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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시장' 부성애 넘어 같은 아픔 겪은 우리들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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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인터뷰] 윤제균 감독 "세대간 이해·소통에 보탬 됐으면"

영화 '국제시장'을 연출한 윤제균 감독. (사진=윤성호 기자)

 

피와 땀으로 얼룩진 70여 년의 한국 현대사를 관통해 온 한 남자의 삶을 좇는 영화 '국제시장'(제작 JK필름).

이 영화를 연출한 윤제균(45) 감독은 "국제시장이 한 시대를 살면서 같은 아픔을 공유한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다가갔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최근 서울 논현동에 있는 JK필름에서 만난 윤 감독은 17일 개봉한 국제시장이 단순히 부성애를 다룬 영화로 여겨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국제시장의 핵심은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평생을 고군분투하는 아들의 이야기라는 점입니다. 영화를 본 많은 분들이 아버지에 초점을 맞추시지만, 사실은 아버지를 간절히 그리워하는 자식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아버지 어머니요, 아들 딸이잖아요. 결국 국제시장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인 셈이죠."

윤 감독은 국제시장을 두고 "가족 이야기"라고 했다. 그가 말하는 가족은 극중 주인공 덕수(황정민)의 평생 친구인 달구(오달수)를 통해서도 그려지듯이, 단순한 혈연 공동체가 아니다.

윤 감독의 표현을 빌리면 "옆에서 나를 위해 진정으로 기뻐하고 슬퍼해 주는 이들 모두가 또 하나의 가족"이다.

"지금 젊은 세대의 고생이 부모 세대의 그것보다 덜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아시다시피 다들 자기 세대가 세상에서 제일 힘들다고들 하잖아요. (웃음) 그렇게 우리 모두는 힘든 세상을 살아내며 같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입니다. 국제시장이 세대간 이해와 소통에 보탬을 주는 영화가 되길 바라는 이유죠."

▶ 전작 '해운대'(2009)로 1,000만 관객을 모았다는 신뢰 덕일까, 국제시장을 두고 "강력한 1,000만 영화 후보"라는 얘기가 나온다.

= 솔직히 믿지도, 믿고 싶지도 않다. (웃음) 그럼에도 '제 진심이 전달됐구나'라는 생각에 감사하는 마음이 크다.

영화를 15년 동안 하면서 하나의 지론이 생겼다. 흥행은 하늘이 내려 준다는 것이다. 영화는 개봉과 동시에 그 자체로 하나의 생명력을 지니는 듯하다. 영화마다 나름의 운명이 있다고 해야 할까.

사람이 사주팔자를 갖고 태어나듯이 영화도 팔자가 있는 것 같다. 국제시장이 좋은 팔자를 타고났기를 바랄 뿐이다.

▶ 영화를 보면 아버지를 1인칭으로 둔 이야기가 아니라, 부모가 된 자식이 바라보는 아버지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 맞다. 홍보·마케팅이 부성애에 맞춰졌는데, 감독 입장에서는 아버지인 동시에 누군가의 아들인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국제시장의 이야기는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평생을 고군분투하는 아들'이라는 문장으로 잘 설명되는 것 같다.

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 (사진=JK필름 제공)

 

▶ 부성애에만 초점이 맞춰지는 게 아쉬운지.

= 겉으로 내세울 때는 부성애를 강조할 수밖에 없다고 봤다. 하지만 영화를 본 뒤 곱씹었을 때 누군가의 아들 딸 이야기로 받아들여졌으면 한다.

사실 국제시장은 제 자전적인 이야기에서 시작됐다. 극 말미 덕수가 아버지 영정 사진을 바라보며 하는 말은 돌아가신 제 아버지께 꼭 드리고 싶었던 말이다. 다소 판타지적인 그 라스트 신은 이 영화의 핵심이기도 하다. 지금도 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다.

▶ 한국전쟁 당시 흥남철수를 다룬 오프닝 시퀀스에 굉장한 공을 들인 모습이더라. 관객들에게 어떤 인상을 주고 싶었나.

= 한국영화에서 흥남철수를 처음 다루면서 100% 사실적으로 재현하고 싶었다. 관객들이 봤을 때 영화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실제 피란을 떠나는 한 사람으로 느끼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래서 주인공 가족은 물론 모든 피란민들의 표정 하나 하나에 절박함이 뭍어나도록 애썼다. 전쟁의 규모가 아닌, 그 상황에 맞닥뜨린 사람들의 절박함 말이다.

▶ 극중 파독 광부의 삶도 몹시 사실적으로 그려졌더라.

