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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 초대석-제주외국인평화공동체 공동대표, 방주교회 홍성직집사

제주외국인평화공동체 공동대표 방주교회 홍성직집사

 

제주도내 신앙인들의 삶을 통해 은혜를 나누는 크리스천 초대석, 로드 인터뷰(진행 배재우 본부장, 주일 오후5시30분부터 6시)에서 외과의사이자 제주외국인평화공동체 공동대표인 방주교회 홍성직 집사를 만났다.

다음은 홍성직원장과의 일문일답

▶ 병원 건물 자체가 작품 같다.

= 이전한지 약 두 달 조금 넘었다. 이 건물은 제주의 랜드마크가 될 수 있을 정도의 건물인데, 접근성이 높은 건물을 짓기 위해 유명한 디자이너에게 의뢰를 해서 건축했다. 테라스를 만들고 텃밭을 만들어서 그 텃밭에서 나온 채소로 밥상을 차려 환자들을 먹이기도 한다. 그 밥상을 통해서 건강 멘토링을 할 수 있는 병원을 하고 싶어서 이전해 왔다.

▶ 에코 파티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 생태적으로 매달 모임을 갖고 있다. 세 가지 테마로 진행이 되는데, 한 가지는 지역농민들이 유기농으로 키워내는 야채나 홈 메이드 가공품들을 소규모 생산자들이 모여서 농부시장을 여는 것이다. 조금씩 가져와 교환하거나 지역주민과 관광객을 대상으로 좋은 물건을 착한 가격에 판다. 두 번째는 포틀럭 파티인데, 좋은 음식재료를 가지고 한 접시씩 음식을 만들어 모여서 같이 먹는다. 웬만한 특급호텔보다 맛있고 건강한 식탁이 차려진다. 마지막으로 아마추어, 프로를 떠나서 모여 연주를 하고 그 음악을 듣는다. 그리고 전시회도 연다. 이것이 에코파티다.

▶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

= 시골에서 자라나서 어찌 보면 좋은 환경에서 자랐다. 서울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사실 20대부터 했는데, 30대 초반에 제주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살기 좋을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 과감히 이주를 하게 되었다. 우연히 제주환경운동연합과 연결이 돼서 대표를 맡게 되고, 10년 가까이 하게 됐다. 그리고 스스로 직접 땅을 사서 생태적인 농장을 만들어 식물을 키우고 나누고 먹는다. 이게 의료행위보다 어쩌면 사람들의 건강을 지키는 일이 된다고 생각했었다. 환경이 건강해야 사람의 몸도 건강할 수 있고, 건강을 지킬 수 있다는 생각으로 관심을 갖고 참여하고 있다.

▶ 원래 고향은 어디인가

= 아버지 고향은 선천이고 태어난 고향은 어머니 고향인 경상남도 거창이다. 거창고등학교 교감으로 아버지가 초기에 있으면서 그때 만난 분들이 농촌 살리기 운동을 하는 분들이었다. 장기려 박사. 오재길 선생님 등 그때 만났다.그때 함석근 선생님이 한국을 살릴 수 있는 직업은 농업이다라는 주장을 해서 오재길 선생님이 농군이 되셨다는 이야기가 있다.

▶ 집사님도 거창고등학교 출신인가

= 나는 서울에서 졸업했고 동생이 거창고를 다녔다. 어쨌든 그때 만났던 사람들의 영향이 지금까지 이어진다.

▶ 서울에서 의과대학 졸업을 하고, 30대 때 제주에 내려왔다. 상당히 빨리 내려온 것인데.

= 제주는 오지에 속했다. 당시 왜 가냐고 걱정을 하더라. 지금은 부러워한다. 90년대니 제주에 온지 지금 25년 정도 됐다.

▶ 제주에 내려와서 여러가지 일을 했다. '해녀 잠수병'을 처음으로 공론화 했다던데.

= 제주의료원 원장을 할 때의 일이다. 해녀는 잠수와 관련된 질환을 많이 갖고 있다. 전국 최초 민간병원에 생겨난 잠수병센터이다.

▶ 외국 의료봉사도 자주 다닌다고 들었다.

= 제주 외국인 평화공동체가 매년 몽골 쪽에 이주민 관련 사업을 하면서 의료봉사를 나간다. 그리고 한동안 문화센터를 서귀포 중앙교회와 함께 운영했다. 스리랑카에 쓰나미 났을 때도 다녀왔고 아프가니스탄 국립병원 컨설팅도 다니고 있다.

▶ 환경, 다문화 이주민에 관심이 많아서 제주 외국인 평화공동체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고.

= 처음 제주에는 다문화 가정으로써가 아니라 12년 전부터 이주노동자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농장, 배의 선원 그리고 작은 공장에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이들은 의료 보험이 안 된다. 그래서 기독 의사회를 중심으로 이주 노동자 의료 지원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장소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각 병원에서 접수를 받아서 의사들에게 보내면 무상 진료를 했다.

다문화 가정에 여성들이 많아지자 관심이 옮겨 왔다. 이 두 문제는 지금도 같이 가고 있다. 어쩌면 다문화 가정은 국가지원 사업으로 지원을 많이 하고 있기 때문에 이주노동자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부각되지 못하고 있어서 이것에 더 집중하고 싶다.

▶ 예술에도 관심이 많다던데.
= 제주사회, 제주농촌이 특히 문화와 접목하지 않으면 부가가치를 만들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특히 제주에는 감귤농장이 많은데, 감귤을 따서 팔면 남는 게 많지 않다.

