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만 관객을 넘긴 영화 '국제시장'(감독 윤제균·제작 JK필름)이 한국의 영화시장에 남긴 열매와 과제는 무엇일까.
영화 칼럼니스트 김형호 씨는 "이제 대중에게 영화 관람은 특별한 취미가 아니라 일상이 됐다"며 "관객은 준비돼 있고, 문제는 어떤 영화 콘텐츠가 터지느냐에 달렸다"고 영화시장의 변화한 환경을 설명했다.
국제시장이 개봉하기 전부터 일찌감치 이 영화의 1000만 관객 돌파를 점쳐 왔던 그다. "국제시장이 준비된 관객의 요구에 부합함으로써, 그 열매가 1000만 영화라는 결과물로 주어질 것"이라던 김 씨의 예측은 적중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가족 관객을 겨냥한 영화가 국제시장으로 방점을 찍은 만큼, 이제부터 20대 관객을 위한 영화 시장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며 새로운 발전상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국제시장이 1000만 관객을 돌파한 데 눈과 귀가 모아졌던14일, 김 씨와 나눈 이야기를 전한다.
▶ 국제시장의 1000만 관객 달성에서 끄집어낼 수 있는 중요한 의미를 세 가지 꼽는다면.= 첫째, 소비 시장 관점에서 영화관객 규모가 확장됐다. 개봉일 기준으로 지난해 1000만 영화가 4편('겨울왕국' '명량' '인터스텔라' 그리고 국제시장) 나왔다.
이는 연간 2억 회 관람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며, 관객에게 영화관람은 특별한 취미가 아니라 일상이 됐다는 것을 말해 준다. 영화를 볼 준비가 된 관객이 있는 환경에서 이제는 어떤 영화가 터지느냐의 문제가 된 셈이다.
둘째, 주요 관객층 관점에서 보면 가족 관객이 기존 자녀 동반 가족뿐 아니라 부모를 동반한 성인 자녀까지로 확대됐다.
배급사 CJ E&M이 200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지향해 온 가족시장의 형성이 명량과 국제시장으로 방점을 찍은 것이다.
셋째, 이제 20대 관객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숙제가 남는다. 20대 관객에게 "내 영화다"라는 인상을 줄 만한 것이 준비돼 있느냐는 고민 말이다.
애초 20대 타겟의 기획이 아니었던 국제시장이 1000만 영화가 됐다. 이는 역설적으로 20대를 위한 영화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현재 30, 40대들은 20대 때 '오우삼 영화' '왕가위 영화' '비트'라는 자기 세대를 대변하는 상징적인 콘텐츠를 갖고 있었다. 지금 20대들이 이러한 흐름에서 벗어날 경우 결국에는 그들을 극장으로 끌어들이기 어려워질 것이다.
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 (사진=JK필름 제공)
▶ 국제시장의 1000만 영화 가능성을 높게 잡았던 근거는. = 첫째, 국제시장 개봉 전 콘텐츠 흐름으로 봤을 때 강한 아버지의 이야기들이 대중에게 어필하고 있었다.
1000만 영화들을 나열해보면 '광해' '7번방의 선물' '변호인'까지는 착하지만 무기력한 아빠였다. 반면 명량과 인터스텔라, 국제시장을 묶어 보면 '해결사 같은 아버지'다.
관객이 주인공들과 동일시하지 않고 스스로를 보호받는 사람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했다는 데 명량부터 국제시장까지의 흥행 요인이 있다.
둘째, 명량을 기준으로 한 산수다. 전년도 2억 회 시장이 일시적이지 않다고 봤다. 그걸 전제로 명량이 1700만 관객을 돌파했는데, 초대형 흥행은 일종의 패턴을 만드는 법이다.
명량 흥행의 반대 급부로 한국영화는 물론 전체 영화시장의 축소, 이로 인한 12월 11일까지의 외화 강세, 그 이후 다시 반대급부로 한국영화가 강세를 보일 것이라는 흐름을 봤다.
외화는 강세를 보이더라도 한국영화에 비해 가족관객을 모으기가 어렵다. 이에 따라 가족관객 수요를 만회할 영화, 명량에서 부족했던 '눈물'을 채워줄 영화로 국제시장을 떠올렸다.
셋째, 국제시장의 흥행은 내용으로 봤을 때 명량의 반대 급부로 다가왔다. 명량에서 노를 젓는 사공들의 이야기가 바로 국제시장이다. 관객층으로 보면, 확장성은 변호인이나 7번방의 선물보다 국제시장이 더 높았다.
▶ 국제시장의 흥행 추이가 예측대로 흘러 왔는지. 변수가 있었다면.= 개봉 전 이 영화의 1000만 관객 돌파 시점으로 예측했던 1월 12일은 전년도 동시기에 개봉한 변호인을 기준으로 뽑은 것이었다.
변호인의 경우 2, 3명이 함께 보는 영화라면, 국제시장은 가족관객 위주니까 3명 이상일 것이고, 그러면 속도는 더 빠를 것이라고 봤다.
인터스텔라의 1000만 관객 동원 여부는 가장 중요한 변수였다. 인터스텔라는 전형적인 주말 관객 위주 흥행세를 보였다. 그런데 국제시장과 '호빗3'가 개봉한 시점에 1000만 관객을 돌파한 것은 평일 좌석점유율이 높아졌다는 이야기다.
이 관객 수치는 전체로 보면 20만~30만 명인데, 이것이 초반 흥행 기세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 그래서 최초 예상일보다 더 늦어질 수 있겠다고 봤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국제시장의 흥행 변수가 되지 않는다. 금요일 드라마스페셜의 시청률이 높다고 주말 드라마 시청률이 낮아질까? 그런 의미에서 별개로 봤다.
