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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들' 대자보 붙인 때보다 우리네 고통과 분노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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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시장' 밖 사람들] <下>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쓴 주현우 씨

영화 '국제시장'이 1000만 관객을 모으는 동안 극장 밖 세상에서는 이 영화를 두고 숱한 논란이 빚어졌다. 소위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를 반대어처럼 맞서게 하고, '애국'이라는 말과 산업화 세대를 동의어로 엮으려는 움직임이 거세게 인 탓이다.

그렇게 한국 사회는 편이 갈려 이념·세대 논쟁을 이어갔다. 누가, 무엇 때문에 영화를 발판 삼아 이러한 분열을 부추긴 것일까. 그 와중에 정작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한, 이 땅 위에서 같은 상처를 품고 살아 온 국제시장 밖 '우리'의 모습을 전한다. [편집자 주]


지난 2013년 대학가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제목의 대자보 작성자 주현우 씨가 최근 서울 상수동 한 카페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그는 "구성원들 각자가 자기 처지에 대해 팔자를 거스를 수 없는 하나의 파편으로 여기게 만드는 것이 우리 사회의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사진=황진환 기자)

 

사회적 소통·공감 부른 대자보 처음 써 붙여
"국제시장과 한국사회, 덕수와 우리는 닮은꼴"
한국사회 진단 "'다 팔자려니…' 파편화 강요"
"스스로 해방시키는 '자기정치' 연대로 직결"


2013년 겨울, 한국 사회에서 소통과 공감의 장이 된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를 처음으로 써 붙인 대학생 주현우(29·고려대 경영학과) 씨.

그는 "우리 사회는 영화 국제시장과 멀지 않고, 주인공 덕수 역시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고 했다. 주 씨는 "이게 내 팔자란 말이다"라는 영화 속 덕수의 대사에서 그 근거를 찾았다.

"한국 사회에 사는 사람은 모두 '팔자려니'라는 인식을 가졌다고 봐요. 다들 불안하고 힘들고 어렵고 외로운 상태에서 그것들을 공유하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현실이 막막하고 삭막하고 파편화 돼 있잖아요. 이러한 외압은 결국 내압으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스스로 인정해야만 생기는 내압, 곧 팔자는 자기 단정이 되는 셈이죠."

최근 서울 상수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국제시장을 어떻게 봤냐'는 물음에 "많이 울었다"고 답했다.

"눈물을 많이 흘리게 하는 영화더군요. 소재 하나 하나가 비극 아닌 게 없어서 보는 과정이 힘들기도 했어요. 이 영화에서는 조명되지 않은 역사의 고통과 죽음들까지 함께 떠올랐거든요."

결국 한 편의 영화가 방대한 역사를 오롯이 그리는 데 한계를 지닌 만큼, 그는 자신의 경험과 기록된 역사를 끄집어내 영화를 적극적으로 해석한 모습이다.

주 씨는 "구성원들 각자가 자기 처지에 대해 팔자를 거스를 수 없는 하나의 파편으로 여기게 만드는 것이 우리 사회의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

"세상에 하늘이 내려 준 것은 없습니다. 모두 인간이, 사회가 만든 결과물이니까요. 여기서 '그것을 누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물음이 나올 수 있어요. 그 답은 '우리'라는 인식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이는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자기 정치'를 통해 이룰 수 있다고 봐요."

그는 "지금 세상은 분명한 차별이 있는데도 없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사람들에게 '차별 받는 게 나만 아니면 돼'라는 생각을 갖도록 강제한다"고 진단했다.

"그렇다면 그 차별과 억압을 어떻게 없앨 수 있을까요? 이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진다면 각자의 입장에서 자신을 억압하는 게 뭔지를 찾을 수 있을 거라 봐요. 그 이후에야 제대로 된 실천이 뒤따르겠죠."

▶ 대자보를 붙인 때로부터 어느덧 1년 넘게 흘렀다. 어떻게 지냈나.

= 대자보 붙이기 전부터 꾸준히 해 온 교육 활동을 이어왔다. 대학에서 정해 둔 공부는 무비판적이고 사회 적응에 중심을 두고 있는데, 제 교육 활동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사고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다.

그렇게 돈 들이지 않고 인문·사회과학을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고, 다양한 모임에서 강독, 세미나를 계속해 왔다.

▶ 교육 활동을 구체적을 설명해 달라.

= 대자보 역시 교육 활동에 대한 고민을 하다가 다소 우발적으로 붙였던 것이고, 대자보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 기대하는 '대리주의'는 경계대상 1호다. '내가 하지 않으면 무엇도 바뀌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교육 활동에 임하고 있다.