감귤농장 속에 문화와 예술이 접목 되어서, 2차, 3차 나아가 5, 6차 산업까지 만들어내면 이게 바로 제주를 여러 측면에서 살려내는 소스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에 지진으로 문제가 된 지역에 갔는데 포도원이 있는 지역이었다. 하지만 단순한 포도농장 만이 아니라 문화가 접목 돼서 샌프란시스코에서 돈이 가장 많은 사람들이 가서 살고 싶은 곳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제주도 서서히 그렇게 변하고 있긴 하지만 제주농촌에 접목이 되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농장에서 음악회, 전시회를 할 수도 있고 예술가들이 워크샵을 할 수도 있다. 그러려면 감귤농장이 지금보다 깨끗해져야 되고 아름다워져야 한다. (혹은) 감귤을 담는 창고가 비어있을 때는 전시회장이 될 수도, 모임장소가 될 수도 있다.건축과 음악 미술 이런 것들이 접목되어야 제주사회, 농촌이 살아날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다.

▶ 섬기는 교회가 방주교회다.

= 방주교회는 굉장히 특별하다. 처음엔 제주도민, 관광객을 목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다. 비오토피아에 사는 사람들이 만든 것이다. 근데 그러기엔 너무 아까운 공간이다.
그래서 나도 다른 교회에서 방주교회로 옮기게 되었다. 제주 지역민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활용하려고 음악회를 열고 있다. 지금은 건축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한번은 방문해야하는 성지 같은 곳이 되었고, 제주를 방문하는 교인들도 이곳을 온다.

어느 주일에는 천명이나 왔다. 발붙일 데가 없어서 문제가 생길 정도였다. 처음엔 120명이 예배 보는 공간으로 지은 공간이다. 이런 관광객들을 위해서 외국의 유명한 교회는 주중에도 간단한 음악회나 기도회가 열리듯이, 특히 크리스찬이 오면 의미 있게 그 장소를 방문할 수 있는 그런 프로그램들이 만들어지면 좋지 않을까라는 개인적인 생각을 해본다.

▶ 방주교회가 제주사회에 깊이 스며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고 하던데 어떤가

= 그 일환으로 안덕지역에 차상위계층 지원 사업을 하고 있다. 주택을 수리하고 먹거리를 정기적으로 공급한다. 그리고 태국 고산족 지역에 교회를 지어 헌납하려고 자선바자회 또한 준비 중이다.

▶ 집사님은 모태 신앙인인가

= 그렇다. 아버지가 거창고 교감을 지내시고 후에 신학을 공부해 목회자가 되셨다. 그리고 선교사로 해외에 계시다가 일찍 돌아가셨다. 어머니도 교회를 어려서부터 다니셨다.

▶ 신앙적으로 깊어진 시기가 있다면 언제인가

= 이주민들을 만나면서 성서에도 나그네 접대를 하라고 하듯이 우리도 언제 나그네가 될지 모른다.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캐치 프레이즈는 네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이다. 이것보다 중요한 신앙행위는 없다고 생각한다. 교회, 교인들이 우리만의 천국을 만들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그 천국에 참여하는 공간이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이 모든 것들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 같다

= 다 연결되어있다고 생각한다. 환경문제든 이주민문제든 의사로서의 활동이든 교회의 교인으로서의 신앙이든 이것들이 다 맞물려있다. 분리 된 것이 아니다.

내가 건강을 지키고 도움을 주는 의사로서 고민을 해보니, 원래 건강하다는 게 질병이 없는 상태로 정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살고 있는 사회와 딛고 있는 땅, 공기, 교회 신앙이 건강해야 한다. 그리고 경제가 건강하고 정치가 건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건강은 지켜질 수 없다. 너무나 복합적인 문제와 관련이 있는 것이다. 의사로서 진료행위로 역할을 다 했다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사회활동에 참여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교회를 신앙으로 제한하면, 교회 안에서 예배하고 부흥회하고 이게 전부가 아니라 물론 중요한 부분이지만. 교회는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재기 선생이 기독교적인 베이스에서 제주 생명농업을 만들고 제주의 농업을 친환경으로 바꿔야 우리가 건강하게 살고 우리 사회가 건강해 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근데 교회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교리만이 아니라 실천을 해야 신앙의 완성인 것이다. 기독교가 처음 한국에 들어왔을 때 사회적인 영향이 컸는데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긍정적인 영향이 줄어드는 것 같다.제주는 5퍼센트가 기독교인이라고 한다.

기독교 처음 전파될 때 작은 무리가 이정도가 된 게 아닌가. 큰 종교가 된 원인이 병원과 학교를 짓고 언론기관을 세워서 세상을 구제하는 일을 했기 때문에 칭찬받고 존경받는 것이었다.

처음 그 제주 선교 전략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차원에서 여러 차례 제주에서도 기독교 학교, 기독 병원 이런 얘기가 나왔다. 추진 움직임이 있었으나 아직도 안 되고 있다. 나도 기독교 대안학교에 대한 꿈을 갖고 있다.

▶ 제주를 향해 꾸는 꿈이 있다면

= 초기에 이야기 나눴듯. 생태적 공동체 내지 기독교적 공동체... 약간 느슨하지만 같은 목적으로 같은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삶과 목표를 나눌 수 있는 공동체적인 삶을 꿈꾸고 있다.

내가 하고 있는 초록생명마을이라는 생태농장도 공동체가 목적이고 그 속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모여서 땀을 흘리고 삶도 나누고 하는 좋은 대안학교도 꿈꾸고 있다.

▶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꿈은

= 질병을 고치는 의사는 소의라고 하고 사회를 고치는 사람은 대의라고 한다. 나는 대의가 되지는 못했고 대의 흉내를 낸다. 적극적으로 환자도 진료하고 또한 사회문제에 참여하고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을 모으는 것이 좋은 의사의 길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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