누적관객수 200만 명 이후, 혹은 크리스마스 연휴 직후 국제시장과 관련한 논란이 가속화되는 것은 당연한 현상으로 봤다. 하지만 그 전에 논란이 불거질 경우 영화에 꼬리표가 붙어 흥행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는 못할 것으로 봤다.
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 (사진=JK필름 제공)
▶ 국제시장을 본 관객 형태에서 눈에 띌 만한 점이 있는지.= 수치상 20대 관객도 많이 봤다. 그런데 별로 중요하지 않다. 1000만 명이 봤다는 것은 당연히 20대 관객도 많이 봤다는 것이다. 국제시장 역시 최근 1000만 영화의 평균치로 수렴할 것이다. 그게 누적관객수 1000만 명의 의미다.
오히려 800만 명을 기점으로 4인 이상 단체관람과 50대 이상 관객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윤제균 감독의 전작 '해운대'(2009) 기록을 깨고 누적관객수 1200만 명 이상은 간다는 의미다. 극장 데이터를 봐야 알겠지만, 평일 좌석점유율이 증가하지 않을까 싶다.
▶ 극장 밖 언론, 정치권의 가세로 불붙은 이념 논란이 흥행에 득이 됐다고 보나.= 충분 조건이지 필요 조건은 아니다. 1000만 명 이상이 관람한 영화는 1000만 개의 의견이 나온다는 의미다. 그 중에서 공통점이 모아져서 하나의 현상을 대변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사회적 논란보다는 이슈라는 표현이 맞겠다.
사회적 논란이 진영 논리라는 의미라면 '왕의 남자', 해운대, '도둑들' '아바타', 겨울왕국, 인터스텔라에는 그러한 논란이 있었던가? 아니다.
이번에는 영화의 흥행에 도움이 됐다. 논란 자체보다 노출 효과가 광고처럼 있었다는 의미다. 국제시장은 7번방의 선물보다 회자될 아이템이 많지 않았는데, 그런 점에서 논란 덕에 꾸준히 노출될 수 있었다.
하지만 논란 때문에 봤다는 의견에는 동의할 수 없다. 짚어봐야 할 게 논란이 되기는 했나? 1000만 명 중에 그 논란을 인지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1000만 명을 움직일 정도로 논란을 부른 사람들이 영향력이 있을까? 아마 대다수 관객들은 그런 논란에 관심도 없지 않을까? 그러면 변호인은 모두 국제시장과는 다른 관객이 봤다는 의미인가? 설마, 그럴 리가.
다른 시각으로 보자. 국제시장이 그런 논란을 활용한 것이 아니다. 영화가 싫다는 유명인들도, 좋다는 유명인들도, 종편 채널들도 국제시장을 충분히 활용한 셈이다.
▶ 앞서 국제시장을 두고 "시간과 공간을 대폭 확장한 한국영화의 시험대"라는 표현을 썼다. 국제시장의 흥행이 앞으로 규모 큰 한국영화 제작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국제시장과 유사한 한국영화 기획들에 힘을 실어 줄 것이다. 당장 제작비 규모가 확장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적어도 기획 단계에서 이런 아이템들에 힘이 실릴 거란 말이다.
'실미도'(2003) 이후 1000만 영화 프로젝트가 가능해졌고, 그 혜택이 '용의자'(2013)까지 흘러온 게 아닌가. 그랬던 것처럼 국제시장으로 인해 현재 기획 단계의 영화들에서 시간과 공간의 스케일을 더 확장시킬 여지를 줬다고 본다.
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 (사진=JK필름)
▶ 황정민 김윤진 오달수 등 배우진의 면면에서 끌어낼 수 있는 국제시장의 특색은. = 황정민과 김윤진 두 배우에게 있어서 국제시장은 역대 최대 흥행작이다. 황정민에게 국제시장은 단순히 최고 스코어가 아닐 것이다. 송강호 최민식 설경구 등과 함께 2000년대 한국영화 시장을 이끈 배우로서 1000만 관객을 달성했기 때문이다.
황정민이 연기한 덕수 캐릭터는 다른 1000만 영화 캐릭터들과 차별점이 있다. 가장 특색이 없는, 어찌 보면 영화적인 캐릭터가 아닌 캐릭터, 그래서 가장 대중적인 캐릭터로 인식됐는지도 모른다.
김윤진은 '쉬리'(1999)부터 출발한 배우다. 꾸준한 흥행작을 만들어냈고, 시간이 지난 후에도 1000만 관객을 돌파하는 티켓파워를 보여 줬다. 여배우로 한정하면 손예진과 함께 평균 관객수가 가장 좋은 배우라는 걸 재입증한 셈이다.
특정한 조연 배우들의 시기가 있다. 오달수에게 그런 시기는 이미 지났다. 그런데 꾸준하다. 오히려 두 주연배우보다 더 주목할 부분이 거기에 있다. 국제시장은 험한 이야기다. 고생담이다. 그 과거를 돌아보고 싶을까? 60대 이상 관객들이 이 고생담을 보고 유쾌해 하는 이유는 뭘까? 오달수 캐릭터가 영화를 고생스럽지 않게 만들어 준다. 오달수가 살리지 못한 영화는 무조건 영화 탓이다.
▶ 윤제균 감독은 해운대에 이어 1000만 영화를 두 편 내놓은 유일한 감독이 됐다. 대중이 그의 코드에 공감했다는 해석도 나올 수 있을 듯한데.= 20대 관객 위주의 '두사부일체'(2001), '색즉시공'(2002)으로 출발한 감독이 가족관객에게도 어필했다. 윤제균 감독이 두 번의 1000만 영화를 만들었다는 '기록'에만 주목하는데, 다른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