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CBS '브라보 마이 제주'<월-금 오후 5시 5분부터 6시, 제주시 93.3mhz 서귀포 90.9mhz>에서는 매주 목요일 제주의 식물을 소개한다. 이번에는 '솜나물'에 대해 한라생태숲 이성권 숲해설가를 통해 알아본다.월-금>
솜나물
어제는 기온이 내려가서 옷을 껴입었는데 오늘은 무덥습니다. 그러나 들쭉날쭉하는 봄 날씨도 들꽃들에게는 영향이 없어 보입니다. 피어나는 시간에 맞춰 작년 그 자리에서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지난 주말에는 법원에 근무하시는 분들과 함께 숲속에서 자라는 봄꽃을 보고 왔습니다. 새끼노루귀, 큰괭이밥, 큰개별꽃이 주는 은은한 아름다움. 개감수, 박새에 대한 경이로움. 중의무릇, 꿩의바람꽃에 대한 해학. 두어 시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자그마한 들꽃들을 보면서 모두가 행복한 얼굴이었습니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모처럼 자연 속에서 보낸 편안한 시간이었습니다.
숲속의 들꽃들이 서둘러 꽃을 피우는 사이 양지바른 풀밭의 앙증맞은 솜나물도 서둘러 꽃을 피워내고 있습니다. 제주의 서쪽 무덤가에서 시작된 솜나물은 이제 할미꽃과 함께 동쪽 오름으로 번졌습니다. 손가락 정도의 키에 붉은 빛 꽃잎을 수줍게 벌리고 하얀 꽃을 피워내는 솜나물의 모습은 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없게 합니다. 식물 이름에 '솜'자가 들어가는 식물들이 있습니다. 솜방망이, 솜양지꽃, 솜대 등이 그것인데 모두가 흰털이 많은 것이 특징입니다. 솜나물도 마찬가지로 흰 섬유와 같은 털이 많은데 솜이 귀했던 옛날에는 잎을 말려 불쏘시개로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솜나물을 부싯깃나물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솜나물은 국화과의 여러해살이 풀꽃으로 햇볕이 잘 드는 건조한 곳에서 자랍니다. 꽃은 줄기 끝에 한개씩 달리고 꽃이 피고 나서도 키가 조금씩 자랍니다. 제주에서는 3월이면 피기 시작해서 9월까지도 볼 수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봄과 가을에 꽃을 두번 피운다는 것입니다. 봄에 피는 것은 키가 커봐야 10cm 내외로 60cm까지 크는 가을형 보다 키도 작고 식물체 전체에 털도 많습니다. 또 봄에 피는 것은 분홍빛이 도는 흰색의 개방형 꽃인데 비해 가을형 꽃은 꽃잎을 닫고 있는 폐쇄형입니다. 잎도 봄에 피는 것은 삼각형으로 가장자리가 톱니가 조금 있는데 비해 가을형은 긴 타원형으로 가장자리가 깊게 갈라져 있습니다.
솜나물1
그리고 봄에 피는 꽃은 귀엽고 예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씨앗을 맺지 않는다고 합니다. 대신 가을에는 꽃잎을 열지 않고 자기꽃가루받이를 해서 결실을 합니다. 후손을 이어가기 위해 확실한 보험을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꽃가루받이가 끝나고 결실이 되면 민들레처럼 바람을 이용하여 홀씨를 퍼뜨립니다. 이 모습은 솜나물이 봄에 피지만 국화과 식물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가을에 피는 다른 국화과 식물을 닮았습니다.
나물이라는 이름이 있는 식물은 나물로 먹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솜나물도 어린순은 나물로 먹기도 했으며 잎으로 떡을 만들어 먹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한방에서는 대정초(大丁草)라 하여 약재로 쓰기도 합니다. 식물체를 말렸다가 뜨거운 물에 달여 먹거나 찧어서 상처에 바르면 습한 기운을 없에거나 해독, 마비 등에 효과 있다고 합니다. 요즘에는 햇볕이 잘 드는 곳이면 어디서나 잘 자라므로 관상용으로도 인기가 있습니다. 화분에 담아 키우는 것도 좋고 화단에 심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산에서 자라는 것은 아무래도 키우기 쉽지 않으므로 관상용으로 적응시킨 품종을 생각해보는 것이 더 좋겠습니다.
솜나물의 꽃말은 '발랄'입니다. 소나무 아래 또는 오름의 풀섶을 찾아 보면 수줍게 머리르 내밀고 있는 솜나물을 볼 수 있습니다. 솜나물 뿐만 아니라 봄에 피는 꽃들은 키가 작아 허리를 굽히지 않으면 자세히 눈맞춤을 할 수가 없습니다. 조금만 낮추면 보통 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겨울을 이겨낸 많은 새로운 생명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한결같이 키가 작지만 활기 넘치는 모습입니다. 이런 봄꽃 때문에 봄은 늘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봄꽃의 아름다움은 비록 오랜 시간 피지는 못하지만 발랄하고 생동감 넘치는 모습에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생태숲 화단에도 작년에 심어 두었던 솜나물이 활짝 꽃을 피었습니다. 일이 힘들 때 들꽃을 보는 것 보다 더 좋은 것도 없을 듯합니다. 소박하고 보잘 것 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이미 찬 겨울을 이겨낸 모습에서 희망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들꽃을 보는 순간은 세상의 무게를 내려놓을 수 있어 좋습니다. 여기저기 꽃소식이 들리지만 마음만 바쁘고 들꽃들과 자주 함께하지 못하는 것이 늘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