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모텔에 경찰이 들이닥쳤다. 성매매 현장 급습이었다. 모텔 안에는 반나체의 장애인과 20대 여성이 누워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성매매가 아닌 '자원봉사'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영화 '섹스 볼란티어'의 한 장면이다.
일명 '장애인 성 도우미'라 불리는 섹스 자원봉사자. 이들은 파트너를 찾기 어려운 장애인에게 성관계을 해 주겠다며 장애인에게 '은밀한 제안'을 한다. 과연 성(性)을 '봉사'하는 것은 가능한가. CBS는 두 차례에 걸쳐 성 자원봉사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장애인 성 문화의 대안을 모색해 본다. [편집자 주] | [기사 게재 순서] |
1. '봉사'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추악한 '욕망' 2. "장애인에게 연애를 허(許)하라" |
활달한 성격에 환한 미소가 인상적인 김 씨(38). 지체장애 1급인 그는 2년 전 여자친구와 4년 열애 끝에 헤어졌다.
9살 연하의 그녀는 그가 일하는 센터에 실습을 나온 대학생이었다. 김 씨 특유의 입담과 넉살에 그녀도 매료됐고 만난 지 1년 만에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예쁜 친구였어요. 열심히 사귀었지만 안 됐어요. 그녀는 비장애인이었거든요."
김 씨는 그녀와 헤어지게 된 가장 큰 이유로 "장애 때문이었던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마 그걸 감당하기 어려웠을 거라고 생각해요. 장애가 말 그대로 장애물이 된거죠."
"이별의 데미지가 아직도 크다"는 김 씨는 "2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그 친구가 굉장히 많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38살의 뇌성마비 1급 박 씨(38)도 '비장애인' 여자친구를 사귈 때 주위 시선 때문에 속이 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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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는 데다 언어 장애까지 있는 그를 두고 주위 사람들은 여자 친구에게 "사귀지 말라"고 말렸기 때문.
사귀는 내내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감내해야 했던 박 씨는 여자친구와 헤어진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사람들의 인식 때문에 힘겨웠다"며 속상해했다.
김 씨와 박 씨 모두 활동 보조인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중증 장애인이다. 그러나 사람을 만나고 사랑하는 데 장애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두 커플을 힘들게 한 건 주위의 시선이었다.
장애인의 성교육과 상담 활동을 벌이고 있는 장애인 푸른아우성 조윤경 대표는 "성 자원봉사같이 일회성으로 장애인의 성 욕구를 풀어줄 게 아니라 장애인이 나와서 사랑하고 연애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와 제반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장애인 남편과 16년째 결혼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조 대표도 결혼 초기엔 주위로부터 가슴 아픈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처음에는 왜 장애인과 사냐고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봤어요. 남편이 저 버리고 떠날 거라는 얘기도 많이 들었죠. 나중에는 아예 남편을 날개 없는 천사로 만들더라고요.(웃음)"
조 대표는 "성 자원봉사와 같이 단순히 장애인이 불쌍하다고 동정적인 시선으로 한번 도와주자는 식의 접근은 옳지 않다"고 못 박았다.
"한 달에 몇 번 성매매 업소에 가서 성 구매를 하는 장애인 분이 있어요. 억압돼 있던 욕구를 그런 식으로 푸는 거죠. 하지만 그분도 그게 최선은 아니에요. 기본 전제가 '여자들이 나는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성 경험이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가는 것 같아요."
이어 조 대표는 "우리나라에서 논의되고 있는 성 자원봉사의 경우 남성 중심의 성 문화 때문에 직접적인 성관계에 더 초점이 맞춰진 것 같다"며 "성 서비스가 존재하는 외국의 경우에도 장애인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등 관계 회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독일의 경우 '장애인 자기 결정 상담소(섹슈얼베글라이퉁,ISBB)'에서는 장애인이 자신의 성적 권리에 대해 인식하고 심리적 치유를 목적으로 탄트라 마사지를 진행한다.
이 서비스는 성관계 자체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장애인의 성(性)을 금기시하는 인식에서 벗어나 장애인의 몸과 성을 긍정적으로 느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조 대표는 "성 자원봉사가 아니고서도 장애인 편의 시설과 이동권이 확보된다면 더 많은 장애인들이 자유롭게 나와 사람들 속에서 섞이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짝도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장애인 스스로의 인식 변화도 중요하다고 꼬집었다.
'장애가 심해 애인을 구할 수 없으니 성 자원봉사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한 남성 장애인의 말에 조 대표는 "그런 말 자체가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조 대표는 "내가 당당하고 즐겁게 성을 누리려면 장애인 본인의 노력도 필요하다"며 "나라가 해주겠지, 누가 해주겠지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조 대표는 "작업을 잘 거는" 자신의 후배 이야기를 꺼냈다.
"제 후배는 장애가 심해요. 발을 쓰는 앤데 담배를 휠체어 위에 걸고 다니죠. 그러면서 지나가는 여자들한테 좀 꺼내달라고 부탁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나가죠. 그 친구는 장애와 상관 없이 노력하 거든요. 그런데 그 친구보다 훨씬 경증인 분들이 '아무 데도 못 간다, 안 한다' 하면서도 성 자원봉사는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걸 보면 답답하죠."
이어 조 대표는 "키 작은 사람이 깔창을 신어서 키를 키우는 것처럼 언어 장애가 있어도 다른 방법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립재활원 재활병원부 이범석 부장은 "미혼 장애인의 성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장애인들이 이성 교제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라며 "결혼해 건강한 성 파트너를 만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