= 파독 광부와 관련한 자료를 조사하면서 제가 생각해 오던 광부들의 일, 생활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덕수가 갱도에서 망치질 하는 장면이 있는데, 스템펠(쇠기둥)을 세우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 하나의 무게가 80㎏으로 하루에 수백 개를 세웠다는데, 현장의 광부들은 "죽을 만큼 힘이 들었다"고 말하더라. 당시 그들이 사용하던 탈의실, 샤워실, 숙소 등도 고스란히 재현하려고 노력했다.

▶ 애국가가 흐르는 두 차례의 '웃픈' 시퀀스가 있다. 국가에 대한 충성을 강요 받던 당대 분위기에 대한 은유로 다가오던데.

= 잘 봤다. 개인적으로 정이 가는 장면들이다. 그때는 애국이라는 대명제 아래 개인의 희로애락이 희생을 강요받지 않았나.

파독 광부가 되기 위해 목청이 터져라 애국가를 부르고 사지로 떠나는 남편을 두고 아내가 눈물을 흘리면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해야만 했던, 애국이라는 가치만 전면에 내세워졌던 시대. 그런 점을 어깨에 힘 주지 않고 재밌게 묘사하고 싶었다.

▶ 컴퓨터 그래픽(CG)이 드라마를 잡아먹지 않는 점도 인상적이더라.

= 전작 해운대가 보여 주기 위한 CG였다면 국제시장은 드라마를 보조하는 CG였다. 국제시장의 핵심은 드라마라고 봤으니 당연한 결과다.

사실 해운대보다 국제시장에서 더 많은 CG를 사용했고, 더 많은 특수촬영을 했다. 그럼에도 절대로 비주얼이 드라마를 앞서거나 도드라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연출의 핵심이었다.

그래서 더욱 정교한 작업과 계산이 필요했다. 해운대는 상상력이 가미된 비주얼이어서 관객의 양해를 구할 수 있었지만, 국제시장은 그 시대를 산 분들이 계시니 사실성이 떨어지면 죄를 짓는 거라 여겼다.

영화 '국제시장'을 연출한 윤제균 감독. (사진=윤성호 기자)

 

▶ 국제시장을 만들면서 심적으로 힘들었던 점이 있었나.

= 세 가지 부담이 있었다. 먼저 개인사에서 출발한 영화라는 점이다. 저의 살아계신 어머니와 돌아가신 아버지께 실망을 드리면 안 된다는 마음이 컸다.

두 번째는 그 시대를 산 우리네 부모 세대에게 진정성 있는 영화로 다가가야 한다는 사명감이었다. 마지막이 극중 시대를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가 봤을 때 무겁지 않게 감성을 건드려야 한다는 점이었다.

이 모두를 만족시켜 세대간 소통을 가능케 해야 한다는 점이 큰 부담으로 다가오더라.

▶ 이산가족 상봉을 영화의 클라이맥스로 정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 우리 현대사에서 사람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건을 하나 꼽으라면 한국전쟁이 아닐까 싶다. 이는 우리 영화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현실에서는 그 아픔을 해소하는 게 먼 얘기로 다가오지만, 영화에서만큼은 결말을 짓고 싶었다.

주인공 덕수는 아버지와 두 가지 약속을 한다. 그가 평생을 짊어지고 산 부채의식, 그 짐을 덜어 줄 수 있는 게 이산가족 상봉이라고 봤다. 여기서 덕수는 첫 번째 약속을 지킨다.

마지막 시퀀스는 영화 안에서조차 지킬 수 없게 된 두 번째 약속을 판타지 형식을 빌려서라도 해결해 주고 싶은 마음에서 특별히 공을 들였다.

▶ 영화 곳곳에 녹아 있는 유머 코드, 윤제균 감독에게 코미디란.

= 삶이다. (웃음) 어릴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속된 말로 어깨에 힘 주고 무게 잡는 건 제 성격과 안 맞아도 너무 안 맞는다.

이러한 낙천적인 성향이 영화에 반영되다보니 주인공들도 어딘가 빈틈이 있지 않나 싶다. 그래서 심각한 장면에서조차 그 캐릭터가 가진 약점이 돌출되면서 재밌는 상황이 나오는 것 같다.

▶ 극중 덕수처럼 가족을 위한 헌신이 개인적으로도 삶의 중요한 가치인가.

= 돌아가신 아버지가 장남에 장손이셨다. 저 또한 장남에 장손에 외아들에 홀어머니를 모신 가장으로서 책임감이 크다.

책임감이 클수록 희생의 강도도 센 것 같다. 제가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영화 속 "내가 장남으로, 장손으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냐"라는 덕수의 대사처럼 팔자가 아닐까 싶다. 팔자를 원망한다고 바뀔 것도 아니니 처한 상황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웃음)

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 (사진=JK필름 제공)

 

▶ 현실에서는 어떠한 아버지인가.

