화관인가…빼앗긴 '볼 권리'
② 돌려쓰는 극장용 '3D 안경'…이대로 괜찮나?
③ "왜 영화 상영시간에 광고를 끼워넣죠?"
④ "극장 팝콘값 뻥튀기 담합?"…울며 겨자 먹는 관객들
⑤ "영화 대기업 횡포? 짜증을 드러내야 바뀌죠!"
⑥ [단독] CGV, '선택권' 앞세워 '영화값 6%' 편법 인상
⑦ 프리미엄관에 가봤더니…영화 관객은 '봉'
⑧ 뒷짐 진 공정위…영화 관객만 '부글부글'
⑨ "영화 만들기…이젠 행복 아니라 고통입니다"
⑩ '위험수위' 넘은 대기업의 자사 영화 밀어주기
⑪ '다양성영화' 상영횟수…360 대 4의 비밀영화 대기업이 '상업영화'에 이어 '다양성영화 배급시장'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시장 왜곡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열정을 바쳐온 독립영화인들의 무력감도 깊어지고 있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안녕, 투이' 영화 포스터
◇ "관객들에게는 사실상 '보지 말라'는 말"'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이하 님아)'와 '안녕, 투이' 등 영화계에서 주목을 받아온 다양성영화 두 편이 지난해 11월 27일 동시 개봉했다.
다큐멘터리 '님아'는 지난해 제6회 DMZ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관객상을 수상해 화제를 모았다. 영화로 제작되기 전에는 KBS 인간극장에 방영되기도 했다.
'안녕, 투이'에 대한 관심도 대단했다. 개봉 전부터 부산국제영화제와 두바이국제영화제, LA아시안퍼시픽필름페스티벌 등 총 9개의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러브콜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두 영화를 대하는 대형 멀티플렉스의 태도는 확연하게 달랐다. '님아'는 극진한 대접을 받았지만 '안녕, 투이'는 그야말로 찬밥 신세였다.
스마트뉴스팀
개봉 첫날 '님아'에 배정된 스크린수를 살펴보면, CGV는 97개, 롯데시네마는 46개, 메가박스는 32개를 기록했다.
하지만 '안녕, 투이'에 대해서는 CGV와 롯데시네마가 각각 3개와 2개를 배정했고 메가박스는 아예 상영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두 영화에 대한 개봉 첫 날 상영횟수를 비교하면 격차는 더 벌어진다. CGV의 경우, '님아'에 대해서는 모두 360회를 상영했지만, '안녕 투이'에 대해서는 단 4회 상영에 그쳤다.
그나마 그 4회 상영조차도 모두 관객들이 찾기 어려운 오전 시간대였다. '안녕, 투이'의 김재한 감독은 "CGV가 모두 오전 시간대에 영화를 배치한 것은 관객들에게는 '사실상 보지 말라'는 말과 다름없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님아'의 관객수는 479만명을 넘어섰고 '안녕, 투이'는 단 1,176명이 관람했다.
그렇다면 이같은 엄청난 격차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님아'의 경우는 CJ CGV계열인 'CGV 아트하우스'에서 배급을 맡은 반면 '안녕 투이'는 중소배급사에서 배급을 맡았다.
결국 '360 대 4'의 비밀은 영화 대기업이 제작·투자와 배급, 상영관을 모두 독점하는 수직계열화에 숨어 있었다.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 공정위 조사기간에도 버젓이 '자사 영화 밀어주기'다양성영화를 영화 대기업이 차별 대우하는 이같은 사례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역시 지난해 11월 13일과 20일 각각 개봉한 영화 '거인'과 '못'도 비슷한 경우다. 두 작품 모두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부문에 공식 초청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거인'은 칸 영화제 최연소 초청 김태용 감독과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배우 최우식의 조화로 관심을 끌었다.
영화 '못' 역시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영화펀드(ACF) 지원작에 선정됐고 방글라데시 다카국제영화제와 인도 뿌네국제영화제에 초청되기도 했다.
'거인', '못' 영화 포스터
CJ엔터테인먼트의 제2 배급라인인 '필라멘트픽쳐스'가 배급을 맡은 영화 '거인'의 경우 CGV의 개봉일 상영횟수는 122회에 달했다. 이같은 수치는 롯데시네마의 상영횟수(27회)보다 4배 이상 많은 것이다.
하지만 다른 배급사와 손잡은 영화 '못'의 상영횟수는 14회에 그쳤다. 역시 CGV의 '자사영화 밀어주기'가 강하게 의심되는 대목이다.
'거인'은 2만3,487명이 관람했지만 '못'을 보기 위해 찾은 관객은 2,386명에 불과했다.
영화 '못'의 서호민 감독은 "영화대기업에서는 '영화만 잘 만들면 관객은 저절로 찾아온다'고 말하지만 다양성영화의 경우 대기업이 배급을 맡지 않는 한 개봉 그 자체에 의미를 둘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특히 지난해 11월은 CJ CGV와 CJ E&M, 그리고 롯데시네마와 롯데엔터테인먼트의 모회사인 롯데쇼핑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가 막바지에 이른 시점이었다.
이들의 혐의는 자사 그룹 계열 배급사의 영화에 대해 스크린 수와 상영기간을 일부러 늘려주는 방식으로 중소 배급사를 불리하게 만드는 등 시장 지배적 지위를 남용한 것이었다.
이들은 공정위의 제재를 피하기 위해 '동의의결'을 신청하기도 했다. '동의의결' 제도는 공정위가 위법성 판단을 내려 제재 여부를 결정하는 대신 사업자가 사실상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고 소비자 피해구제나 경쟁제한상태 해소 등의 시정방안을 제시하도록 하는 제도다.
이처럼 영화 대기업들은 앞으로는 위기 모면을 위해 유화책을 쓰면서도 뒤로는 '자사 영화 밀어주기'를 계속 밀어붙였던 것으로 드러나 더 큰 비난을 사고 있다.
CJ그룹 (사진=윤성호 기자/자료사진)
◇ 흥행한 다양성 영화 뒤에는 CJ가 있다다양성영화 배급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CJ의 위력은 지난해 한국 다양성영화 박스오피스 순위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지난해 CJ에서 배급을 맡은 다양성영화가 박스오피스 1위 '님아'와 3위 한공주(22만5,566명), 4위 도희야(10만6,543명) 등 10위 안에 세 작품이나 올랐다.
또 영화 목숨(13위/3만7,948명)과 거인(15위/2만3,487명), 누구에게나 찬란한(18위/2만787명), 봄(22위/1만4,780명)도 비교적 좋은 성적을 거뒀다.
지난해 CJ가 배급을 맡은 다양성영화 7편은 모두 보란듯이 흥행성공기준인 1만 명을 넘겼다.
지난해 관객 1만 명을 넘긴 한국 다양성영화는 28편에 불과하다. '서울독립영화제 2014'에 접수됐던 장·단편 독립영화만 1000여 편에 달했던 점을 감안하면 한 작품 만들고 사라지는 독립영화 감독들도 부지기수일 수밖에 없다.
영화진흥위원회는 '2014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보고서에서 지난해 다양성영화 시장의 특징 가운데 하나로 CGV 아트하우스(前 무비꼴라쥬)의 영향력 확대를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