행동할지, 말지는 교육을 통해 생각하는 힘을 갖게 된 어떤 사람의 선택에 달려 있다. 행동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세미나에는 1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한다. 당연히 어색하다. 어색하니 계속 만나는 것이다. 공부하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어색한 아저씨, 할아버지, 학생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인정해 가고 있다.

▶ 아직 재학 중인 것으로 아는데, 학교를 꽤 오래 다닌다.

= 학기는 모두 마쳤는데, 몇 학점 더 들어야 한다. 집으로부터 독립해 학비와 생활비를 벌면서 다니다보니 졸업이 늦어졌다. 지금도 조그만 연구소에서 일하면서 돈을 벌고 있다. 아침 7시 출근이어서 5시 반에 일어난다. 그래서 요즘 아침 해가 갈수록 일찍 뜬다는 걸 절감한다. (웃음)

이 일만으로는 생계 유지가 어렵다. 추후에 집을 옮기거나 위급한 상황에 쓸 수 있는 돈을 모으기 위해 보통 두세 개 일을 잡는다. 학교 전공 공부도 과제, 시험으로 계속 다그치니 설렁설렁 할 수 없다. 이런 점이 쌓여 졸업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주현우 씨가 인터뷰 도중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있다. 아직 학생인 그는 "집으로부터 독립해 학비와 생활비를 벌면서 학교를 다니다보니 졸업이 늦어졌다"며 "지금도 조그만 연구소에서 일하면서 돈을 벌고 있는데, 아침 7시 출근이어서 5시 반에 일어난다"고 했다. (사진=황진환 기자)

 

▶ 2013년 겨울 철도노조가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과 관련해 철도민영화에 반대하는 파업을 벌일 당시, 코레일 측이 조합원 수천 명을 직위해제해 커다란 비난을 샀다. 당시 붙였던 대자보도 이를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민영화의 칼을 빼들었구나' '끝까지 가겠다는 거구나'라는 뜻으로 읽혔다. 개인적으로 말이라도 한 마디 해야지 너무 답답한 마음이었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으니까. 대자보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

대자보를 붙이고 큰 관심을 받으면서도 개인적으로 사람들에게 "이 분위기가 오래 간다는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사람들의 노력이 부족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지금 현실이 이러한 흐름을 가만 두지 않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고사시키고 특정 프레임에 가두려 할 테니 말이다. 대자보로 파편화 되는 사람들을 연결한 것만으로도 일정 성과는 얻었다고 본다.

▶ 당시 대자보 열풍이 전국으로 번지는 등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다.

2013년 12월 10일 학교에 대자보를 처음 붙였을 때는 반향이 크게 없었다. 당시 철도노조 파업과 관련한 다른 대자보들도 있었는데, 제 것은 제목으로 관심을 끌었다. 한 언론 매체에서 기사로 썼고,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코레일 측의 직위해제는 계속 되고 있었다. 대자보로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 해서 하루는 뜻이 맞는 사람들과 모여 이야기를 길게 했다. 그 자리에서는 학내에서 꾸준히 목소리를 내는 한편 학교 밖에서도 1인 시위 등으로 호소하자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 바로 실행에 옮겼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이 대자보를 붙이고 목소리를 냈다. 10시간 동안 1인 시위를 한 날 학생들이 캔커피도 전해 주고 하면서 본격적으로 회자됐고 다른 학교까지 옮겨갔다. 결국 실질적인 실천 과정에서 불이 붙은 셈이다.

저 하나의 힘이 아니었다. 학교 안에서 같이 공부하고 얼굴도 마주치고 하면서 알게 된 사람이 1인 시위를 하며 권유를 하니 관심 갖고 동참하게 된 것이다. 당위성을 내세우며 하라고 강요했다면 그런 흐름을 이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 기억에서 잊히는 분위기가 아쉽지는 않나.

= 결코 아쉽지 않다. 생각한 것 이상의, 기대하지 못했던 반응을 봤으니까. 사람들의 고통과 분노가 이 정도까지 쌓이면서 왔구나라는 것을 확인했다.

분명히 또 다른 누군가 나타나서 무언가 할 것이다. 나아질 기미를 안 보이니 파열음이 날 수밖에 없다. 이젠 그 때를 기다릴 거냐, 준비할 거냐는 문제가 남아 있다.

▶ 노동 문제에 관심이 많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 노동이 사회 모순을 극단적으로 드러낸다고 본다. 정부는 노동시장을 유연화할 목적으로 정규직 과보호 등의 프레임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 근거가 어디에도 없다는 점에서 빈약하다.

