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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 선생님들'의 인생을 바꾼 교수님의 강의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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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프란시스대학 '성공회 다시서기 지원센터'서 마련한 노숙인 대상 무료 강좌

 

“‘한데 살이’라··· 추운데 산다는 뜻인가요? 선생님의 설명 좀 부탁드릴게요.”

강의를 ‘진행하던’ 교수가 수업을 ‘듣던’ 수강생에게 선생님이라 부르며 정중히 요청했다.

“흠. 제가 사전에서 찾아보니 말이죠. ‘한데’라는 말이 ‘하늘을 가리우지 않는 데’라는 뜻이더군요. 노숙인이라는 표현은 별로예요. 한데살이가 좋아요”

자신의 의견에 더해 조목조목 근거까지 제시하는 제자를 지그시 바라보던 교수는 “오! 정말 좋은데요”라는 말로 화답했다. 재차 마음에 든다고 강조하던 교수는 제자를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칠판에 적힌 한데살이에 동그라미를 쳤다.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이나 모두가 ‘배우는 시간’. 사회적 약자라는 굴레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을, 이 공간에서만큼은 결코 노숙인이라 부르는 법이 없다. 인문학이라는 틀 안에서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해 가며 서로를 교수님으로, 선생님으로 존중하는 이곳은 ‘성프란시스대학’이다.

13일 오후 7시 서울역 인근의 오래된 건물 2층에 자리한 성프란시스대학 강의실에는 11명의 수강생인 ‘노숙인 선생님’들이 모였다. 성프란시스대학은 성공회 다시서기 지원센터에서 마련한 노숙인 대상 무료 강좌다.

지난 2005년 문을 연 이래 모두 10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강의실의 문은 열려있다. 5명의 교수 가운데 이날은 박경장 명지대 기초인문학부 교수의 ‘작문’ 수업이 있었다.

박 교수는 이곳 강의는 삶에 대한 성찰을 깨우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분들은 삶을 체험한 정도가 일반 사람들과 확실히 다릅니다. 우리 사회 어떤 부류보다도 가장 깊은 체험을 한 분들이죠. 지금도 자기 주머니에 유서 한 두 개 들어있다고 해요”

“심지어는 자살시도까지도 했던 분들도 있어요. 결국 인간 실존이라는 차원에서 죽음이라는 부분과 가장 가깝게 있는 분들이에요. 인문학 수업은 이들의 삶에서 적용돼 표출됩니다. 어떤 일반적인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따라갈 수 없는 부분이에요. 이분들의 지나온 삶은 웬만한 영화나 소설 못지않습니다.”

그렇다면 강의는 이들의 삶을 어떻게 바꿔 나가고 있는 걸까.

수강생 전 모(54) 씨는 “예전에는 술을 마시지 않고는 하루를 못 버텼어요. 하지만 이제는 술도 끊고 지내요. 금요일에는 수업이 없는데 금요일까지 수업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교수님들께는 이런 열정을 제게 불러 일으켜주셔서 감사하는 마음뿐이에요. 너무 너무 사랑합니다”라며 소회를 전했다.

5기로 졸업한 뒤 성프란시스대학에서 간사로 활동하고 있는 문 모(41) 씨도 “노숙생활을 하다 보면 부끄러움이라는 걸 모르게 되는데 (강의를 듣고) 다시 알게 됐어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바닥까지 떨어졌던 상황에서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등을 떠밀어주고 어깨를 기댈 수 있게 해주신 교수님들이 계셨다는 거죠”라며 스승인 교수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스승의 날이지만 교수들은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제자부터 떠올리게 된다. 박 교수는 노숙인들 사이에서 행패 꾀나 부리기로 유명했던 권 모 씨가 졸업을 한 뒤 찾아왔던 지난 이맘때 기억을 떠올렸다.

박 교수가 수업을 마친 뒤 밖을 나섰는데 당시 권 씨가 희망근로를 해 월급을 받았다며 술을 꼭 사고 싶다면서 한 시간 이상을 밖에서 기다린 것이다.

박 교수는 “같이 호프집에 들어가니까 권 선생님이 ‘저 처음 여기 들어왔을 때는 내 돈 내고 뭘 먹고 싶어도 냄새 난다고, 더럽다고 쫓겨났습니다’고 말했어요. 그런데 이젠 이렇게 떳떳이 들어와서 술 한 잔을 대접하고 있다고 하더군요”라며 회상에 젖었다.

이어 “그 분은 자신의 기분을 이해 못할 거라고 했어요. 그 때 마신 맥주는 뭐라 말하기 힘든 맛이었죠”라며 박 교수의 코 끝과 눈 언저리는 빨갛게 물들었고,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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