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은 금메달, 하지만 사회생활은 ''노메달''

노컷뉴스 이 시각 추천뉴스

닫기

- +

이 시각 추천뉴스를 확인하세요

''88올림픽의 영웅, 20년 후 그들은''① 금메달리스트들의 험난한 사회 적응

 

''88 올림픽의 영웅, 20년 후 그들은… ''

CBS는 88서울올림픽 20주년을 맞아 당시 올림픽 영웅들의 삶을 조명하고 우리나라 엘리트 체육의 문제점을 짚어보는 연속 기획을 마련했다.

오늘은 첫번째 순서로, 운동에만 매몰돼 사회 적응에 실패했던 금메달리스트의 삶을 보도한다.


"그 사람이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면, 이호성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예요. 안타깝기도 하고… ."

자신이 진 빚을 갚기 위해 네 모녀를 잔인하게 살해한 이호성을 이해한다?

이호성에게 연민까지도 느낀다는 이 사람은 88올림픽 유도 60kg급 금메달리스트 김재엽(44)씨.

현재 동서울대학교 경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김씨는 언론을 통해 이호성 사건을 접하며 지난 20년을 돌아봤다. 그리고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그에 따르면 유명 체육인으로서 은퇴한 후 정신적, 금전적 어려움의 극한까지 몰리면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게 된다고 한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지난날의 그처럼.

온 국민의 환호 속에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88년 서울올림픽. 당시 김씨는 대한민국의 아들이요, 영웅이었다. ''금메달리스트 김재엽''은 연일 언론에 오르내렸고 세상에는 못할 일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런 기분도 잠시. 영광의 88년이 지나고 김씨가 부딪힌 세상살이는 끔찍할 정도로 냉정했다.

"금메달 꼬리표, 차라리 떼고 싶었다"선수생활을 접고 시작한 유도팀 코치는, 소속 선수들이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한 것이 문제돼 계속할 수 없었다. 유도가 아닌 다른 삶은 떠올려본 적도 없었던 김씨의 방황은 이렇게 시작됐다.

김씨의 방황은 결국 아내와의 이혼으로까지 이어졌다. 서울올림픽 금메달 커플로 화제를 모았던 아내 김모씨와 결별한 것.

이후 ''제2의 인생''을 위해 시작한 사업들도 1년이 지나지 않아 줄줄이 실패했다. 인터넷 전자상거래, 일식집, 제조업, 광고사업 등 김씨가 벌인 사업들은 몇 달을 못 가 빚만 수십 억원으로 불려 놓았다.

김씨는 ''''올림픽 선수들 대부분이 어릴 때부터 책과 씨름해 본 적 없이 운동만 하다 보니, 선수 생활이 지나면 갈 데도 없고 할 것도 없다''''면서 "나는 유도에 대해서는 금메달리스트였지만 다른 분야에서는 그렇지가 않았다."고 말했다.

사업파트너에게 사기를 당하고 부모님 재산까지 날릴 무렵 김씨는 금메달리스트라는 꼬리표가 차라리 없었으면 했다고 한다. ''내가 누군데, 왜 이렇게 살아야 하지'' 하는 의문은 금메달리스트라는 꼬리표 때문에 더 큰 고통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운동만 하다 사회 나가니, 세상물정 몰랐죠"88올림픽에서 레슬링 자유형 82kg급 금메달을 따고 현재 레슬링협회 전무이사를 맡고 있는 한명우(52)씨도 은퇴 이후 사회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고백한다.

지금도 한씨는 수십 억원을 투자한 사업파트너와 연락이 끊겨 전전긍긍하고 있다. 한씨는 "친구 사이에 고소하기도 그렇고, 돈을 떼먹으려고 일부러 연락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 않겠느냐"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한씨는 93년 말레이시아에 대표팀 감독으로 갔다가 우리나라를 주 공급처로 삼고 숯불 공장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외환위기가 터지는 바람에 빚만 떠안은 채 한국에 돌아왔다.

이후 레슬링 협회 훈련이사라는 직책을 맡긴 했지만 봉급이 없었다. 밖에 나갈 차비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젊은 시절 운동만 하다가 사회에 나가니 세상물정에 어두웠어요. 거짓말도 할 줄 모르고 남도 쉽게 믿는 순진함이 약점으로 작용한 거 같아요. 삶은 연습이 없는 본 게임인데 힘들었던 시절은 인생에 대한 수업료라고 생각하고 살아요"

메달리스트들, 정신적 갈등에 일상생활 위기 겪기도

복싱 플라이급 금메달리스트인 김광선(45)씨는 다른 선수들에 비해 비교적 일찍 사회에 적응했다고 말하지만, 음식점 체인 사업에서 실패하는 등 나름대로의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였다.

김씨는 "태릉선수촌을 처음 나왔을 때는 할 줄 아는 것이 복싱밖에 없어 막막했다"며 "일단 저지르고 보자는 생각으로 지인과 동업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성진 박사(사회학)는 ''''오랜 시절을 운동에 전념했던 선수들의 경우, 은퇴 이후 정신적 갈등 뿐 아니라 일상생활의 위기까지 겪는다''''며 ''''특히 메달을 딴 선수일수록 선수시절 화려했던 명성에 대한 그리움으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정신적, 금전적 고통에 시달리기 쉽다''''고 말했다.

0

0

오늘의 기자

    많이본 뉴스

      실시간 댓글

        상단으로 이동
        페이스북 트위터 네이버 다음 카카오채널 유튜브

        다양한 채널에서 노컷뉴스를 만나보세요

        제보 APP설치 PC버전

        회사소개 사업자정보 개인정보 처리방침 이용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