늘어나는 부가 사회의 부로서 서민들의 주머니를 채우고 있는지 의문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하고 있다. 정규직을 줄여서 비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데, 우리는 정규직을 많이 만들어내지 못하는 저들의 무능을 봐야 한다.

대학 구조조정의 경우도 대학을 정상화하는 것이 아니다. 무조건 밑에서부터 쳐낸 뒤 강한 놈들만 달리게 한다는 발상은 허점이 너무 많다. 연금 문제 역시 자산 투자를 위해 연금 운영의 폭을 넓히려 하는 분위긴데, 연금이 사회보장 측면에서 삶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본래 취지를 애써 가리려 하고 있다. 이런 모순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 지난해에는 세월호 참사를 위시해 한국 사회가 분노로 들끓었다.

= 계속 뒤로 밀리면서 한 발 옮기는 것 자체가 힘든 분위기다. 우리를 미는 것은 특정 사람일 수도, 가치일 수도 있다. 자본주의 사회는 기본적으로 줄을 세우고 경쟁을 요구하기에 누군가는 밀려날 수밖에 없다. 지난해에도 밀려나는 다수의 사람들이 서로 어깨에 팔을 두르고 한 걸음 내딛어야 함에도, 계속 깨지고 흩어지고를 반복했다.

결국 미는 사람의 의도대로 분열되고 다투는 상황이 계속됐다. "다 같이 모이면 되지 않냐"는 말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오히려 깨져서 파편으로 흩어진 것을 봐야 한다. 지금은 방향을 잃은 상태다. 단순한 이합집산은 피로도만 늘릴 뿐이다.

중심을 갖고 만나야 하는데, 구심력이 될 만한 것이 없다. 제도권 정치를 비롯해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이해관계에만 집착하니 대중의 불신도 커지기만 한다. 불신의 사회. 불신하지 않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는 셈이다.

객관적인 상황이 갈수록 안 좋아지는 만큼 주관적인 개인들의 고통과 분노도 커지는 모습이다. 그것이 즉각적으로 터진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해결책을 찾기 위한 물음을 던져야 한다.

지난해에도 저들이 짜 둔, 근본적인 문제를 가리는 프레임에 갖혀 방황하는 언론과 기성 사회·정치 단체에 대한 실망이 컸다. 문제를 획기적으로 뛰어넘어야 한다. 한 예로 현행 대입제도가 잘못됐다는 것은 이제 공론화가 됐다. 하지만 대학을 다니는 사람도, 입시를 준비하는 사람도 대입제도를 없애야 한다는 얘기를 하지 않는다. 근본적인 문제를 문제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이 큰 문제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사지로 떠나는 남편 덕수(황정민·오른쪽)를 두고 아내 영자(김윤진)가 눈물을 흘리면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모습. 주현우 씨는 이 한 장면으로 국제시장을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내 팔자란 말이다'라고 하는 덕수는 자기 삶에 자기가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런 덕수는 지금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사진=JK필름 제공)

 

▶ 어릴 때부터 세상사에 관심이 많았나.

= 항상 하고 싶은 것을 고민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게 뭐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뭔가'를 고민하니 자연스레 사회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지더라. 질문을 크게 던지기보다는 자기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본다. 스스로 안녕하지 못하다고 느끼면 해결하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면서 살아야 한다. 단기필마로 이길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대학 들어와서 그런 부분이 많이 눈에 들어왔다. '비싼 돈 들여서 대학 왔으면 사회적 책임을 해야 하지 않나'라는 치기어린 생각이 제 삶의 문제로 발전했다. 실제로 취업이 어렵고, 목숨 걸고 취업한 친구들을 봐도 고용불안에 시달린다. 살기 쉽지 않다.

저는 서울이 고향인데 몰락해 가는 중산층에서 태어났다. 지금은 중산층이 없지 않나.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느낌. 중산층의 상층부만 부를 늘려갈 뿐 대다수 중산층은 몰락하고 있다. 이제 중산층이라는 단어는 폐기돼야 한다고 본다.

자기 노동력을 팔아서 사는 사람들은 모두 노동자다. 우선 노동이라는 단어에 대한 거부감부터 깨야 한다. 노동자가 스스로를 노동자로 인식하지 못하면 노동자의 권익은 결코 높아질 수 없다.

▶ 영화 국제시장, 어떻게 봤는지.

= 많이 울었다. 눈물을 많이 흘리게 하는 영화더라. 소재 하나 하나가 비극 아닌 게 없어서 보는 과정이 힘들기도 했다. 이 영화에서는 조명되지 않은 역사의 고통과 죽음들까지 함께 떠올랐다.