= '가장 평범한 아버지의 가장 위대한 이야기'라는 국제시장의 홍보 문구와는 정반대로, 가장 위대한 아버지가 되고 싶은 가장 평범한 아버지다. (웃음) 자식들이 볼 때는 주말이면 집에서 맨날 잠만 자는 아버지일 것이다.

▶ 지금 시대 또래 아버지들은 어떤 것 같나.

= 부모 세대가 겪은 고생에 비해 덜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세대는 민주화와 경제화 사이에서 방황했다. 제 경우 삼수를 해 대학에 갔고 취업은 나름 수월했지만, 외환위기 등의 풍파에 겪어야 했다. 우리 세대도 억울한 게 있다.

하지만 어느 세대든 자기 세대가 세상에서 가장 어렵다고 하지 않나. 10대, 20대, 30대도 똑같다고 본다. 국제시장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가진 세대별 인터뷰 때도 한 10대가 '힘든 세상에 태어나서 억울하다'고 하더라.

그런 면에서 국제시장이 세대간 이해와 소통에 보탬이 됐으면 한다. 영화를 본 젊은 세대는 '부모들이 이렇게 살았구나'라는 새로운 경험을, 나이든 세대는 '우리 젊을 때처럼 지금 세대도 치열하게 살고 있구나'라고 인정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 전작 해운대에 이어 국제시장의 주된 공간적 배경도 부산이다.

= 고향이지 않나. 고향은 부모 자식 사이와 비슷한 것 같다. 부모의 내리사랑에 이유가 없듯이 고향을 사랑하는 데도 이유가 없는 듯하다.

죽을 때까지 내리사랑만 주는 공간일 것이다. 왜 그럴까 생각해 봐도 특별한 이유가 없다.

▶ 광고 카피라이터라는 색다른 이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는데.

= 다소 오해가 있다. 카피라이터로 사회 생활을 시작한 것이 아니다. 처음에는 광고회사 전략기획팀에서 관리직으로 4년을 일했다. 카피라이터 생활은 시나리오 공모에 당선된 뒤 "왜 전략기획팀에 있냐. 카피라이터 직으로 옮기라"고 해 1년을 했다.

▶ 사람의 감성을 건드리는 '촉' 같은 게 있는 듯도 하다.

= 어릴 때부터 누구에게 상처 주는 일을 못했다. 꼭 지키고 살고 싶은 게 있는데, 역지사지다. 반대의 입장에서 한 번 생각해 보면 이해 못할 일이 없다고 본다. 그런 성향이 영화를 만들 때도 관객과의 소통 지점에 적용되는 것 같다.

제게 관객과 소통하는 재능이 있다는 것을 서른 살 넘어 '두사부일제'(2001)를 하면서 알게 됐다. 그 전까지는 이 일을 할 거라 상상도 못한 채 스스로 정말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일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에 깊이 공감한다.

영화 '국제시장'을 연출한 윤제균 감독. (사진=윤성호 기자)

 

▶ 국제시장을 제작한 JK필름의 설립자이기도 한데, 자사 영화의 색깔이 있다면.

= 보면 행복해질 수 있는 재밌고 따뜻하고 사람 냄새 나는 영화를 만들자는 것이다. 영화를 만들면서 느끼는 행복보다는, 제 영화를 보고 즐거워하는 관객을 보면서 갖게 되는 행복이 더 큰 까닭이다.

이 힘들고 각박한 시대에 영화를 보는 2시간 동안 행복을 느낀다면 가치 있는 영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 모든 제작 과정에서 막내 스태프들에게까지 표준근로계약서를 적용했다고 들었다.

=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하루 최대 12시간 일하고, 더 일하면 수당을 주고, 일주일에 무조건 하루는 쉬니 인간답게 제대로 촬영을 할 수 있었다. 제작비를 2, 3억 원만 늘리면 행복하게 상업영화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계약서에 따라 하루 12시간 밖에는 촬영을 못하니 철저한 준비가 필요했는데, 아무 준비 없이 촬영장에 나와 이것 저것 찍어 보며 배우, 스태프들 고생시키는 일이 없어지더라. 준비 과정에서 합의된 장면 장면을 그날 그날 찍으니 오히려 일이 잘 돌아갔다.

앞으로는 JK필름에서 만드는 영화에는 무조건 표준근로계약서를 적용할 것이다.

그러려면 투자사들의 양해가 필요하다. 2, 3억 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는 점만 수용해 주면 모든 스태프들이 인간답게 재밌게 영화를 만들 수 있다. 과정이 좋으면 결과물인 영화도 좋게 나오는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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