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돼 보니 비로소 보이는 아버지." 24일 서울 행당동에 있는 CGV 왕십리점에서 열린 언론시사를 통해 영화 '국제시장'(감독 윤제균·제작 JK필름)을 미리 본 영화 칼럼니스트 김형호 씨의 한 줄 평이다.
이날 언론시사 뒤 그는 국제시장을 두고 "영화 '명량'의 이순신 장군이 지휘하던 배 밑에서 죽을 힘을 다해 노를 젖던, 절박한 시대적 환경에서 어쨌든 뭔가를 이뤄낸 우리네 아버지를 아들의 시각에서 바라본 영화"라고 평했다.
1,000만 영화 '해운대'(2009)를 연출한 윤제균 감독이 5년 만에 내놓은 국제시장은 195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굴곡 많은 한국 현대사를 살아낸 우리네 아버지의 이야기다.
이 영화를 시나리오로 먼저 접했다는 김 씨는 "글로 봤을 때는 단순히 코믹하게만 다가왔던 장면들이 진한 감정을 품고 있어 인상적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주인공 덕수(황정민)가 파독 광부로 뽑히려고 면접관 앞에서 돌연 애국가를 부르는 장면이나 덕수가 아내 영자(김윤진)와 벤치에 앉아 심각하게 다투다가 애국가가 들려오자 어쩔 수 없이 멈추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신 등을 보면서 웃긴데 슬픈 감정이 일었다"며 "이것이 글과 화면의 차이일 텐데, 윤제균 감독이 이러한 그림을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썼구나라는 수긍이 가더라"고 했다.
김 씨는 극중 인상적인 장면으로 덕수네 가족이 한국전쟁 당시 쑥대밭이 된 흥남부두를 벗어나는 아비규환의 피란 신, 파독 광부로 간 덕수의 일터인 탄광이 무너져내리는 장면, 전쟁이 한창인 베트남에서 건물이 폭파되는 과정을 한차례 거꾸로 되돌린 뒤 다시 보여 주는 신을 꼽았다.
이들 세 신은 컴퓨터 그래픽(CG)이 주로 쓰였다는 공통점을 지녔는데 "단순히 이미지를 채우는 CG가 아니라, 절박한 상황에 처한 인물들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편으로 이를 활용했다는 점에서 현명했다"고 김 씨는 설명했다.
그는 "그동안 해운대, '7광구' '퀵' 등을 통해 쌓아 온 제작사 JK필름의 특수효과 노하우가 이 영화에 고스란히 녹아든 듯하다"며 "CG의 완성도는 기술력도 중요하지만, 결국 감정을 건드리는 연출의 영역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 영화를 연출한 윤 감독은 장면 하나 하나를 통해 그 시대를 살아낸 이들의 희로애락을 전달하고자 애쓴 모습이 역력했다. 극의 배경이 된 시대에 대한 기억을 어렴풋하게라도 지닌 관객들은 어렵지 않게 감독이 그려내는 감정선을 따라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 (사진=JK필름 제공)
특히 1960년대 '잘 살아보세'라는 기조 아래 외화벌이의 선봉으로 내던져진 파독 광부와 간호사의 애환을 스크린에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냈다는 점은 이 영화가 길어 올린 미덕으로 다가온다. 여기에 덕수와 영자의 로맨스가 얹어지면서 극의 몰입도는 극대화되는 분위기다.
김 씨는 "사실 극중 덕수는 소위 '꼰대'에 가까운데, 그가 왜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야만 했는지를 영화는 짜임새 있는 연출로 보여 주고 있다"며 "덕수와 영자의 로맨스만 봐도, 매사 희생만 해 온 덕수에게는 영자가 유일한 버팀목이자 쉼표라는 점에서 '우리 부모도 저렇게 아름다운 시절이 있었다'는 인상을 줌으로써 그들의 삶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고 했다.
배우들의 물오른 연기는 윤 감독의 연출력이 힘을 발휘하는 데 커다란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황정민은 20대부터 70대까지 한 인물의 변천사를 특유의 순박함이 묻어나는 연기로 설득력 있게 그려내고 있다.
김 씨는 "선장을 꿈꾸던 한 청년이 꼰대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굉장히 안정적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연기를 보면서 '황정민이라는 배우가 아니었다면 저렇게 나왔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며 "베트남에 있는 덕수가 한국의 영자에게 보낸 편지 내용에서도 드러나듯이, 자신이 겪은 불행한 세상을 자식들에게는 대물림해 주고 싶지 않은 한 평범한 인간이자 남자의 모습을 일관성 있게 그려냈다"고 전했다.
김 씨는 특히 극중 영자로 분한 김윤진의 연기에 대해 "이름값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분량에도 존재감을 오롯이 드러냈다"며 "탄광에 갖힌 덕수 일행의 구조를 포기한 독일 사람을 상대로, 영자가 애원도 하고 협박도 하는 적은 분량의 신 하나만으로도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고 평했다.
그는 감정이입을 돕는 음악의 적절한 활용 역시 이 영화의 강점으로 꼽았다. "대표적으로 극 초반 흥남부두 신이나 말미 이산가족 상봉 신을 보면 대사로 구구절절 설명하는 대신 장면과 잘 어우러지는 음악으로 감정을 건드린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