국제시장과 한국 사회는 멀지 않고, 덕수와 우리는 다르지 않아 보이더라. 한국 사회에 사는 사람은 모두 '팔자려니'라는 인식을 가졌다고 본다. 다들 불안하고 힘들고 어렵고 외로운 상태에서 그것들을 공유하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현실이 막막하고 삭막하고 파편화 돼 있잖나. 이러한 외압은 결국 내압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스스로 인정해야만 생기는 내압, 곧 팔자는 자기 단정이 되는 셈이다.

구성원들이 자신의 처지를 거스를 수 없는 하나의 시대적 파편일 뿐이라고 여기게 만드는 것이 우리 사회의 큰 문제다. 세상에 하늘이 내려 준 것은 없다. 모두 인간이, 사회가 만든 결과물이니까. 여기서 '그것을 누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물음이 나올 수 있다. 그 답은 '우리'라는 인식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는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자기 정치'를 통해 이룰 수 있다."

▶ 영화 속 인상적인 장면을 하나 꼽는다면.

= 덕수가 팔자 얘기를 하면서 아내와 다투던 중 애국가가 울리자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장면. 그 한 장면으로 국제시장을 기억하고 있다. 덕수는 자기 삶에 자기가 없다는 것을 안다. "너 마저 이해해 주지 않으면 어쩌냐"는 아내를 향한 물음도 들어 있다.

그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물음으로 다가오더라. 힘들고 어려운 사람에게 가까운 사람이 있는데, 그가 전혀 다른 의견을 가졌다면 그 고독감의 크기는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 영화 밖 논쟁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던가.

= 별 의미를 두지 않는다. 거기에 코멘트를 붙이는 게 의미가 없어 보인다. 논쟁에 참여한 사람들은 '옳다' '그르다'라는 판단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이미 가치 판단이 이뤄져서 나오는 의견들이니 그 논쟁 자체가 무의미해 보이더라.

비판하는 이유가 명확하지 않으니 사람들의 피로도만 높아지는 것 같다. 그 시절에는 이랬는데, 지금 우리는 이렇다는 식으로 시각을 넓혔으면 한다. 영화 안에 갖히지 말고 영화 밖에서 확장된 이야기를 풀어내자는 것이다. 그럴 때 대중도 관심을 갖지 않을까.

지난해 3월 재독여성모임 초청으로 독일에 다녀왔다. 그 모임에 소속된 대다수 분들이 파독 간호사, 유학생 출신이었다. 그분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우리는 조국 근대화를 위해 여기에 온 것이 아니다. 이곳에서 우리 삶을 찾았다"고들 말하신다. 그렇게 살면서 조국을 보니까 한국의 임금 수준이나 노동자에 대한 처우가 너무 나쁘게 다가왔다더라. 그래서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지원하기도 했단다.

영화는 영화로 보고, 영화 밖에서 격동의 한국 현대사가 어땠는지를 담담하게 서술하고 이야기하는 게 맞다고 본다. 의미 있는 논쟁은 싸우는 게 아니라 설득하는 것일 테니까.

▶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도 이념 논쟁을 불렀다.

= 일베들이 대자보를 찢고 하는 것을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누군가 프레임을 씌우려 하는데 그곳에 들어갈 이유는 없다. 해야 할 것만 하면 된다.

대자보는 허락받고 쓰는 게 아니다. 누가 대리해 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정치를 하자는 말이다. 해야 할 일이 많다.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할 시간도 모자라는데 그들의 말도 안 되는 논리에 휩쓸릴 필요는 없다.

▶ 한국 사회 안에서 벌어지는 이념 논쟁은 세대간 불통이 부른 단절로도 읽힌다.

= 프레임의 문제가 아닐까. 프레임은 본질을 못 보게 한다. '왜 이 프레임을 필요로 하나'라는 물음 하나면 충분하다. '저 프레임이 맞는 걸까'라는 의문에서 출발해 문제의 본질을 보는 것. 그것만 있으면 상황을 명료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나친 세대론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을 세대로 나누는 순간 개개인의 역사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세대론은 의미가 없다. 세대론 자체가 프레임이 된 것이다.

세대론이 아니라, 지금 우리 상황이 이렇다는 말을 해야 한다. 세대라는 개념을 빼고, 우리 모두에게 절박한 문제로 다가온, 먹고 사는 문제에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주현우 씨는 안녕을 '안경'에 비유했다. 쓰고 있을 때는 쓰고 있다고 인식하지 못하지만, 없으면 어쩔 수 없이 더듬거리며 찾아야 하는 것. 얻고 나면 너무 자연스러워서 또 다시 잊어 버리는 것이 안녕이란다. (사진=황진환 기자)

 

▶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인식도 한국 사회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데.

