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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연애' 초딩들도 '내 얘기'라니 기쁘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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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인터뷰] 박진표 감독 "사랑도 삶도 미치지 않으면 다다를 수 없다"

박진표 감독 (사진=팝콘필름 제공)

 

박진표(49) 감독이 로맨틱 코미디 '오늘의 연애'(제작 팝콘필름)를 내놓는다고 했을 때 고개를 갸우뚱했을 사람들이 꽤 될 듯싶다. 상업영화 진영에서 다소 꺼려 할 법한 소재를 끌어들여 줄타기를 해 온 그의 연출 궤적을 아는 이라면 더욱 그랬을 법하다.

노부부의 솔직한 사랑을 담은 다큐멘터리 '죽어도 좋아'(2002)로 데뷔한 이래 '너는 내 운명'(2005), '그놈 목소리'(2006), '내 사랑 내 곁에'(2009) 등 현실에 발붙인 작품을 끈질기게 선보여 온 이가 박 감독인 까닭이다.

최근 서울 압구정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난 박 감독 역시 오늘의 연애를 두고 "명백한 데이트 무비이자 팝콘 무비요 킬링타임 영화"라고 했다.

"애초에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가 설렘이라는 판타지를 주는 데 충실한 영화잖아요. 확대해석을 해도 무방하지만 가볍게 봐 주셨으면 합니다. 관객들이 '저런 애인 만나고 싶다' '저기서 데이트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 바랄 게 없죠. 자연스레 받아들여졌으면 해요."

박 감독에게 다시 물었다. '오늘의 연애가 기획 단계서부터 가볍게 시작된 영화냐'고. 잠시 망설이던 그는 "감독이라면 누구나 자기가 만든 작품으로 거창한 메시지를 주고 싶다는 욕망을 품을 것"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당연히 오늘의 연애를 만든 이유가 있죠. 전작 그놈 목소리의 경우 잡히지 않은 유괴살인범을 현상수배한다는 뚜렷한 이유를 내세웠지만, 이번 영화는 그 의도를 단 1%도 드러내면 안 된다고 봤어요. 상업영화로서 마케팅 측면도 무시할 수 없고요. 오늘의 연애를 본 관객 가운데 열에 둘은 사랑의 가치를 깊이 있게 읽어 주시는 것 같아요."

박 감독은 "무엇보다 1985년 이후 세대들이 우리 영화를 보고는 '엄청 재밌다'고 말하는 것이 남다르게 다가온다"고 전했다.

"대학생은 물론 중·고등학생, 심지어 초등학생들까지 '내 얘기 같아서 보고 싶다'는 반응을 보이더군요. 왜 그런가 봤더니 이 세대는 우리 때와 달리 남녀합반에서 자연스레 이성을 접해 왔고, 한 동네에서 초·중·고교에 대학까지 같이 다니는 경우도 있더군요. 영화 속 사랑이 그들에게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셈이죠."

박 감독과 인터뷰를 하면서 오늘의 연애 역시 그의 기존 연출작과 맥이 다르지 않다는 인상을 받았다. 감독 데뷔 전부터 방송국 PD로 살면서 세상을 깊숙이 들여다보려 애써 온 그다. 지금의 젊은이들이 오늘의 연애 속 사랑을 자기 얘기로 받아들일 수 있던 데는 이러한 점이 크게 작용했으리라.

▶ 제목에서도 드러나지만 '연애'를 '날씨'에 비유한 발상이 흥미롭다.

= 연애라는 감정이 원래 들쑥날쑥하지 않나. 날씨로 치면 태풍이 치고 비바람도 불고 말이다. 극중 장마, 태풍, 열대야, 우박 같은 것으로 주인공의 감정 상태, 연애의 기복을 나타내려고 했다. 잘 맞아떨어지면 재밌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 지금 젊은이들의 연애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 기본적으로 연애, 사랑과 같은 감정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고 본다. 다만 시대에 따라 연애의 행태는 바뀌는 것 같다. 지난해 '썸' 열풍을 보면서 흥미로웠다. 우리 때는 '썸씽'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지금은 '썸탄다'는 것이 연애의 대명사가 된 듯하다.

