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 (윤창원기자)
2014년초 개각에서 해양수산부장관으로 발탁된 이주영 장관은 올 한해 인고의 세월을 보냈다. 그런 그가 이제 해양수산부 장관직을 내려 놓으려 하고 있다.
의원을 하다 장관으로 입각하는 예는 여당에서는 드물지 않고 장관 발탁은 가문의 영광 이나 영전으로 여겨지면서 여당 중진의원이면 누구나 입각해 국회와는 다른 차원에서 국가에 봉사할 기회를 갖고 싶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지난 1월까지만 해도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노리던 이주영 장관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1월말 “박근혜 정부 2기를 뒷받침하고 국회 선진화를 이루기 위해 당·정·청, 대야 관계 등에서 소통이 절실한 시점”이라며 “오랜 준비를 거친 제가 적임자라고 본다”고 말했었다.
원내대표 출마를 기정사실화하는 발언이었다.
하지만 여수 앞바다 기름 유출사고 수습 과정에서 부적절한 언행으로 윤진숙 장관이 경질되면서 그의 정치인생에 전환점이 찾아왔다. 박근혜 대통령이 2월 개각에서 해양수산부장관으로 발탁한 것이다. 이주영 장관은 3월 4일 인사청문보고서가 채택되면서 장관으로서 집무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19일째 되는 날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하면서 고위관료로서 그의 앞길에는 험난한 가시밭길이 펼쳐졌다. 진도에 설치된 유가족대책위에서는 죄인 취급을 받으며 봉변을 당해야 했고 범정부사고대책본부를 이끌면서 갖은 어려움을 겪었다.
워낙 많은 목숨을 앗아간 참사여서 가족들의 분노와 원한이 사무칠 수 밖에 없었고 여과없이 표출되는 불만의 1차 타깃은 이주영 장관이었다. 초동대처를 잘못해 생사는 애초 결판이 났지만 유족의 기대 때문에 구조작업은 늦가을까지 지속됐고 주검이 인양될 때마다 비난의 화살을 맞았다.
아예 진도항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덥수룩하게 자라난 수염과 머리카락은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유족들과 함께 했던 때문인 지, 유족들이 진정성을 봤기 때문인 지 분명치 않지만 언젠가부터 이장관과 유족 사이에서 신뢰가 생겨났다. 그의 헌신을 평가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정세균 새정치연합 최고위원은 1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어제 세월호 범정부 사고대책본부가 해체됐다. 이주영 장관에게 고생하셨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세월호특별법이 제정돼 사고재발방지책 마련의 기틀이 잡혔고 정부 대책본부도 해체돼 이 장관도 한시름을 놓게 됐다.
이 장관은 주위에 "세월호 수습이 끝나면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혀 왔다. 그래서 청와대와 정부에서는 개각설도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내년 집권 3년차이자 임기 반환점을 도는 해이기 때문에 임기후반용 진용짜기가 필요하다.
이 장관 외에도 이미 교체가 추진됐었던 정홍원 총리까지 개각요인이 작지만은 않아 3~4월 개각설이 부상하고 있다. 범 친박계로 분류되는 이주영 장관은 당청 새판짜기 과정에서 당으로 복귀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