= 사실이다. 모난 돌은 정 맞게 돼 있다. 그렇다고 세상이 저절로 좋아지는 것은 아니잖나. 결국 '나를 찾는 삶을 살 것이냐' '팔자라고 합리화하며 주어진 삶에 만족할 것이냐' 사이 선택의 문제다. 안녕하지 못하면 "안녕하지 못하다"고 말하면서 사는 게 맞다고 본다.

한국 사회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경제가 좋지 않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자본주의가 임계치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유독 한국에서는 사회에 대한 근본적이고 진솔한 물음이 없었다고 본다. 그 중심에는 '우리'가 아니라 '누군가' 할 것이라는 대리주의가 있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당사자가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 모순을 느끼는 사람들이 직접 나서야 하는 것이다. 현재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미래는 바뀐다. 우리는 지금 파국이냐, 희망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

▶ 결국 모든 문제의 해결은 '나'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말로 다가온다.

= 그렇지 않으면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남보다는 내 이야기를 하는 게 쉬운 법이니까. 어떠한 활동, 실천이 됐든 방향성을 잃으면 안 된다. 나로부터 출발해야만 '저런 생각도 있구나'라는 식으로 비판에도 겸허해질 수 있다. 어려울 수도 있지만, 그 틀을 깨지 않으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파편화 밖에는 없다.

뭐가 됐든지 지금 우리는 말하는 것이 필요하다. 단순히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뭐가 문제인지를 밝혀낼 수 있는 생산적인 고민도 말하는 행위 그 자체에서 나올 수 있다. 그러면 가야 할 길이 정해질 것이다. 그때까지 우리는 서로 말을 해야 한다.

▶ 제도권 정치에서 희망을 보나.

= 못 본다. 기대하지 않으니 실망도 없다. 대리로서의 한계만 명확하게 보고 있다. 제도권 정치가 무능한 것은 그 안의 정치인들이 무능한 것이 아니라, 제도권 정치 자체가 무능하기 때문이다. 대리라는 방식이 고착화 되면 누군가는 기대하고, 누군가는 기득권을 얻는다.

▶ 주현우 씨에게 안녕은 무엇인가.

= 안경 같은 것. 쓰고 있을 때는 쓰고 있다고 인식하지 못하지만, 없으면 어쩔 수 없이 더듬거리며 찾아야 하는 것이다. 얻고 나면 너무 자연스러워서 또 다시 잊어 버리는 것. 그것이 안녕 아닐까.

▶ 앞으로 취업할 생각이 있는지.

=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한다. 밥도 먹어야 하고, 월세도 내야 한다. 교통비, 통신비에다 급한 데 쓸 것을 대비해 비상금도 필요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직업은 지금도 갖고 있다.

분명한 것은 졸업한 뒤에도 교육 활동을 효과적으로 벌일 수 있는 고민을 계속 하겠다는 것이다. 많이 고민해 봤지만, 특정한 직업으로 제 의지를 펼칠 여지는 크지 않다고 본다. 제가 하고 싶은 일은 직업과는 별개로 실천해 나갈 생각이다.

▶ 물음을 던진다는 것 자체에서 큰 의미를 찾는 모습이다.

= 물음은 내 삶을 풍요롭게 해 주는 것이다. 고민과 생각은 선택지를 늘리는 행위다. 물음을 던지지 않았다면 선택의 여지는 없었을 것이다.

제 역할은 한 사람으로서의 몫을 다하는 것이다.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를 통해, 교육 활동을 하면서 세상의 발전과 변화에 대한 희망을 본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다. 말 그대로 '미생'이다.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희망을 보기 때문이 아니라, 해야 하기 때문에 마땅히 행동하는 것이다. '우리 존재 파이팅'이라는 표현을 접했다. 사는 게 어렵지만 더 해보자는 것이다. 지금의 과오를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의문을 갖고 물음을 던지는 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 결국 공감과 연대라는 가치로 모아지는 분위기다.

= 듣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듣는 연습이 안 돼 있다. 들어도 듣는 게 아니다.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 듣는 게 아니라, 어떻게 비판할 것인지를 고민하면서 듣는다. 그것은 이해가 아니다. 이해한다는 게 반드시 인정한다는 것은 아니다. 비판할 것은 비판하고, 넘을 것은 넘는 것이 서로 이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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