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신호가 떨어지자 그들은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렸다. 죽음을 피해 달아나는 초식 동물처럼 그들의 뜀박질엔 절박함이 가득했다.
지난달 13일 새벽 4시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얼음장같은 새벽 한기를 뚫고 이들이 다다른 곳은 정문에서 200m 떨어진 도장공장 굴뚝 앞이었다.
가쁜 숨을 채 고르기도 전에 굴뚝 위 계단으로 걸음을 옮겼다. 20여분만에 도착한 70미터 위 굴뚝. 올라왔다는 안도감에 긴장의 끈이 풀리자 왠지 모를 서러움에 눈물이 쏟아졌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인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이창근 정책기획실장과 김정욱 사무국장의 70미터 굴뚝 농성은 이렇게 시작됐다.
◈ "굴뚝 청소부" 생활 23일째…공장에 대한 애정은 '여전'도장공장 굴뚝은 지난 2009년 쌍용차 파업 당시 노동자 3명이 고공 농성을 벌였던 곳이다.
4일로서 굴뚝 고공농성 23일째를 맞는 이창근 실장과 김정욱 사무국장은 "바람 탓에 몸에 멍을 들 것 같다"며 열악한 상황을 전했다.
"20일쯤 되니까 몸에서 여기저기 사인이 나옵니다. 바람이 제일 고통스러워요. 텐트 하나에 덩치 큰 남자 두 명이 비스듬히 누워 자는데 바람이 불면 잠 자는 건 거의 포기해야 해요."
이번 굴뚝 농성은 지난해 11월 쌍용차 정리 해고를 무효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여기에 파업 후 6년 동안 아무것도 이룬 게 없다는 자책감도 농성을 결심하는 데 한 몫을 했다.
"파렴치한 자본과 무능력한 권력에 답답함을 느끼지만 6년이 넘도록 문제를 못 풀고 있는 우리 모습에도 자책을 많이 했죠."
70미터 상공의 추위와 바람은 상상 이상으로 혹독했다. 그러나 굴뚝 위 이들은 해고 이후 처음으로 들어간 공장에서 옅은 행복도 함께 느끼고 있었다.
자칭 '굴뚝 청소부' 이창근 실장은 손이 곱는 추위 속에서도 하루에도 몇번씩 굴뚝 아래 공장을 내려다보며 근로자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을 눈에 담는다.
"(굴뚝에 있던) 스무날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공장 이곳저곳을 둘러봤다"는 그는 새해 첫날, '6년이 지났고 그렇게 우릴 밀어냈던 공장인데 아직도 내게 공장에 대한 애정이 많이 남아있는 것이 놀랍다'는 심정을 SNS를 통해 전하기도 했다.
◈ "씨엔엠의 희망 우리에게도 일어나길"연말에 전해진 씨엔엠 노사 합의 타결 소식은 "불이라곤 유일하게 담뱃불이 전부"인 굴뚝에도 따뜻한 희망이 됐다.
"정말 내 일처럼 기뻤어요. 1월 1일은 지났지만 아직 구정(음력설)이 남아 있기 때문에 저희에게도 그런 희망적인 연말이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