초등학생도 사용하던데, 그 말이 시대의 화두가 된 모습이다. 그게 나쁘다는 의미가 아니고, 사랑으로 가기 전 단계에 꽤나 오래 머무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더라. 소위 썸타는 기간이 기성세대보다 길어졌다고 해야 할까.

요즘 세대가 서로 대면하지 않고 소통하는 SNS 등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인간관계나 사랑에서 대범하지 못하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그 연장선상에서 우리 영화는 만들어놓고 보니 '썸'이나 인간관계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부딪치고 깨지면서 서로에게 다가가자는 이야기가 됐다.

▶ 극 말미 상투적으로 여길 수도 있는 '난 너 아니면 안 돼'라는 대사가 절실한 외침으로 다가오더라.

= 모든 사람들이 사랑의 결실을 맺기 직전에 드는 마음이 아닐까. 그러한 마음이 생기지 않으면 사랑에 깊이 다가가지 못하고 결혼도 못하고 나중에 후회할 것이다.

물론 그러한 오글거리는 대사로 굳이 마음을 표현하지 않는 쿨한 영화 들도 많다. 반면 표현하는 영화도 있어야만 한다. 제 경우는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원래 돌직구 성격이기도 하고. (웃음)

영화 '오늘의 연애'의 한 장면. (사진=팝콘필름 제공)

 

▶ 영화 촬영 전 100여 명의 젊은 남녀를 인터뷰했다고 들었다.

= 100명 이상 만났는데, 너무 힘들었다. 어린 연인부터 유부남과 사귄 경험이 있는 미혼 여성, 이성을 만나 본 유부남에 연상연하 커플…. 모든 인터뷰를 마치고 드는 생각은 '특별할 게 없다'는 것이었다. 사랑과 연애는 흔하디 흔하고 누구나 하는 것이니까. 거의 다 비슷하더라.

다만 사랑이라는 게 누구에게 배울 수도, 가르칠 수도 없기에 개개인별로 특징이 있다는 것뿐이다. 사람이 사랑을 할 때와 하지 않을 때는 상대를 대하는 태도가 틀려지기 마련이다. 사랑을 할 때는 세상의 중심이 된다. 모든 노래가 자기 이야기 같으니까. 반면 사랑하지 않을 때는 같은 노래를 듣더라고 유치하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요즘 사랑을 통한 설렘을 갖는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까지 겪은 너무 비상식적이고 힘든 세상을 살면서 사랑의 설렘만이라도 지켜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 자살사고가 빈번한 마포대교를 극중 데이트 장소로 설정한 것도 눈에 띄던데.

= 꼭 섭외해 달라고 요구했던 장소다. 자살율 1위 다리에서 데이트를 하는 게 생뚱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막상 가보면 전국에서 공모한 시 들이 붙어 있고, 저녁에 해질 무렵 풍경도 무척 예쁘다.

슬플 때, 힘들 때, 죽고 싶을 때 가는 곳이 아니라, 설레는 감정을 품고도 갈 수 있다는 역설을 보여 주고 싶었다. 가보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요즘 젊은이들의 썸타는 기간이 길어진 데는 불안한 정치·경제·사회적 영향도 크지 않을까.

= 상업영화인 오늘의 연애에 직접적으로 대입하기에는 어려워 보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연결시켜 생각할 수 있다고 본다. 젊은이들의 연애법이 이 시대가 갖고 있는 모호한 정치·사회·경제적 특성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면이 있으니까.

▶ 그동안 사회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다양한 시도로 작품에 접목시켜 왔다.

= 방송국 PD로 시사프로그램을 하고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배운 면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하는 데 따른 결과인 것 같다.

제 경우 커다란 틀을 먼저 만들어 놓고 좁혀가는 게 아니라, 반대로 접근한다. 우선적으로 사람을 본다. 그 사람의 삶의 궤적에 사회가 들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시대를 사는 사람이니까. 그 사람을 담다보면 사회가 보이고, 국가가 보이는 것 같다. 데뷔작 죽어도 좋아 때부터 지금까지 개인에 집중하고 있는 이유다.

▶ 영화계로 어떻게 넘어오게 됐나.

