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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숨진 분신 경비원…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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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1-07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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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 관련이 없음 (사진=노컷V 영상 화면 캡처)

 

지난달 7일 입주민의 인격모독을 견디다 못해 분신자살을 기도한 뒤 전신에 3도 화상을 입고 투병하다 한 달 만인 7일 오전 세상을 떠난 압구정 신현대아파트 경비원 이 모(53) 씨.

이날 오후 서울 성동구 한양대병원에 차려진 이 씨 빈소에는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화환들이 띄엄띄엄 늘어섰다.

이 씨와 함께 신현대아파트에서 일했던 동료 경비원이 침통한 표정으로 빈소 앞에 서 있었다.

그는 "이 씨에게 인격모독 발언을 했던 A 씨는 동네에서 매우 유명했다"며 "평소에도 인격모독적 언행을 한다는 소문에 아무도 그분이 있는 동에서 근무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숨진 이 씨는 주민 민원으로 원래 일하던 동에서 6개월 만에 A 씨가 사는 동의 경비원을 맡게 됐다. 아파트 규정에 따르면 원래 2년에 한 번씩 동을 바꾸게 돼 있었다.

이후 이 씨는 A 씨의 인격모독적 발언에 자주 시달렸다는 것이 동료 경비원의 설명이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1차 수술 후 의식을 회복한 이 씨가 가족에게 '사고 당일에도 A 씨가 좁은 경비초소로 비집고 들어와 심한 욕설을 퍼부었다'고 증언했다"고 전했다.

동료 경비원은 "이 씨가 인터폰으로 말도 많이 거는 등 밝은 성격이었는데 동을 옮긴 뒤 말수가 줄었다"며 "주민 민원으로 쫓겨갔다는 억울함에 주민과의 마찰이 겹쳐 결국 해서는 안 될 선택을 한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어 "아파트에 주차된 승용차를 보면 거의 다 BMW나 벤츠다. 고위층이라고 하면 밝은 면도 많지만, 그만큼 어두운 면도 많은 것 같다. 우리는 을이다"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빈소를 찾은 또 다른 경비원은 "눈이 많이 왔을 때 차를 밀어주면 입주민들은 차 안에 앉아 나와보지도 않았다"며 "사실상 하인 취급을 당했다"고 밝혔다.

이 씨의 분신 이후 경비노동자의 열악한 처우에 정치권과 언론의 관심이 이어졌지만,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사진=노컷V 영상 화면 캡처)

 

사건 당일까지 이 씨에게 모욕감을 줬다는 A 씨 딸이 병원을 찾아 이 씨의 분신시도에 유감을 표명했을 뿐이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A 씨 딸이 찾아와 '정말 미안하다. 산업재해를 입증하는 데 필요한 진술서도 써주겠다'며 사과의 뜻을 표했지만, A 씨가 직접 사과한 적은 없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누가 어떻게 이 씨의 죽음을 책임지나'라는 문제가 남았다. 신현대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는 입주민을 대상으로 모금운동을 하겠다고 밝혔을 뿐 아직 사과나 재발방지 대책 등을 내놓지는 않았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입주자대표회의 측에서 책임을 지기는커녕 오히려 '문제를 일으킨 업체이니 잘라버리겠다' 말하기도 한 것으로 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유족들은 지난달 28일 근로복지공단 강남지청에 산업재해를 신청했다. 자살을 시도할 만한 가정 불화나 경제적 어려움이 없었고, 일터에서 당한 모욕이 원인이 돼 발생한 일이기 때문에 산재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권동희 노무사는 "숨진 이 씨가 A 씨가 있는 동으로 옮긴 뒤부터 우울증으로 병원에 다녔고,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면서 "업무상 질병이 발생해 자살 시도에 이르렀기 때문에 명백한 산업재해"라고 말했다.

이어 "이 씨를 고용한 것은 하청업체이지만,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와 입주민들이 사실상의 고용주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씨의 부인은 대형마트 직원이고 두 아들은 각각 직장인, 대학생이다.

한 달 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약 2,000만 원의 병원비가 청구됐다. 이나마도 병원 측에서 일부 수술비를 산업재해가 인정되면 받겠다며 배려해 준 결과다.

유족들은 인터넷을 통해 모은 성금 약 1,000만 원을 보태 병원비를 치렀다.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생활해 나가야 할지 막막한 상황이다. 아들의 학비와 생계비는 모두 미망인 몫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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