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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0일 대구에서 중학생이 친구들의 폭력과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이후 전국 곳곳에서 봇물 터지듯 학교폭력 실상이 전해지면서 충격을 주고 있다. CBS는 학교폭력의 원인과 실태, 예방·사후 대책의 실효성을 검토하고 학교폭력을 없애기 위한 방향 등을 일주일에 걸쳐 짚어 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편집자주]초등학교 4학년 A(10)양은 전학 오자마자 '왕따'가 됐다. 5명의 남학생들은 A양이 마실 우유에 이물질을 집어 넣었고, 물건을 숨겨 찾지 못하게 했다.
A양의 행동 변화를 눈치챈 부모는 학교에 이 사실을 알렸다. 학교는 가해학생 1명을 전학 조치했고, 양측 학생과 학부모 사이에서 고통을 호소하던 담임교사는 휴직계를 제출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가해학생 3명은 그대로 A양과 같은 학교, 같은 반에 남았고, 심지어 교감과 교목까지 교실에 들어와 의자에 앉아 수업시간 내내 자리를 지켰다.
'고자질쟁이'라는 낙인, 같은 반 친구들을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가뒀다는 비난의 화살은 가뜩이나 오랜 기간 홀로 외롭게 싸워 오던 A양을 더 서럽게 만들었다.
◈ 학교폭력 문제 키우는 학교 측 ‘쉬쉬’ 태도학교폭력 피해학생을 감싸주고 가해학생들을 재교육해야 할 학교가 허술한 초기대응으로 오히려 아이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CBS 취재진과 만난 학생, 학부모는 우선 문제가 불거지기만 하면 학교 측은 쉬쉬하고, 가해학생에 대한 전학, 퇴학, 사회봉사 등 처벌과 재발 방지에만 급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고교 3학년 아들과 1학년 딸을 둔 학부모 서무영(43, 경기도 광주)씨는 "일선 교사들이 문제의식을 갖고 접근하려 해도 외부 유출을 의식한 교감, 교장이 위에서 누르는 경우가 많다. 특히 사립학교에서 심각하다"고 강조했다.
학생들 성적 위주로 교원평가를 받는 교사들의 무관심도 문제점으로 꼽혔다. 교과부는 앞으로 생활지도에 앞장서는 교사에 대한 인센티브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지만, 입시 위주 교육이라는 구조적 한계 앞에서 유명무실할 수밖에 없다.
김 모(18)군은 "선생님들이 학교폭력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들어도 소문이려니 생각하고 흘려 넘기거나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열정적인 교사라 하더라도 학교폭력 문제만큼은 회피하고 싶은 1순위다. 가해학생과 피해학생 학부모들에게 치이기 일쑤기 때문이다.
경기도의 한 중학교 교사는 "교권이 심각하다 싶을 정도로 추락한 상황에서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너무 힘들다"면서 "가해학생 학부모들 중 일부는 무조건 내 아이부터 감싸고 보는데, 전학 징계에도 버티기로 일관한다. 이때는 피해학생 학부모의 항의가 이어지고, 그러면 정말 죽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 학생들 “무책임한 선생님, 학교 믿을 수 없어”학교 측의 조직적 은폐,축소와 교사의 무관심, 허술한 대응은 학생들의 학교에 대한 불신과 상호간 폭력으로 귀결되는 모양새다.
서울의 한 중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김 모(13)양은 "학교는 하나도 알지 못한다"며 "설문조사를 하지만 애들은 하나도 적지 않고, 상담교사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선생님께 말하면 애들끼리 사이가 더 나빠진다"고 말했다.
정 모(13)양도 "같은 반에 왕따 당하는 애가 있는데 돈 뺏기고 맞고 그래도 선생님한테 얘기도 못해서 다른 애들이 대신 말해줬다. 그런데 선생님은 반응도 하지 않고 책임도 지지 않았다"고 답답한 심경을 전했다.
◈ 학부모들도 “왕따 문제 교육 힘들어”학교가 뚜렷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주지 못하고, 학생들마저 부모에게 얘기를 털어놓지 않는 상황에서 학부모들의 입장은 난처하기만 하다.
얼마 전 마트에 다녀오던 고1,고3 학부모 김지형(42)씨는 중학교 1학년 학생이 두 학년 위 덩치 큰 학생들로부터 담배 심부름을 당하는 이른바 '담배셔틀'을 목격했지만, 해당 학생에게 이렇다 할 방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이 학생은 김씨에게 담배 두 갑을 사다달라고 요구했다.
김씨는 "아이에게 선생님이나 부모님께 얘기하라 해도 자긴 죽는다고만 하더라. 경찰에 신고할까 고민하다가 일단 사다주지 말라고, 매맞으면 선생님에게 얘기하라고 했는데 굉장히 마음이 안좋더라"며 당시 곤란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왕따 당하는 애들은 당할만 해서 당한다"고 말하는 아이의 답변에 놀랬다는 한 학부모는 "아이가 보고 느끼는 게 있는데, 엄마로서 그건 아니라고 말할 수가 없더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 처벌 위주로 흐르는 폭대위, 정부 대책
모두가 혼란을 겪는 가운데 학부모, 교사, 교감, 학생이 고루 참여하는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폭대위)는 형식화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가해학생 처벌에 초점이 맞춰지고, 강제전학이나 퇴학을 시켜 골칫거리를 없애자는 방향으로만 운영된다는 것이다.
학교의 은폐, 폭대위의 형식화는 결국 교육청 통계의 부실로 이어진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배은희 의원은 "통계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이유를 봤더니 폭대위에 올라온 것만 교육청에 건수로 올라오더라. 서울시내 초등학교 내 왕따 건수가 0건이라는 통계에 상당히 놀랐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까지 나서 형사처벌 연령을 만 14세에서 12세로 낮추고, 학생기록부에 가해학생의 폭력기록 남기기, 부모 동의 없는 강제 전학 등 연이어 처벌 강화책을 내놓고 있다.
CBS 취재진과 만난 학생들은 강제전학을 간 가해학생들의 행동에 '전혀 변화가 없었다'고 입을 모으며, 학교폭력만 발생하면 폭대위를 열어 징계에 급급한 학교와 이를 부추기는 사회를 꼬집었다.
서울의 한 중학교 2학년 강 모(13)양은 "폭대위를 열어서 전학을 보내도 달라지는 건 없다. 애들 때려서 전학간 친구들 보니 오히려 더 어긋나기만 했다"며 "(가해한) 친구들 말이 선생님들은 아무리 진실을 말해도 믿어주지 않는다더라. 그러면 더 화가 나서 걔(피해학생)를 건드리고 싶다고 했다"고 전했다.
갈팡질팡하고 숨기기 급급한 학교, 이를 불신하는 학생, 안타까운 심정으로 바라보는 학부모의 답답함을 뒤로 한 채, 교과부와 경찰의 대책들이 얼마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