= 방송 일이 물론 좋은 세상을 만드는 과정이라는 믿음이 컸지만, 시사 프로그램 등을 하면서 내 자신이 경찰, 검사 입장에서 사건을 재단하는 것 같았다. 두려움이 많이 생기더라. 피해자 가족을 만나면서, 그들의 생각하기도 싫은 기억을 끄집어내면서 "제2, 제3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라는 말을 어느 순간 할 수 없었다.

그 와중에 영화에 대한 갈증도 커지고 있었다. 죽기 전에 영화를 만들자는 마음이었다. PD 생활을 하면서 인연을 맺은 한 노부부에게 다큐멘터리 영화 제안을 드렸더니 "생의 축복"이라며 흔쾌히 받아 주시더라. 그렇게 죽어도 좋아로 영화 데뷔를 했다.

'오늘의 연애' 촬영 현장에서 배우들과 함께한 박진표 감독. (사진=팝콘필름 제공)

 

▶ 다큐멘터리에서 너는 내 운명을 통해 극영화로 넘어올 때는 특별한 심경의 변화가 있었나.

= 그런 건 아니다. 당시 여러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너는 내 운명을 가장 먼저 시작하게 됐고, 그것이 상업영화 형태로 가게 된 것이다.

여주인공이 에이즈 환자라는 설정은 그 당시 파격이었다. 그래서 투자가 안 됐는데, 지금 영화사 봄의 오정완 대표와 영화사 집의 이유진 대표께서 당시 적극적으로 나서 주셔서 빛을 볼 수 있었다. 두 분이 감독 하나 만들어보겠다며 열심히 뛰어 주신 덕이다.

▶ 상업영화 틀 안에서 다루기 까다로운 소재를 교묘하게 끌어오는 모습이다.

=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제 경우 영화를 만들 때 '왜(why)'에 방점을 찍는다. 사실 상업영화는 '어떻게(how)'를 중시하는데, '왜'를 끄집어내다 보면 관객에게 접근하기가 다소 어려운 면이 있다. 이 둘 사이에서 항상 많은 갈등을 한다.

오늘의 연애는 '어떻게'에 무게를 뒀다. 언젠가는 또 다시 '왜'로 가게 될 것이다. 어떤 다큐멘터리에 꽂힐 수도 있고, 특정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야 한다는 동의만 이뤄지면 되는 것이다. 제 경우 아직까지는 투자자들에게 손해를 끼친 적이 없다. 그러기도 힘든데, 운이 좋았다. (웃음)

▶ 창작자로서 사회 현실을 영화로 풀어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는지.

= 당연하다. 어쩔 수 없어서 영화감독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니까. 저 역시 살아내야 하고, 이 생을 계속 살아야 하니까. 관심 있고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면 바로 나설 것이다. 지금도 중요한 작업을 하나 준비 중이다.

▶ 기존 연출작을 보면 모든 것을 초월한 궁극의 가치로서 사랑을 그리는 모습이다.

= 사랑은 설렘에서 출발한다. 사물도 그렇다. 제가 하루에 커피를 10잔 이상 마시고 담배도 한두 갑 피운다. 커피를 주문하면서 입에 침이 고일 때, 비행기를 오래 타고 가면서 내려 담배 한 대 태울 생각을 하는 것도 설렘이다.

그러한 설렘은 특별한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일에 대한 사랑인 성취감도 그럴 것이다. 특히 그 설렘이 사람에게로 옮겨갔을 때는 그 기운이 크게 상승한다. 흔하디 흔한 게 사랑이고, 너무 잘 알고 있는 감정이라고들 여기지만 사랑에는 정답이 없다. 5000만 명이면 5000만 명이 모두 다른 사랑을 하는 것이다.

힘든 세상을 살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삶이 건조해지기 마련이다. 사랑의 설렘이 메마른 가슴을 충분히 적셔 줄 수 있을 것이다.

▶ 한 해에 국민 1인당 4편 이상의 영화를 보는 시대다. 영화라는 매체의 막강한 영향력을 실감하나.

= 제가 그 막강한 영향력을 잘 쓰고 싶은 사람 가운데 한 명이다. 그놈 목소리에서는 현상수배도 했으니까…. 그래서 더욱 조심스럽게 되는 것 같다.

산업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은 제 관심사가 아니다. 어떻게 하면 사회적 목적을 너무 드러내지 않은 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된다.

▶ 박진표 감독에게 영화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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